
“나 볼펜하고 종이 좀 한 장 줘봐.”
“종이는 무얼 하시게요?”
“갑갑해서 한시(漢詩)나 적어 보려구.”
“한시요? 무슨 한시요?”
원래 말기 위암으로 우리 병원 종양내과를 다니던 85세 할머니 환자였다. 이번에는 낙상으로 무릎뼈가 부러져 다리에 깁스를 하고 꼼짝없이 침상에 누워 있었다. 며칠 전부터 밤잠을 설치시더니 낮에는 식음을 전폐하고 잠만 주무셔서, 혹시 낙상하면서 머리를 다친 것은 아닐까 걱정하던 터였다.
그런 할머니가 한시를 적겠다며 종이를 달라니, 덜컥 섬망이 찾아와 헛소리를 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 투박한 손으로 볼펜을 쥐고 한자를 세로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老去餘生何足愁…
막힘이 없었다. 열네 줄이나 되는 한시를 단숨에 적더니 나에게 읽어주었다.
“노거여생하족수! 늙어가는 남은 인생 무얼 그리 근심하랴.”
“이거 이태백 시예요?”
“조순 씨가 지은 거야.”
“조순요? 옛날에 경제부총리했던 그 조순요?”
“그래, 서울시장도 했던 조순 씨. 우리 강릉 구정에 살았던 양반이지.”
아무리 강릉이 선비의 고장이라지만 그저 평범한 시골 할머니처럼 보이는 환자가 나도 알지 못하는 한시를 적고 읽고 뜻풀이까지 해주다니.
보기와는 달리 학력이 꽤 높은 분인가 싶었다. 아니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서당에 다닌 걸까 생각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강릉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한 게 전부라고 했다.
한자 공부를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 여든을 넘기고 나서였다. 시간이 점점 더디게 가고 일상이 무료하게 느껴져 뒤늦게 독학으로 한자를 익혔다고 했다.
우연한 기회에 조순 씨가 2022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 펴낸 한시집 한 권을 손에 넣었다. 그때부터 매일 한시집을 펼쳐 놓고 소리 내서 읽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쓰고 그 뜻을 새겼다. 마음에 드는 시는 아예 통째로 외웠다.
그러던 중 위암이 발견됐다. 약간 속이 더부룩하고 쓰린 증상으로 내시경을 받았는데 이미 큰 종양이 십이지장 쪽을 막고 간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수술은 불가능했다. 급한 대로 음식물이 십이지장을 통과할 수 있도록 스텐트를 삽입한 것이 치료의 전부였다.
“그때 항암치료를 하자고 했지만 내가 싫다고 했어. 스텐트 넣고서는 밥도 잘 먹고 크게 아프지 않았는데 무슨 욕심을 내겠다고. 지금도 힘든 것은 없어.”
말씀은 그랬지만 종양 부위 출혈로 수시로 응급실을 찾아오셨고 얼마 전부터는 시내 요양병원에서 지내시는 중이었다. 이번 입원 기간에도 혈변이 반복되어 빈혈이 심해지는 바람에 몇 번이나 수혈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힘든 기색 한번 없이 한시를 쓰고 있었다. 무릎뼈가 부러지고 빈혈 수치가 떨어지는 것을 보며 전전긍긍하던 내가 무색할 정도였다.
오히려 내가 조순 씨에 관한 옛 추억담이나 한시에 관심을 보이면 눈을 반짝이며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강릉에는 예로부터 인물이 많아. 신사임당부터 조순 씨까지. 구정 쪽을 지날 때면 조순 씨가 조용히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보곤 했어. 이젠 강릉시에 기부해서 공원이 되어 있지.”
조순 생가 앞 공원의 모양새며, 거기에 심어진 나무며, 눈앞에 보여주듯 자세히 설명했다. 오래전 구정에서의 시간과 한시를 쓰고 있는 현재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지루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흔히 배움에는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젊을 때는 알고 싶은 것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지만, 나이가 들면 세상 돌아가는 일에 심드렁해지고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도 사그라든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환자에게 삶의 마지막 페이지는 새로운 공부의 시작이었다.
어쩌면 팔십오 년을 살아온 분이 붙잡고 있었던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재미’ 그 자체였을 것 같다.
할머니는 상태가 안정되어 다시 요양병원으로 퇴원했다.
가끔 흰 종이 위에 세로로 가지런히 적어 내려가던 열네 줄의 한시와, 그보다 더 길었을 할머니의 시간을 생각한다.
병이 있다고 해서 삶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새로운 것을 시작할 시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온전한 자유는, 오늘 하루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마음속으로 그 첫 구절을 다시 떠올려본다.
老去餘生何足愁.
늙어가는 남은 인생, 무엇을 그리 근심하랴.

<편집자주>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