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제약 산업은 한때 제네릭과 값싼 의약품을 생산하는 '복제약 공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미래 파이프라인에 넣을 신약 후보물질을 찾기 위해 중국 바이오기업을 찾아가고 있다.
중국 라이선스 거래와 파이프라인 증가세
24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제약사들의 중국 신약 도입은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중국 바이오제약의 부상과 우리의 대응 전략’에 따르면 2024년 해외 주요 제약사의 라이선스 거래 48건 가운데 혁신 파이프라인 자산의 31%가 중국에서 도입됐다. 5000만달러 이상 대형 라이선스 계약에서 중국 기반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도 2023년 20%에서 2024년 31%, 2025년 3월 기준 37%로 높아졌다.
첨단 모달리티에서도 중국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KISTEP의 또 다른 보고서인 ‘한·중 바이오 협력의 기회와 대응 방향’이 이벨류에이트(Evaluate) 자료를 인용한 결과, 중국 기업 자산은 임상 단계 이중특이항체 프로젝트의 48%, ADC 임상시험의 51%, CAR 기반 세포치료제 임상의 48%를 차지했다. 주요 차세대 치료제 임상 파이프라인에서 중국 기업의 비중이 절반 안팎까지 올라온 것이다.
기술수출도 급증했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은 “중국 바이오제약 기업의 기술수출이 2025년 157건, 최대 계약가액 기준 1357억달러를 기록했다”며 “올해 상반기에도 81건, 약 1100억달러에 달했다. 2011~2018년 중국의 연평균 바이오제약 기술수출액이 10억 달러 안팎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폭발적 성장세를 숫자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오 센터장은 미국의 입법 자문기구인 국가안보신흥바이오기술위원회(NSCEB) 자료를 인용해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는데 3년이라는 기간이 좁혀질 것이라고 경고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며 “지난 10년간 중국은 임상시험 규정을 전면 개편하여 한때 세계에서 가장 느리던 승인 절차 중 하나였던 것을 가장 빠른 승인 과정 중 하나로 바꿨다”고 밝혔다.
양은 따라붙었다⋯다음 승부처는 FIC
중국의 달라진 기술수준을 보여주는 사례로는 중국 바이오 기업 아케소(Akeso)의 이보네시맙과 3S바이오(3SBio)의 SSGJ-707이 꼽힌다. 이보네시맙은 2022년 서밋 테라퓨틱스(Summit Therapeutics)가 미국·유럽 등 권리를 최대 50억 달러 규모로 도입했고, 화이자는 지난해 SSGJ-707의 중국 외 글로벌 권리를 확보하면서 3SBio에 12억5000만달러를 지급했다. 두 후보 모두 PD-1과 VEGF를 동시에 겨냥하는 이중항체다.
중국의 달라진 신약개발 역량은 허가 실적에서도 나타난다. 한국바이오협회의 ‘미국 및 중국 의약품 규제기관간 항암신약 허가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2020~2025년 신규 항암제 승인 건수는 중국 NMPA 94개, 미국 FDA 87개로 집계됐다. 특히 2023~2025년에는 NMPA의 연간 승인 건수가 FDA를 넘어섰다.
다만, 중국이 미국의 혁신성을 완전히 따라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같은 연구에서 FDA가 세계 최초로 승인한 신약은 30개로 NMPA의 6개보다 많았다.
‘남보다 더 좋은 약’을 만드는 BIC(Best-in-Class)에서 중국이 빠르게 성장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표적이나 기전의 약을 처음 만드는 FIC(First-in-Class)에서는 미국이 여전히 우위다.
다만 FIC에서도 중국의 추격 속도는 빠르다. 한국바이오협회가 인용한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데이터(GlobalData)에 따르면, 중국의 개발 중 FIC 파이프라인은 2020년 152개에서 2025년 484개로 3.2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은 1736개에서 3459개로 약 2배 늘었다. 최근 5년 연평균 증가율은 미국 15%, 중국 26%로 중국이 더 높았다. 전 세계 FIC 파이프라인에서 중국의 비중도 8%에서 12%로 확대됐다.
과거 중국이 글로벌 제약산업의 생산기지였다면 이제는 글로벌 빅파마의 파이프라인을 공급하는 '신약 소싱처'로 이동하고 있다.
윤희정 KISTEP 바이오혁신전략팀장은 “5~10년 전과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중국 바이오텍이 단순히 내수시장을 대상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제약사가 실제 도입할 만한 후보물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공급자로 급부상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