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의 경로당은 사실상 고스톱이 점령했다. '화투가 치매를 예방한다'는 속설 덕에 어르신들은 화투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코메디닷컴은 <치매 극복의 날>을 맞아 화투를 대신하면서도 의학적 근거를 토대로 진행 중인 색다른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살펴봤다. 그 시도는 현재진행형이었다. 이제 화투판에 작별을 고할 때다. 편집자주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2026년 현재 한국에서 이 속담은 이제 한 아이와 함께 치매 환자도 포함시켜야 할 것 같다.
집과 병원 외에는 달리 오갈 곳 없는 치매 환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려면 환자와 가족만의 노력으로는 실현될 수 없다는 게 현장의 의견이다.
앞서 소개한 산책을 하며 길가의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이나 카페 직원 활동, 운동 프로그램 역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복지기관들이 협업한 결실이었다.
코메디닷컴이 지난 21일 제19회 '치매 극복의 날'을 맞아 현장에서 만난 의료 및 복지 전문가들은 향후 협업의 확장을 위해 보다 명확한 대상 설정과 적절한 행정 지원이 더해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어린이와 노인이 한 곳에? 담당 부서가 없어요”
“막상 프로그램이 성황리에 끝나고 직접 효과를 확인하니 힘든 점은 돌이키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허가부터 예산 편성까지 무엇 하나 쉬운 부분이 없었던 건 기억나네요.”
김종세 웃소 대표가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확신이 없었다면 도중에 그만뒀을 것"이라며 '세대 공감 인지 프로그램'을 기획했을 때를 떠올리며 한 말이다.
유치원생과 경로당 어르신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함께 보드게임을 하고 인지훈련과 신체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어린이와 노인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은 그동안 한국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이니 현장은 혼란스러웠다. 노인 돌봄을 담당하는 지자체 부서(인천시 노인정책과)와 어린이집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청 모두 처음 들어보는 프로그램 설명에 난색을 표했다.
노인과 어린이를 모두 아우르는 인천시 여성가족국의 개입으로 프로그램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그림은 나왔지만, 여전히 성폭력 우려, 감염병 전파 등 현실적인 요소가 발목을 잡았다.
논의를 거쳐 몸이 조금이라도 안 좋은 어르신은 교육 시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도록 하고, 교육 전 모든 참여자가 성폭력 방지 교육을 이수하는 것으로 합의한 뒤에야 운영에 나섰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세대 통합에 50년 넘게 진행한 日 적극 참고해야”
함께 프로그램을 주관한 한국시니어케어연구회장 주경복 한국시니어케어연구회장(간호학 박사)은 ”조부모 세대와 손자 세대가 함께 참여하는 세대 통합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위해선 일본의 사례를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코메디닷컴에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조손(祖孫) 교류’라는 방식의 프로그램이 일본에선 이미 1970년대부터 자리를 잡았다. 당시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핵가족화로 지역사회 공동체 의식이 약해진 탓이다. 기성 세대를 접할 기회가 없는 아이들에게 사회성과 예절, 대인관계 등을 교육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산발적으로 진행됐다.
1980년대 중반을 거쳐 일본 사회의 고령화가 본격 대두되면서, 조손 교류 프로그램은 국가 주도의 사업이 됐다. 아이들과 마을 어르신이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의 세대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됐고, 그렇게 가정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다시 자신의 조부모를 돌봤다.
주경복 회장은 “2040년대 중반이 되면 한국의 고령화율이 일본을 추월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세대 통합을 다루는 프로그램은수십 년 뒤처졌다”고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세대 통합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의 역할을 되살리고, 시설 밖으로 나오는 치매 환자를 그 구성원들이 품을 수 있다"고 분석하며 "‘다른 세대와 함께한다’는 활력이 자발적인 인지 훈련과 운동 참여를 이끌어낸다"고 봤다.
정부와 국회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치매 관리의 초점을 병원이나 시설보다 지역사회·거주지로 옮기려는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 3월 27일 시행된 ‘돌봄통합지원법’이 대표적이다.
치매 돌봄, 병원·시설에서 일상으로
돌봄통합지원법(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은 노쇠·장애·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살던 곳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률의 목표는 보건의료·건강관리·장기요양·일상생활돌봄·주거지원 등을 연결하는 것이다. 치매만을 위한 법은 아니지만, 법 시행과 함께 기존에는 병원과 시설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치매 정책 역시 지역사회나 가정 등 ‘현재 사는 곳’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가장 큰 변화는 개인별 맞춤형 지원계획을 통해 지자체가 돌봄 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치매 환자가 지자체에 통합돌봄을 신청하면 지자체는 필요한 사항을 파악한 뒤 개인별 지원계획을 세운다. 진료·요양·식사 지원 등을 각각 알아봐야 하던 환자(또는 어르신)와 가족들 입장에서 부담이 상당 부분 줄어들게 됐다.
이에 더해 보건복지부는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도 발표했다. 치매가 있어도 일상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예방부터 돌봄까지 전 단계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돌봄통합지원법 시행에 맞춰 치매 관련 의료·복지 자원을 연계하고 각 지역 특성에 맞는 치매안심센터를 운영하는 등 거주지와 환자 개인에 특화된 일상에서의 돌봄 정책이 수립되는 추세를 보인다.
넘을 산 많지만, 변화 흐름 긍정적
박기형 가천대 길병원 신경과 교수(대한치매학회 이사장)는 이같은 정책 변화 흐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 교수는 코메디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치매 진단 후의 약물 치료와 일상에서 지속가능한 관리가 이어져야 한다”며 “특히 근력 운동·생활 습관 관리 등 이미 효과가 알려진 노력을 병행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이어 “5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이나 돌봄통합지원법은 아직 시행 초반이라 평가가 이르지만, 여러 의료자원과 복지시설을 연계하고 노인들에게 자연스러운 사회적 상호작용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정책 의도대로 병원과 일상이 더 유기적으로 연결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전했다. 치매 진단을 위한 검사의 건강보험 적용이나 치매 환자 대상 상담·교육에 대한 수가 책정 등 행정적인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짚었다.
박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이 정도 규모의 국가 주도 통합 돌봄 정책은 유례가 거의 없는 만큼,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사각지대를 더욱 좁혀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