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약]
MRI에 디스크와 협착증이 함께 발견돼도 실제 통증 원인은 둘 중 하나일 수도, 둘 다일 수도 있다. 증상과 진찰 결과를 함께 살펴야 한다.
신경차단술은 통증 줄이는 치료가 주목적. 일부 환자에서는 원인 신경 찾는 수단으로도 활용한다.
수술 여부는 MRI 소견뿐 아니라 통증과 근력 저하, 보행장애, 치료 경과 등을 종합 판단한다.
부산 사하구 사는 김 씨(73)는 요즘 산에 오르기 겁난다. 몇 발짝만 걸어도 오른쪽 종아리가 저릿하고 당겼다. 통증도 왔다. 자연히 산길에서 쪼그려 앉는 일이 잦아졌다. 걷다가 갑자기 다리가 풀리며 휘청거릴 때도 있었다.
처음엔 근육통인가 싶어 몇 달간 파스도 붙여보고, 밤마다 다리를 주물러도 봤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결국 아들, 딸 손에 이끌려 찾은 병원에서 김 씨는 뜻밖의 말을 들었다. "다리가 아니라 허리가 문제"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MRI 찍어보니 허리 척추관협착증과 디스크 초기라는 소견이 함께 나왔다.
그런데 의사는 당장 수술부터 하자고 하지 않았다.
“증상을 좀 더 살펴보면서 주사 치료부터 시작하자”고 말했다.
허리에서 나온 신경, 왜 다리에 문제를 일으킬까?
허리에서 나온 신경이 눌리면 정작 허리는 아프지 않은데 다리만 저리거나 당길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허리디스크(추간판탈출증)나 척추관협착증.
허리디스크는 척추뼈 사이의 디스크 일부가 밀려 나와 신경을 누르는 병이다. 그에 비해 척추관협착증은 나이가 들면서 인대가 두꺼워지고 뼈가 자라는 등 퇴행성 변화로 신경이 지나는 통로가 좁아지는 병이다.
허리디스크는 앉거나 허리를 숙일 때 통증이 심해지고, 허리를 펴고 걸으면 괜찮다. 반면 협착증은 서 있거나 걸을 때 불편하다가 쪼그려 앉거나 허리를 숙여야 나아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질환이 섞여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고령층에서는 두 질환이 함께 발견되거나 여러 부위에서 신경이 동시에 눌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산본병원 허대석 과장(정형외과)도 "진료 현장에서는 두 질환이 이론처럼 깔끔하게 나뉘기보다는 함께, 그리고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MRI에 나타난 병변, 모두 치료해야 할까?
영상 진단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 MRI에서 신경이 상당히 눌려 보여도 별다른 증상 없이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상 소견에 비해 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진짜 중요한 것은 MRI에서 가장 심하게 보이는 병변이 아니라, 실제 환자의 증상과 연결되는 병변을 찾아내는 일이다. 의사도 통증이 언제, 어디서 심해지는지, 근력은 어떤지부터 살핀다.
허리에서 나오는 신경은 각각 감각과 운동을 담당하는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엄지발가락을 위로 들어 올리는 힘이 약해졌다면 요추 5번(L5) 신경근의 이상을 의심할 수 있다. 발끝으로 서는 힘이 떨어지거나 아킬레스건 반사가 감소했다면 천추 1번(S1) 신경근을 살펴보는 식이다.
이런 진찰 결과를 MRI와 대조한다. 오른쪽 다리가 아프다면 오른쪽 신경을 누르는 병변이 있는지, 감각이나 근력 변화가 해당 신경의 이상과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물론 이것만으로 원인 신경을 확정할 수는 없다. 여러 신경이 함께 영향을 받거나 말초신경질환이 동반돼도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MRI에 병변은 여러 곳⋯그런데 왜 주사는 한 곳에 놓을까?
MRI와 진찰 결과를 대조해도 어느 신경이 실제 통증의 원인인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MRI에서는 여러 부위의 신경이 눌려 있는데 정작 환자는 오른쪽 다리만 심하게 아프다고 하자. 이럴 때 일부 환자에게는 '선택적 신경근 차단술'이 원인 신경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의심되는 특정 신경근 주변에 국소마취제를 주입한 뒤 평소 호소하던 통증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살펴보는 방법이다. 주사를 맞은 직후 해당 부위의 통증이 뚜렷하게 줄었다면 그 신경이 통증 발생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판단하는 데 참고할 수 있다.
다만 마취제가 주변 신경으로 퍼지거나 여러 신경이 함께 통증을 일으킬 수도 있어, 통증이 줄었다고 원인 신경이 확정되지는 않는다.

신경차단술은 다른 목적도 있다. 대개 통증을 줄이는 치료가 주목적이다. 신경근 주변이나 신경이 지나는 공간에 국소마취제와 스테로이드 등을 주입해 염증과 통증을 완화한다.
이 주사가 튀어나온 디스크를 없애거나 좁아진 척추관을 넓혀주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걷고 재활할 여유를 만들어주는 치료다.
약물치료만으로는 통증 조절이 어렵지만 당장 수술이 필요하지 않은 환자에게 고려할 수 있다. 다만 효과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고, 통증 완화가 일시적일 수도 있다.
MRI에서 신경이 심하게 눌려 보여도 수술하지 않는 이유는?
수술 여부는 MRI 소견만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다리 통증과 저림이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걸을 수 있는지, 근력이 떨어지고 있는지, 비수술적 치료에도 일상생활이 어려운지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영상에서 협착이 심해도 증상이 경미하고 근력 저하가 없다면 비수술적 치료와 경과 관찰을 먼저 고려할 수 있다. 반대로 근력이 계속 떨어지거나 걷는 기능이 뚜렷하게 나빠진다면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이런 판단은 부산본병원(대표원장 하상훈) 진료실에서 매일 반복된다. 보건복지부 ‘관절 전문병원’으로 네 차례 연속 지정받았다. 12년째다.
부산 서부산권의 서구·사하구·강서구 일대에서는 유일하다. 9명의 정형외과 전문의가 내과, 신경과,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의학과 의료진과 관절, 척추질환을 전문 진료한다.
“괜찮겠지” 하다 놓치는 신호들⋯수술 미루면 안 되는 때는?
또 다른 문제는 '그러다 낫겠지' 하고 버티다 놓쳐버린 신호들이다. 발목이나 발가락에 힘이 빠져 발끝이 바닥에 끌리거나, 다리 근력이 점점 약해지는 경우가 대표적. 걷는 거리가 계속 짧아지고 약물이나 주사 치료에도 일상생활이 어렵다면 수술을 포함해 치료 방향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특히 소변이 잘 나오지 않거나 갑자기 소변·대변을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 엉덩이와 회음부 감각이 둔해지는 경우에는 즉시 응급실로 가야 한다.
허리 아래쪽의 여러 신경이 심하게 눌리는 '마미증후군(Cauda Equina Syndrome)'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허 과장은 "통증이 약물이나 주사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고 더 심해지거나, 마비가 시작되는 단계라면 반드시 수술적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환자 김 씨도 MRI에서 협착증과 초기 디스크 소견이 함께 나왔다. 다리 저림을 근육통이나 혈액순환 문제로만 여기고 파스, 마사지로 버틸 일은 아니었지만, MRI에 여러 병변이 보인다고 곧바로 수술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MRI에 무엇이 보이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건 핵심 원인이 무엇인지, 그게 지금 내 다리에 어떤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를 제대로 아는 일이었다.
[FAQ] 다리 아픈 환자가 자주 묻는 질문들
허리는 안 아픈데 다리만 저립니다. 그래도 허리 검사가 필요한가요?
허리 신경이 눌리면 허리 통증 없이 다리만 저릴 수 있습니다. 다만 말초신경 질환이나 혈액순환 장애도 비슷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어, 진찰을 통해 원인을 구분해야 합니다.
MRI에 디스크와 협착증이 동시에 나타났다면 둘 다 치료해야 하나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실제 증상과 관련된 병변이 어디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 병변까지 모두 치료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경차단술을 맞고 통증이 줄었습니다.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가요?
통증이 줄고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면 비수술적 치료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다만 통증이 반복되거나 근력이 떨어진다면 다시 진료받아야 합니다.
걷다가 다리가 저려 앉아서 쉬면 괜찮아집니다. 계속 걸어도 될까요?
척추관협착증의 대표 증상인 신경인성 간헐적 파행일 수 있습니다. 무조건 참으며 걷기보다 증상이 악화되지 않는 범위에서 활동하고, 걷는 거리가 점점 짧아진다면 진료받는 것이 좋습니다.
허리디스크나 협착증 환자가 응급실에 가야 하는 경우는 언제인가요?
갑작스러운 배뇨·배변 기능 이상이나 회음부 감각 저하가 나타나면 즉시 응급실로 가야 합니다. 새로 발생하거나 빠르게 진행하는 다리 마비도 신속한 진료가 필요합니다.
도움말: 부산본병원 허대석 과장(정형외과). 경희대 의대를 나와 경희대병원에서 수련했다. 강동경희대병원 정형외과 척추 전임의 출신. 척추디스크, 척추관협착증 등 척추질환을 주로 다룬다. 아시아태평양 미세침습 척추수술학회(PASMISS) 정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