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롭게 당뇨병 진단을 받은 뒤 불과 6개월 만에 약물 치료가 빠르게 강화된다면 췌장암 위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경구혈당강하제로 치료를 시작했다가 6개월 안에 인슐린 치료가 필요해진 환자는 당뇨병이 없는 사람보다 췌장암 발생 위험이 26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정문재 교수와 내분비내과 이민영 교수,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장성인 교수, 연구지원부 유민희 연구원 등 연구팀은 신규 발생 당뇨병의 초기 중증도뿐 아니라 진단 직후 얼마나 빠르게 악화하는지가 췌장암 발생 위험과 밀접한 연관을 보였다고 22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거트(Gut)》에 게재됐다. 논문 제목은 ‘신규 발생 당뇨병의 초기 중증도와 진행 양상이 췌장암 위험에 미치는 영향: 15년 종단 전국 코호트 연구(Impact of initial severity and progression pattern of new-onset diabetes on pancreatic cancer risk: a 15-year longitudinal nationwide cohort study)’다.
다만 이번 결과가 새롭게 당뇨병을 진단받은 사람 모두에게 췌장암 검사가 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문재 교수는 “연구를 통해 신규 발생 당뇨병의 초기 중증도와 단기간의 진행 양상을 췌장암 조기 발견 전략에 활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면서도 “신규 당뇨병 환자의 췌장암 절대 발생 위험은 낮기 때문에 임상 양상과 위험예측모형, 생체표지자를 결합한 정밀 감시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췌장암 환자 절반이 당뇨⋯상당수 암 진단 전 새로 발생
췌장암은 조기 발견이 어려운 암으로 꼽힌다. 논문에 따르면 환자의 약 80~90%는 진단 당시 이미 수술로 절제하기 어려운 상태이며, 수술을 받은 환자도 5년 생존율이 약 20%에 그친다.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영상검사를 시행하기는 비용과 낮은 발생률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워, 췌장암 위험이 높은 사람을 먼저 가려내는 것이 조기 진단의 중요한 과제다.
당뇨병은 이런 고위험군을 찾을 수 있는 단서 가운데 하나다. 췌장암 환자의 약 절반은 암 진단 당시 당뇨병을 앓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74%는 새롭게 발생한 당뇨병이었다. 평균적으로 췌장암 진단 30~36개월 전부터 고혈당이 나타난다는 연구도 있다. 췌장암이 혈당 조절에 영향을 미쳐 당뇨병을 일으키는 ‘역인과관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논문
다만 기존 연구는 주로 새롭게 당뇨병이 생겼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췄다. 처음 당뇨병을 진단받았을 때 얼마나 심했는지, 이후 짧은 기간에 얼마나 빠르게 악화했는지에 따라 췌장암 위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표본코호트의 2002~2019년 자료를 이용했다. 2005~2019년 새롭게 제2형 당뇨병을 진단받은 40세 이상 성인 11만6064명과 당뇨병이 없는 대조군 28만6599명 등 총 40만2663명을 최대 15년간 추적했다. 연령과 성별뿐 아니라 흡연, 비만, 소득, 동반질환, 수술력 등 주요 변수를 보정한 성향점수매칭 분석도 별도로 시행했다.
연구팀은 당뇨병 진단 당시 필요한 치료 강도를 병의 초기 중증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삼았다. 환자를 △당뇨병 약을 사용하지 않은 8만1644명 △경구혈당강하제를 사용한 2만7876명 △인슐린을 사용한 6544명으로 구분했다. 이후 진단 6개월 동안 치료 강도가 높아졌는지도 살폈다.
처음부터 인슐린 필요했다면 췌장암 위험 5.6배
분석 결과 당뇨병을 처음 진단받았을 때 치료 강도가 높을수록 췌장암 발생 위험도 단계적으로 높아졌다.
당뇨병이 없는 대조군과 비교했을 때 췌장암 발생 위험은 약을 사용하지 않은 신규 당뇨병 환자가 3.01배, 경구혈당강하제 사용 환자가 4.32배, 인슐린 사용 환자가 5.60배였다. 다른 위험 요인을 보정한 결과다.
특히 이런 연관성은 당뇨병 진단 후 3년 안에 발견된 췌장암에서 두드러졌다. 3년 이내 췌장암 위험은 대조군과 비교해 무투약군 4.75배, 경구혈당강하제군 9.44배, 인슐린군 10.73배였다. 신규 당뇨병 환자의 3년 내 실제 췌장암 발생률은 전체 0.19%였으며 무투약군 0.15%, 경구혈당강하제군 0.23%, 인슐린군 0.47%였다.

눈에 띈 건 '6개월간 얼마나 빨리 악화했나'
연구진이 주목한 또 다른 지표는 당뇨병의 ‘악화 속도’였다. 같은 강도의 치료로 시작했더라도 6개월 안에 약물을 추가하거나 인슐린을 도입하는 등 치료 강도가 높아진 사람은 치료 수준이 유지되거나 낮아진 사람보다 췌장암 위험이 높았다.
진단 당시 약을 먹지 않다가 6개월 안에 경구약이나 인슐린 치료를 시작한 환자의 췌장암 위험은 대조군의 6.50배였다. 처음부터 경구약을 사용했지만 이후 치료 강도가 높아지지 않은 환자의 3.67배보다 오히려 높았다.
가장 큰 차이는 경구혈당강하제로 치료를 시작했다가 6개월 안에 인슐린 치료로 강화된 환자에서 나타났다. 이들의 전체 추적기간 췌장암 위험은 당뇨병이 없는 사람보다 26.54배 높았다. 특히 당뇨병 진단 후 3년 이내 발견된 췌장암만 놓고 보면 위험비는 81.53배가 됐다. 다만 이 집단은 928명, 3년 이내 췌장암 발생은 18건으로 표본이 상대적으로 작고 신뢰구간도 넓어 수치 자체는 신중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연구팀은 이 같은 결과가 일부 환자에서는 당뇨병을 처음 진단받았을 때의 중증도보다 이후 빠르게 악화하는 양상이 췌장암 위험을 포착하는 데 더 중요한 단서가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실제 주요 임상 특성을 맞춘 신규 당뇨병 환자 9만331명과 비당뇨병 대조군 9만331명의 성향점수매칭 분석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췌장암이 혈당 조절을 방해하면서 당뇨병을 일으키거나 빠르게 악화시킬 가능성에 주목했다. 췌장암 진단과 가까운 시기에 새롭게 생긴 당뇨병일수록 종양과 관련된 변화가 혈당 조절을 방해한 결과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반대로 장기간 지속된 심한 당뇨병 자체가 췌장암 발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당뇨병 진단을 받은 사람 모두가 췌장암 검사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점도 짚었다. 실제 신규 당뇨병 환자에서 3년 이내 췌장암 발생률은 0.19%였고, 초기 인슐린 치료군에서도 0.47%였다. 연구진은 신규 당뇨병의 초기 중증도와 빠른 악화 양상을 기존 위험예측모형이나 생체표지자 등과 결합해 검사 대상자를 정밀하게 선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