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의 결혼을 2주 앞둔 중년 남성이 병원에 실려왔다. 갑작스럽게 뇌졸중으로 마비가 찾아온 상태였다. 뇌혈관 질환은 초기 대응이 생사와 예후를 가른다. 다행히 환자는 골든타임 내에 에스포항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지체 없이 응급 처치가 진행됐다. 수술은 한 번에 성공했다. 환자는 후유증 없이 무사히 회복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는 딸의 손을 잡고 무사히 결혼식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2008년 에스포항병원이 개원한 뒤 8년쯤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그날 김문철 에스포항병원장에게 수술을 받았던 환자는 어느덧 손주를 자랑하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위급한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왔던 때가 언제였냐는 듯 이제 진료실에 들어와 유치원에 들어간 손주 사진을 김 병원장에게 보여주며 웃는다.
“그런 환자들을 마주할 때면 정말 기쁘죠. 제가 신경외과 의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위급한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였으니까요.”
김 병원장은 지금껏 진료해온 수많은 환자들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올해로 개원 18주년을 맞는 에스포항병원은 경북 지역의 유일한 뇌혈관전문병원이다. 2011년 제1기 신경외과 전문병원으로 지정된 것을 시작으로 2~5기(2015~2026년)에도 보건복지부로부터 4회 연속 뇌혈관전문병원으로 선정됐다. 현재 보건복지부 지정 뇌혈관전문병원은 서울 명지성모병원, 충북 청주 효성병원, 대구 굿모닝병원, 경북 에스포항병원 등 전국에 4곳뿐이다.
에스포항병원은 포항은 물론 경주·영덕·울진·영천·경산 등 경북 전역과 대구, 울산에서도 환자들이 찾아온다. 24시간 응급실에 상주하는 신경외과·신경과 전문의들과 신속한 진료 시스템 덕분이다. 최근에는 진료 역량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포괄2차 종합병원으로 최종 선정되면서 지역 필수의료를 책임지는 거점 의료기관으로서의 입지를 한층 강화했다.

2008년 에스포항병원의 출발은 이 질문 하나에서 시작됐다. ‘촌각을 다투는 뇌졸중 환자가 왜 목숨 걸고 대도시까지 가야만 하는가.’
“당시만 해도 뇌출혈이나 뇌동맥류처럼 생사를 가르는 중증 뇌혈관질환은 지방 병원이 아니라 서울의 대학병원에서만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지역 병원들은 비교적 간단한 시술만 가능했고, 대학병원 수준의 고난도 수술을 지방에서 본격적으로 시행하는 곳이 없었던 게 현실이었죠.”
경북대 의대를 졸업한 뒤 대구가톨릭대 의대 신경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김 병원장은 골든타임을 놓치거나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끝내 사망하는 환자들을 계속 목도해야 했다.
목사님이자 신학대 교수였던 아버지는 그가 의대 교수로 남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로부터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며 자라온 아들이었다. 그가 애초에 신경외과 의사가 된 이유도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생사의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에 가 병원을 세우기로 다짐했다. 위치는 군의관 시절을 보낸 포항으로 정했다. 농어촌 지역을 배후에 둔 포항은 뇌혈관 질환에 취약한 고령층이 적지 않은 동시에, 공업도시 특성상 젊은 층도 두터웠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젊은 세대도 많았다. 지역 주민과 외지 유입 인구가 균형을 이루는 도시라는 점도 장점이었다.
지역 현장에서 기반을 다지고자 포항성모병원에 들어갔다. 연봉은 적었다. 대구가톨릭대병원을 떠날 당시 영입 제안을 받은 6개 병원 가운데 최고액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세 자녀를 키우며 아버지까지 모셔야 했던 가장으로서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지만, 그는 병원장 수녀님에게 면접 때 들은 질문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다른 병원들에선 늘 ‘뭘 할 줄 아냐’ 위주로 질문받았어요. 제가 몇 명의 환자를 받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얼마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는지부터 계산해야 했죠. 하지만 포항성모병원에선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시더군요.”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명확했다. 뇌혈관 질환 특성상 환자들이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시스템과 좋은 장비, 실력 있는 의료진을 갖춘 병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포항성모병원에서 그 구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여러 내부 사정에 부딪히며 직접 병원을 세우겠다는 결심이 굳어졌다.
처음엔 주변에서 다들 말리는 분위기였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서울대나 연세대 의대 등 신경외과 주류 출신도 아니면서 나선다며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분들도 있었고요. 당시는 골든타임이 생명을 좌우하는 질환을 대학병원이 아닌 곳에서 치료받는다는 것 자체가 상상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방에 전문병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뜻이 맞는 동료 신경외과 의사들을 모아 차근차근 개원 준비를 해나갔다. 2008년 11월, 포항시 북구에 뇌·척추 질환 중심의 병원을 개원했다. 병원명은 뇌졸중(Stroke)과 척추(Spine)를 뜻하는 영단어의 공통 머리글자 ‘S’를 따 ‘에스포항병원’으로 지었다.

개원 이래 병원은 지역 거점 병원으로 자리 잡으며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개원 당시 의사 4명, 직원 70명 규모였던 병원은 현재 의료진 48명을 포함해 전체 임직원이 약 700명 가까이에 이른다. 규모가 10배 커지면서 2017년엔 포항 남구로 병원을 확장 이전했다.
에스포항병원은 뇌혈관센터뿐 아니라 뇌질환센터, 심장센터, 말초혈관센터, 뇌신경 재활센터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뇌혈관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자연스럽게 심혈관과 말초혈관 분야까지 진료 역량을 확대하고 관련 센터를 확장했다. 그러면서 진단과 치료, 수술, 재활까지 한 병원에서 이어지는 진료 시스템을 구축했다.
“뇌혈관 질환은 단순히 뇌에서만 발생하는 질환이 아닙니다. 우리 몸의 혈관은 하나로 다 이어져 있죠. 뇌경색 환자를 치료할 때도 뇌경색 발생 원인이 무엇인지, 심장에 문제가 있는지, 경동맥이나 다른 혈관에 동맥경화가 진행돼 있는지, 말초혈관에도 문제가 있는지 등을 함께 살펴봐야 재발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에스포항병원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속하고 정확한 뇌혈관질환 치료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 24시간 응급실엔 신경외과·신경과 전문의가 당직을 서고, 응급 수술 환자를 위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와 간호사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다. 환자가 병원 도착부터 응급 시술(혈전제거술)에 들어가기까지 걸리는 시간(D2P, Door-to-Puncture Time)이 에스포항병원은 평균 83분이다. 한국 평균 130.4분(2023년 기준)보다 훨씬 짧다.
“저희는 응급실에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없는 대신 최종 치료가 가능한 신경외과 전문의가 환자를 제일 먼저 보고 판단해요. 대기 시간이 단축되고, 결정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죠. 응급실 바로 옆에 CT·MRI 검사실이 있어 동선도 굉장히 짧죠. 꼭 필요한 시퀀스만 넣어 빠르게 촬영을 마치고, 이후 수술이 결정되면 곧바로 마취과에 콜을 하고 수술팀이 꾸려집니다. 검사가 끝나기도 전 수술팀이 모입니다.”

에스포항병원 의사들은 대부분 대학 교수 출신이자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실력자들이다. 최근 에스포항병원으로 전입한 정준호 신경외과 교수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15년간 근무한 손꼽히는 집도의이자 연구자다.
숙련된 의료진과 간호팀, 우수한 의료 장비, 신속하게 가동되는 응급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맞물린 덕분에 눈에 띄는 치료 성과가 쌓여갔다. 개원 이래 누적 뇌동맥류 수술 건수는 4500여 건, 급성 뇌경색 혈전제거술은 1290건에 달한다.
특히 급성 뇌경색 환자의 막힌 혈관을 직접 뚫는 동맥 내 혈전제거술은 병원의 뇌졸중 응급치료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다. 국내에서 연간 50건 이상을 시행하는 병원이 많지 않은 가운데 에스포항병원은 지난해 110건이 넘는 혈전제거술을 시행했다. 최근에는 8월 18일부터 23일까지 엿새 동안에만 6건을 시행했다.
병원 측에 따르면 에스포항병원의 혈전제거술 후 재개통 성공률은 약 94%다. 이는 2024~2025년 국내 다기관 연구·학회 자료에서 보고된 재개통률(80.2~83.5%), 해외 임상·레지스트리 자료의 재개통률(81.1~88.0%)보다 높은 수준이다. 재개통률은 막힌 뇌혈관을 혈전제거술로 다시 열어 혈류를 회복시키는 데 성공한 비율로, 혈전제거술의 치료 성과를 보여주는 주요 지표 중 하나다.
이러한 뇌졸중 치료 역량을 바탕으로 에스포항병원은 세계뇌졸중기구(WSO)가 뇌졸중 치료의 질을 평가해 부여하는 최고 등급인 ‘다이아몬드’ 등급을 지금까지 13회 받았다.
진료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개원 이래 18년째 오전 7시 30분부터 의료진이 모여 환자 사례와 연구 내용을 논의하는 모닝 콘퍼런스를 진행하고 있다. 포항스틸러스 지정병원으로서 지역 사회에서도 활발한 역할을 펼치고 있다.
울릉군과의 응급의료 협력, 해외 의료진 연수 등 지역을 넘어선 교류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캄보디아 의료진은 에스포항병원에 와서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간 의료 경험을 쌓고 있다.

뇌혈관 질환은 분초를 다투는 질환으로 대표적인 필수·응급 의료 영역이다. 지역·필수의료 문제가 의료계의 주요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에스포항병원은 18년 전부터 지역 필수의료를 담당해 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다만 김 병원장은 현행 제도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에스포항병원은 뇌혈관 응급환자를 즉시 치료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 119 이송병원 선정 과정에서는 중증·응급환자의 경우 권역응급의료센터나 대형병원으로 우선 고려되는 케이스가 많다고 지적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두고 있지 않은 에스포항병원은 현재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김 병원장은 응급실의 규모나 병상 수보다는 실제 중증 뇌혈관 환자를 얼마나 신속하게 치료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 병원은 신경외과 의사가 야간에도 당직을 서고 있고, 뇌혈관 응급환자가 오면 응급실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곧바로 수술실이나 중환자실로 이동한다”며 “그런 진료 특성상 응급실에 많은 병상을 둘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뇌혈관 질환처럼 시간과 전문성이 중요한 질환은 ‘가까운 큰 병원’ 중심의 이송에서 ‘치료할 수 있는 병원’ 중심의 이송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지키는 병원이 지속 가능하려면 병원 하나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환자 발생부터 119 이송, 응급실 진료, 전문 치료, 이후 회복과 재활까지 하나의 지역 의료체계로 연결돼야 합니다.”
18년 전, 그는 왜 뇌졸중 환자가 치료받기 위해 대도시까지 가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질문이 병원을 만들었다.
그가 그리고 있는 지역 의료체계의 끝에도 결국 같은 목표가 있다.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제때 살리는 것.’ 병원을 세운 순간부터 지금까지 놓지 않은 원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