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31일 (월)

심박동기 거부한 환자, 6일 뒤 마음 바꿨다…의사는 매일 같은 질문을 했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 #35 설득과 기다림, 그 사이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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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박동기 거부한 환자, 6일 뒤 마음 바꿨다…의사는 매일 같은 질문을 했다

몇 년쯤 전의 일인데, 아직도 가끔 그 환자가 떠오른다.

그날 요양보호사가 집을 방문했다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며칠째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였지만, 혼자 살고 있어 그때까지 그의 상태를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응급실 심전도에는 완전방실차단이 보였다. 심장의 위쪽에서 만든 전기신호가 아래쪽으로 전혀 전달되지 않는 상태였다. 처음에는 혈압조차 측정되지 않았고, 심박수는 분당 30회로 매우 느렸다.

차트를 열어보니 이번에 처음 생긴 병이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심박동기를 넣어야 한다는 설명을 여러 번 들은 기록이 있었다. 맥박이 계속 느리게 뛰면 콩팥 기능이 더 나빠지고 갑작스럽게 심장이 멎을 수도 있다는 경고에도, 그는 그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그사이 당뇨 합병증으로 오른쪽 다리를 무릎 아래에서 절단했고, C형 간염은 간암으로 진행했다. 맥박이 지나치게 느린 탓에 간암 치료조차 적극적으로 받기 어려웠다.

응급실에서는 우선 약으로 심박수를 올리려 했지만, 약이 들어가자마자 치명적인 심실성 부정맥이 발생했다. 자칫 심정지로 이어질 수 있는 순간이었다. 두 차례의 전기 충격 끝에 겨우 리듬이 돌아왔지만, 심박수는 곧 다시 분당 30회로 떨어졌다. 협진을 거친 여러 과의 의견은 하나로 모였다. 심박동기가 필요했다. 문제는 환자의 마음이었다.

“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심박동기도, 중환자실에서의 적극적인 치료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유일한 보호자로 온 누나는 수년간 심박동기를 넣으라고 설득해 왔다고 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는 한숨 속에, 지친 설득의 시간들이 묻어났다. 죽을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들은 뒤에도 환자의 생각은 확고했다. 결국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다.

그런 상태로 환자는 우리 과 병실로 입원했다. 의뢰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환자분 적극적인 치료 거부하여 연명의료계획서 작성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환자분 투석에 대한 의지는 있는 상태입니다.’

“투석은 받겠습니다. 그런데 심박동기는 안 합니다.”

문제는 그가 심박동기를 거부하는 한, 정작 그가 원했던 투석조차 시작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콩팥 기능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체내에 수분이 쌓이고 있었다. 머지않아 투석이 필요했지만, 심박수가 분당 30회에 불과해 투석 중 발생하는 혈압 저하를 견디기 어려웠다. 그가 받고 싶어 한 치료를 하려면, 그가 그토록 피하고 싶어 한 치료를 먼저 받아들여야만 했다. 모든 치료를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겉으로는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는 선택에도, 그 사람만의 이유와 기준이 있을 터였다.

나는 그의 입장을 가만히 짚어보게 되었다. 한쪽 다리가 없고, 홀로 살며, 쓰러져 있어도 아무도 알지 못했던 삶. 그 고립 끝에 다시 병원에 와서 투석을 시작해야 하고, 가슴에 평생 기계를 넣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렇게까지 해서 삶을 이어가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더 강하게 설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 번 거절했다고 해서 이야기의 문을 닫아버리지도 않았다. 회진 때면 담담히 물었다.

“오늘도 생각은 같으세요?”

그때마다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 사이 현실적인 문제는 차곡차곡 쌓여갔다. 심박수를 유지하려면 정맥으로 약을 계속 주입해야 했다. 누나는 요양병원으로 옮기고 싶어 했지만, 지속적인 정맥 약물이 필요한 환자를 받아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치료를 거부하겠다고 선택했음에도, 현실의 문제들은 그 선택만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입원한 지 엿새째 되던 날 아침이었다. 여느 때처럼 다시 물었는데, 이번에는 그의 대답이 달랐다. 심박동기를 넣겠다고 했다. 나는 즉시 순환기내과에 협진을 의뢰했다. 회신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했다. ‘환자 설득에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문장을 읽는데 어딘가 어색했다. 내가 한 일이라곤 매일 같은 질문을 던지고, 그의 시간을 기다려준 것뿐이었다.

진짜 복잡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막상 그가 동의했을 때, 그의 몸은 이미 영구형 심박동기를 넣을 수 없는 상태였다. 몇 년 전이었다면 비교적 단순했을 시술이 이제는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져 있었다. 우선 목 혈관을 통해 임시 심박동기를 삽입했다. 심장이 적절한 박자로 뛰기 시작하자 비로소 혈액투석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퇴원의 길은 아득히 멀기만 했다. 폐렴, 혈변, 그리고 욕창까지. 하나가 겨우 나아지면 기다렸다는 듯 또 다른 문제가 터져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을 견뎌내는 동안, 임시 심박동기만이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그의 맥박을 이어주었다. 그렇게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마침내 그는 영구형 심박동기를 가슴에 품을 수 있었다. 이후 투석이 가능한 요양병원으로 전원했다. 그 뒤로 그를 다시 보지는 못했다.

'처음부터 심박동기를 넣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렇다고 수년간 이어진 그의 거절을 단지 틀린 선택이었다고 쉽게 잘라 말할 수도 없다. 그때는 그때의 삶이 있었고, 나름의 고심이 있었을 테니까.

생각해 보면 의사는 늘 누군가를 설득하는 직업이다. 그럼에도 그 환자를 지나쳐 오며, 나는 ‘설득’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조금 다르게 달아보게 되었다. 설득이란 나의 논리로 상대의 마음을 돌려놓는 일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환자들을 오래 곁에서 바라보다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충분히 설명하고,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듣는 것. 결정을 바꾸라고 조급하게 재촉하지 않으면서도, 한 번의 거절로 다시 물어볼 기회까지 닫아버리지 않는 것.

어쩌면 매일 병실 문을 열고 어제의 대답과 오늘의 대답 사이의 미세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던 입원전담전문의라는 자리가, 내게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허락했는지도 모른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는 심박동기를 넣었고, 투석을 시작했으며, 살아서 병원 문을 나섰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한 해피엔딩이라 부를 수는 없다. 다리 하나를 잃고, 암을 끌어안은 채, 이제는 가슴속 심박동기와 투석 기계에 생명을 맡긴 채 살아가게 된 사람에게 ‘치료가 잘 되었다’는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나는 여전히 답을 알지 못한다.

아마 그래서 그 환자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누군가를 멋지게 설득해 낸 성공담이어서가 아니라, 무엇이 그 사람을 위한 진정한 설득이었는지 끝내 확신할 수 없었던 환자였기 때문에.

<편집자주>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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