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25일 (화)

같은 관절염 약인데 왜 나만 안 나을까⋯답은 '내 탓' 아니었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연구팀, 몸속 시스템 '치료 불응성' 비밀 국제학술지 공개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한 여성이 통증을 느끼며 손과 손목을 감싸쥐고 있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연구팀은 류마티스질환의 치료 불응성이 단일 염증 경로가 아니라 몸속 여러 시스템이 얽혀 만들어내는 결과라는 사실을 수학 모델로 밝혀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먹는 약은 같은데, 왜 누군가는 낫고 누군가는 낫지 않을까.

류마티스관절염이나 루푸스 같은 자가면역 질환은 최신 생물학적 제제와 표적치료제가 잇따라 나왔어도, 여러 약을 순서대로 써봐도 증상이 가라앉지 않는 환자가 여전히 적지 않다.

한국 연구진이 그 이유를 풀어냈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류마티스내과 정성수·전찬홍·정혜민 교수팀은 치료제를 여러 번 바꿔가며 써도 잘 낫지 않는 류마티스질환의 '치료 불응성'은 특정 염증 경로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면역과 신경, 대사 등 여러 몸속 시스템이 서로 얽혀 만들어내는 결과라고 25일 밝혔다. 연구팀은 이 사실을 수학 모델로 확인했다.

관련 논문은 국제 학술출판사 '스프링거 네이처(Springer Nature)'가 발행하는 《npj 시스템생물학과 응용(npj Systems Biology and Applications)》 8월 15일자에 실렸다.

같은 병인데 왜 약이 안 듣는 사람이 있을까

류마티스관절염 환자 중에는 여러 약을 차례로 써봐도 증상이 거의 사라지는 상태, 즉 관해에 이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유럽류마티스학회는 2021년 이런 환자를 '난치성 류마티스관절염(D2T)'으로 공식 정의했다. 그동안 류마티스질환 치료는 면역세포가 내뿜는 신호물질인 사이토카인이나, 염증 경로 하나를 콕 집어 막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그런데 실제 진료 현장서는 이 방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있다. 혈액 염증 수치는 정상인데 통증과 피로가 극심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증상은 좋아졌는데 염증 지표는 계속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연구팀은 여기서 출발했다. 치료 불응성은 특정 경로 하나의 오류가 아니라, 여러 생물학적 시스템이 함께 작동하면서 몸이 특정 상태에 눌러앉은 결과라는 가설을 세웠다.

몸속엔 서로 다른 갈림길이 있다

연구팀은 인체의 복잡성을 세 갈래 축으로 압축했다. ▲장 점막과 미생물, 그리고 몸이 자기 조직을 공격하지 않게 막는 면역 균형을 다루는 축 ▲신경과 지방조직, 면역세포가 얽힌 축 ▲세포 대사와 스트레스 반응을 다루는 축이다. 연구팀은 이 세 축과 6개 핵심 변수를 하나로 엮은 수학 모델에 '3축 통합 프레임워크(3-AIF)'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모델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몸 상태는 '건강'과 '질환' 두 가지로만 나뉘지 않았다. 완전히 건강한 상태, 증상이 거의 없지만 완전히 낫지는 않은 상태, 병이 계속 활발하게 진행되는 상태, 치료가 잘 듣지 않는 상태까지, 몸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곳은 한 군데가 아니었다.

산속에는 여러 개의 골짜기가 있다. 공이 어느 골짜기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멈추는 자리가 달라지듯, 같은 진단을 받은 환자라도 유전적 배경과 환경, 병이 진행돼 온 경과에 따라 서로 다른 골짜기에 자리를 잡았다. 치료 반응도 그만큼 극단적으로 갈렸다.

한번 넘어간 몸은 왜 되돌아오지 못할까

자극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몸은 건강한 상태에서 병이 있는 상태로 넘어갔고, 자극이 더 강해지면 치료가 잘 듣지 않는 상태까지 옮겨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한번 병이 있는 상태로 넘어간 몸은 처음 병을 일으켰던 자극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예전의 건강한 상태로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 현상에 '이력현상(히스테리시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병을 키운 방향과 되돌리는 방향이 다르다는 뜻이다. 그만큼 이 갈림길을 넘기 전에 일찍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는 걸 수학으로 보여준다.

눈에 띄는 대목은 따로 있다. 모델에 넣은 6개 변수 중, 병의 상태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상위 세 개는 모두 신경·지방조직·면역세포 축에 몰려 있었다. 그중에서도 미주신경이 핵심이었다. 뇌와 내장 기관을 잇는 이 신경은 부교감신경을 통해 염증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한다. 이 기능이 모델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꼽혔다. 신경과 면역을 함께 다루는 최신 치료 흐름과도 통하는 결과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두 가지 방법으로 검증했다.

먼저 세 축을 하나씩 빼고 다시 시뮬레이션해봤다. 그랬더니 여러 안정 상태와 이력현상은 세 축이 서로 얽혀 있을 때만 나타났다. 축을 하나라도 떼어내면 이런 복잡한 양상 자체가 사라졌다.

다음으로 실제 환자 데이터와 맞아떨어지는지 확인했다. 류마티스관절염, 루푸스, 강직척추염, 피부근염, 전신경화증 등 5개 자가면역 질환의 공개 유전자 데이터 6건을 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 모델이 예측했던 유전자들은 류마티스관절염 환자의 혈액과 관절 활막 조직에서 다른 유전자들과 확연히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왼쪽부터) 순천향대 부천병원 류마티스내과 정성수‧전찬홍‧정혜민 교수 사진=순천향대 부천병원

약이 안 듣는 건 의지 문제가 아니다

정성수 교수는 "이번 연구는 난치성 류마티스질환 환자들의 문제를 개별 유전자나 세포 수준을 넘어 시스템 전체의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한 첫 연구다. 난치성 류마티스 질환에서 단일 경로 표적 치료가 한계에 부딪히는 이유와 여러 축을 동시에 조절하는 치료 전략의 필요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모델은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공개 유전자 데이터로 검증한 단계로 실제 환자를 추적한 임상 데이터로 확인하는 일은 아직 남아 있다.

정 교수는 다음 단계도 그려두고 있다. 유전자·단백질·대사물질처럼 여러 층위의 생체 정보를 한꺼번에 분석하는 '다중오믹스' 데이터까지 활용해 모델을 검증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향후 치료불응성 류마티스관절염 환자를 선별해 장기적인 임상·다중오믹스 데이터를 통해 모델을 검증한다면, 환자마다 어떤 생물학적 축이 치료 불응성을 주도하는지 파악하고 여러 축을 함께 고려하는 정밀 맞춤형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금 나는 뭘 확인해야 할까

정밀 맞춤치료가 실제 진료실에 들어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점검해볼 수 있는 부분은 있다. 기전이 다른 생물학적 제제나 표적치료제를 2가지 이상 써봤는데도 증상이 충분히 가라앉지 않았다면, 앞서 소개한 '난치성(D2T)' 범주에 해당하는지 담당 의사와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증상과 검사 결과가 따로 노는 느낌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혈액 염증 수치는 좋아졌는데 통증과 피로는 그대로이거나, 반대로 통증은 줄었는데 염증 수치는 그대로인 경우다. 이 역시 약을 하나 더 추가할 문제라기보다, 수면, 스트레스, 장 건강 같은 다른 축까지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

다음 진료 때 이런 어긋남을 그냥 넘기지 않는 것, 그 자체가 내 몸에 맞는 치료를 앞당기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약이 안 듣는다고 해서 환자의 의지나 노력이 부족했던 게 아니다. 몸이 여러 시스템의 상호작용 속에서 특정 상태에 자리를 잡았을 뿐이라는 이번 연결과는, 왜 나만 안 낫는지 답답해하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설명과 함께 다음 치료 전략의 실마리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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