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19일 (수)

“뇌졸중인 줄 알았는데”⋯눈 뿌옇고 팔다리 힘 빠진 30대, ‘이 병’일 수도

다발성경화증 환자 85% ‘재발-완화형’⋯증상 좋아져도 재발 가능, 꾸준한 치료 중요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의사가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살펴보며 환자에게 검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다발성경화증은 뇌·척수·시신경에 생긴 염증성 병변을 확인하기 위해 MRI 검사가 중요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어느 날 한쪽 눈앞에 안개가 낀 듯 뿌옇게 보이고, 팔이나 다리에 힘까지 빠진다면 누구나 뇌졸중부터 걱정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시력 변화나 한쪽 팔다리 마비는 실제 뇌졸중 경고 신호일 수 있어 신속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뇌졸중만 이런 증상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특히 20~40대에서 시력 저하나 팔다리의 힘·감각 저하가 수시간에서 수일에 걸쳐 나타나 24시간 이상 이어진다면 ‘다발성경화증(MS)’ 같은 중추신경계 염증질환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순천향대 부천병원은 젊은 나이에 시력 저하나 마비, 보행·배뇨장애가 나타난다면 다발성경화증 같은 중추신경계 염증질환 가능성도 살펴봐야 한다고 19일 밝혔다. 신경과 김지은 교수는 이런 증상이 반복되거나 오래 지속될 경우 정확한 진단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눈 흐려졌다 괜찮아졌는데…병까지 멈춘 건 아냐

다발성경화증은 면역체계가 뇌·척수·시신경의 신경섬유를 둘러싼 ‘수초’를 공격하는 만성 자가면역질환이다.

수초는 전깃줄을 감싸는 피복과 비슷하다. 신경 신호가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돕는다. 이 수초가 손상되고 염증이 되풀이되면 뇌와 척수, 시신경 여러 곳에 병변과 흉터가 남는다. ‘다발성경화증’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증상은 병변이 생긴 곳에 따라 다르다. 시신경에 염증이 생기면 한쪽 눈이 뿌옇게 보이거나 시력이 떨어질 수 있다. 척수가 침범되면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감각이 둔해지거나 걷기가 어려워진다. 물체가 둘로 보이는 복시나 어지럼증, 배뇨장애가 생기기도 한다. 심한 피로와 통증, 집중력 저하를 호소하는 환자도 있다.

환자의 약 85%는 처음에 ‘재발-완화형’ 양상을 보인다. 시력 저하나 마비 같은 증상이 생겼다가 수주에서 수개월에 걸쳐 좋아진 뒤, 한동안 지나 다시 새로운 신경학적 증상이 생기는 형태다.

증상이 사라졌다고 병까지 멈춘 것은 아니다. 몸으로 느끼는 이상이 없어도 MRI에서는 새로운 병변이 발견될 수 있다. 염증이 되풀이되면 신경 손상이 쌓이고 장기적으로 장애가 남을 수 있다.

한국에선 드물지만…닮은 희귀질환도 적지 않아

다발성경화증은 북미와 유럽에 비해 한국에서는 드문 질환이다. 세계적으로는 약 290만명이 앓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 환자의 최근 현황을 보여주는 조사도 있다. 올해 국제학술지 《신경학(Neurology)》에 발표된 전국 병원 기반 등록연구에서 연구진은 2025년 1~3월 47개 병원에서 추적 진료 중인 환자를 조사했다. 최근 6개월 안에 한 번 이상 외래진료를 받은 환자를 집계한 결과 다발성경화증은 1799명이었다.

눈여겨볼 대목은 비슷한 증상을 일으키는 다른 중추신경계 염증질환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같은 조사에서 시신경척수염범주질환(NMOSD)은 1616명, 수초희소돌기아교세포당단백질항체관련질환(MOGAD)은 781명이었다. 세 질환을 합치면 4196명이었다.

세 질환 모두 뇌와 척수, 시신경에 염증을 일으켜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 비슷할 수 있다.

하지만 병이 생기는 과정과 치료법이 달라 정확히 구별해야 한다.

다발성경화증의 시신경염은 대개 한쪽 눈에 생기며 회복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반면 NMOSD는 양쪽 눈을 침범하거나 시력이 심하게 떨어질 수 있다. 척추뼈 세 마디 이상 길이의 척수 병변이 생기거나, 심한 딸꾹질·구역·구토가 수일 이상 이어지기도 한다. MOGAD는 양쪽 시신경에 염증이 생기거나 시신경 앞쪽이 붓는 경우가 비교적 흔하다. 소아에서는 의식 변화 등을 동반한 급성파종성뇌척수염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세 질환을 가려낼 때는 뇌·척수·시신경 MRI와 혈액검사가 중요하다. NMOSD 환자 상당수에서는 ‘아쿠아포린-4 항체’가 검출된다. MOGAD는 ‘MOG 면역글로불린G 항체’ 양성이 진단의 중요한 근거다. 다발성경화증에서는 일반적으로 두 항체가 검출되지 않는다.

첫 검사로 확진 못할 수도…‘언제, 어디에 생겼나’ 확인

다발성경화증은 검사 하나만으로 진단하지 않는다. 증상과 신경학적 진찰, 뇌·척수 MRI, 혈액검사, 뇌척수액검사를 함께 살핀다.

핵심은 염증이 중추신경계의 여러 부위에 생겼는지, 서로 다른 시기에 나타난 흔적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환자가 실제 겪은 마비나 시력 저하뿐 아니라 증상이 없을 때 MRI에서 새로 발견된 병변도 중요한 단서가 된다.

현재는 ‘2024 개정 맥도널드 진단 기준’을 적용한다. 개정 기준에서는 시신경도 다발성경화증 병변을 판단하는 다섯 번째 해부학적 부위에 포함됐다. 뇌척수액에서는 중추신경계 안에서 면역반응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올리고클론띠’ 같은 지표도 확인한다.

처음 증상이 생겼을 때는 확진에 필요한 근거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이후 증상이 재발하는지 지켜보거나 MRI를 다시 찍어 새로운 병변이 생겼는지 확인한 뒤 다발성경화증으로 진단하는 경우도 있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신경과 김지은 교수 사진=순천향대 부천병원

EBV 감염과 연관…감염됐다고 모두 병 생기는 건 아냐

다발성경화증의 원인은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유전적 소인과 여러 환경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 감염과의 연관성이 주목받는다. 1000만명이 넘는 미군 복무자를 장기간 분석한 연구에서는 EBV에 감염된 뒤 다발성경화증 위험이 크게 높아졌다.

그렇다고 EBV 감염 자체가 다발성경화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감염자 대부분은 이 병에 걸리지 않는다. 흡연과 청소년기 비만, 낮은 비타민D 농도도 위험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김지은 교수는 "흡연이 다발성경화증 발병 위험뿐 아니라 질환 경과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어 금연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완치 어렵지만 재발 줄일 수 있어…약 임의로 끊지 말아야

치료는 크게 급성기 치료와 질병조절치료, 증상·재활치료로 구분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시력 저하나 마비처럼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재발이 생기면 고용량 정맥 스테로이드로 염증을 빠르게 억제한다. 증상이 심한데도 충분한 효과가 없으면 혈장교환술을 고려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질병조절치료제를 써서 재발과 새로운 병변 발생을 줄인다. 한국에서도 주사제와 먹는 약, 일정한 간격으로 투여하는 단클론항체 등 여러 치료제가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질환 초기부터 효과가 높은 치료제를 사용해 재발과 장애가 쌓이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는 전략도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다.

피로와 통증, 근육 경직, 배뇨장애, 우울감, 보행장애에는 증상에 맞춰 약물치료와 재활치료를 병행한다.

김 교수는 “다발성경화증은 대중에게는 생소하지만 젊은 연령에서도 시력 저하와 마비, 이에 따른 장애를 일으킬 수 있어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질환”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 완치는 어렵지만 약물로 재발을 충분히 막고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며 “같은 질환이라도 환자마다 경과와 적절한 치료법이 다른 만큼 약을 임의로 조절하거나 중단하지 말고 전문 의료진과 충분히 소통하며 꾸준히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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