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혈장 한 방울로 심혈관질환과 관련된 분자 신호를 약 10분 만에 읽어내는 기술이 개발됐다. 기존에는 혈액 속 미세입자를 따로 분리한 뒤 그 안의 유전물질을 다시 추출해야 했지만, 새 기술은 이 과정을 크게 줄였다.
서울아산병원 안과 이준엽 교수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화학물리학과 홍선기 교수 공동연구팀은 혈장 속 마이크로RNA(miRNA)를 빠르게 분석하는 진단 플랫폼 ‘SAFE’를 개발했다고 18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나노과학·바이오소재 분야 국제학술지 《스몰(Small)》에 게재됐으며 표지 논문으로도 선정됐다.
혈액 속 작은 ‘주머니’에 질병 신호 담겨
우리 몸의 세포는 아주 작은 주머니 같은 입자를 혈액 속으로 내보낸다. 이를 ‘세포외소포’라고 한다.
이 작은 주머니 안에는 단백질과 유전물질 등이 들어 있다. 몸에 질병이 생기면 내용물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이 변화를 읽으면 질환과 관련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세포외소포 안의 ‘마이크로RNA’다. 마이크로RNA는 세포의 여러 기능을 조절하는 작은 유전물질이다. 질환에 따라 종류와 양이 달라질 수 있어 각종 질병의 단서를 찾는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기존에는 이런 분자 신호를 읽으려면 혈액에서 세포외소포를 먼저 분리하고, 그 안의 RNA를 다시 추출해야 했다. 여러 단계를 거치는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전문 장비도 필요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SAFE는 이 과정을 크게 줄였다. 세포외소포 안으로 검사 물질을 직접 넣어 목표 마이크로RNA를 만나면 빛을 내도록 한 방식을 활용했다.
초음파를 이용해 검사 물질이 든 작은 주머니와 세포외소포를 합치면, 별도로 세포외소포를 분리하거나 RNA를 꺼내지 않고도 내부의 마이크로RNA를 확인할 수 있다. 덕분에 분석 시간은 약 10분으로 줄었다.

심혈관질환 환자 20명 분석…91.4% 정확도
연구팀은 심혈관질환 환자 20명과 건강한 사람 15명 등 모두 35명의 혈장으로 SAFE의 성능을 시험했다. 분석 대상은 ‘miR-133a’와 ‘miR-208a’라는 두 종류의 마이크로RNA다. 모두 심장근육 손상과 관련해 연구돼 온 물질이다.
그 결과 SAFE는 두 마이크로RNA를 이용해 심혈관질환 환자와 건강인을 각각 91.4%의 정확도로 구분했다. 여기서 10분은 심혈관질환을 확진하는 데 걸린 시간이 아니라 혈장 속 특정 마이크로RNA를 검출·분석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이번 연구도 환자 20명과 건강인 15명을 대상으로 한 초기 검증 단계다. 실제 진료에 쓰려면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성능을 확인해야 한다. 기존 심전도나 혈액검사와 비교해 어떤 환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복잡한 분석 과정 줄여…응급실 활용 가능성
이번 연구에서 눈에 띄는 성과는 복잡했던 분자 분석 과정을 크게 줄였다는 점이다.
현재 심근경색 등이 의심되면 증상과 심전도, 심장근육 손상을 확인하는 트로포닌 혈액검사 등을 종합해 판단한다. SAFE 역시 추가 검증을 거치면 응급실처럼 빠른 판단이 필요한 곳에서 기존 검사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
분석할 마이크로RNA를 달리하면 다른 질환 연구에도 응용할 수 있다. 연구팀은 암과 신경퇴행성질환, 안과 질환 등으로 연구 대상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준엽 교수는 “복잡했던 세포외소포 분석을 단 10분 만에 수행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며 “향후 실제 진료 현장에서 환자의 질환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선기 교수는 “세포외소포를 분리하거나 RNA를 추출하지 않고 혈장에서 바로 마이크로RNA를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 SAFE의 장점”이라며 “다양한 질환과 환자를 대상으로 검증을 확대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진단 기술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