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하세요?”
입원전담전문의로 일하며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다. 환자도, 보호자도, 오래 알고 지낸 동료 의사도, 명절에 만난 친척도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설명한다. 외래는 보지 않고 입원한 환자만 돌보는 의사라고, 입원부터 퇴원까지 병동을 지키는 주치의라고. 몇 년째 같은 설명을 반복하다 보면 문득 이상해진다. 왜 이 일은 늘 처음부터 설명해야 할까.
이 연재도 어쩌면 그래서 이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여러 필자가 저마다 다른 병원, 다른 배경에서 글을 쓰지만 가만히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다들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지난번 글에서 그렇게 썼다. 소아병동에서 부모의 불안을 가라앉히는 일도 하나의 처방이라고. 다시 차례가 돌아와, 이번에는 그 설명을 한 번 더 하기보다 왜 우리가 매번 설명해야 하는지를 적어 보려 한다.
이유의 절반은 숫자에 있다. 해마다 의사가 3000명쯤 배출된다. 그중 대학병원에 남아 계속 일하는 사람은 많이 잡아도 열에 하나 남짓이다. 거기서 입원전담전문의는 다시 한 줌이고, 그중 소아를 보는 사람은 정말 몇 되지 않는다. 무리가 이렇게 작아지면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작은 무리는 좀처럼 공감대를 만들지 못하고, 공감대가 없으면 사람들은 그 일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는 사람마다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게 된다.
숫자 문제는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몇 해 사이 소아과를 지원하는 전공의 수가 크게 줄어, 앞으로 배출될 소아과 전문의 수도 갈수록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다 보니 병동을 지킬 인력이 줄었고, 그렇게 생긴 빈자리를 입원전담의가 메운다. 누가 골라서 온 자리라기보다, 비어 버린 곳을 채우는 쪽에 가깝다.
이런 자리가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흔히 급여 탓이라고들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누구든 일자리를 고를 때는 근무 시간이 짧고, 강도가 세지 않고, 집에서 가까운 곳을 먼저 본다. 이름이 알려진 곳이라면 더 좋다. 이건 의사만의 셈법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당연한 기준이다. 문제는 소아병동의 힘든 자리들이 하필 그 기준을 하나같이 비껴간다는 데 있다. 밤이 길고, 손이 많이 가고, 대개 멀리 있다. 조건을 조금 낫게 해줘도 선뜻 가겠다는 사람이 드물다. 이름이 알려진 큰 병원이라면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훨씬 더 어렵다.
설명이 반복되는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병동에서 내가 하는 일 가운데 상당 부분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검사나 시술은 흔적이 남지만, 흩어진 여러 과의 판단을 하나로 꿰는 일, 보호자를 앉혀 두고 같은 설명을 몇 번이고 다시 하는 일, 밤사이 달라질지 모르는 상태를 지켜보며 언제 움직여야 할지 가늠하는 일은 지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해놓아도 티가 잘 나지 않는 일이어서, 그 일을 한다는 사실 자체를 매번 설명해야 한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며칠째 배가 아프다며 입원한 아이가 있었다. 열도 조금 있고 배도 아픈데, 원인이 한 가지로 딱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당장 손을 써야 하는 상태인지, 조금 지켜봐도 되는 상태인지가 애매했다. 외과 선생님과 상의하고, 초음파 결과를 함께 보고, 몇 시간 간격으로 직접 배를 만져 보며 변화를 살폈다. 그 사이 겁에 질린 부모 곁에 앉아,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왜 바로 결정하지 않고 지켜보는지를 몇 번이고 풀어 설명했다.
다행히 아이는 수술 없이 며칠 만에 좋아져 집으로 돌아갔다. 그 며칠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검사를 내는 것보다 그 곁을 지키며 지켜보고 설명하는 일이었다. 그런 일은 끝나고 나면 기록에 잘 남지 않는다. 그래도 그 시간이 없었다면 아이도, 부모도 훨씬 더 불안하고 외로웠을 것이다.
소아 병동이 늘 이렇게 마음 졸이는 곳은 아니다. 큰 병을 안고 오는 아이들이 모이는 병동도 있지만, 내가 일하는 곳처럼 대부분의 아이가 며칠 앓다가 한결 나아져 집으로 돌아가는 병동도 많다. 밤새 열에 시달려 부모를 애태우던 아이가 퇴원하는 날엔 언제 그랬냐는 듯 병실을 뛰어다닌다.
나는 그런 장면을 보고 싶어 소아과를 택했다. 무너져 가는 과정을 오래 지켜보기보다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건 나만의 바람도 아니다. 누구든 아이가 아프지 않기를 가장 먼저 바라지만, 혹시 아프더라도 얼른 회복해 무사히 자라 주기를 바란다. 소아과는 그 바람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과다.
그런데도 요즘 소아과를 선뜻 택하기는 쉽지 않다. 일이 유난히 고되어서만은 아니다. 솔직히 우리가 다른 과보다 훨씬 무거운 짐을 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아주 드물게라도 일이 잘못됐을 때, 그 뒤에 따라오는 일들이 그동안 쌓아 온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만큼 무겁다는 점이다. 그런 일이 자주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 한두 번으로 모든 것이 흔들릴 수 있다면,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 앞에서 망설이게 된다.
설명의 반복은 병동 밖에서도 이어진다. 환자와 보호자만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다른 과에도, 병원 안에서 자리를 맡은 이들에게도,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늘 다시 설명해야 한다. 극적인 순간은 없다. 다만 오래 일해도 좀처럼 줄지 않는 이 잔잔한 되풀이가 사람을 조금씩 지치게 한다.
그래서 이 글을 희망찬 문장으로 맺기는 조금 어렵다. 언젠가 이 일이 제대로 자리 잡고, 아이를 돌보는 일의 무게를 사회가 알아줄 것이라고 말하면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나는 아직 그렇게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오늘도 어떤 아이는 열이 내려 집으로 돌아갔고, 그 곁에는 상황을 설명해 주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거면 오늘 몫은 한 셈이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다시 설명하는 대신, 왜 우리가 매번 설명해야 하는지를 이렇게 적어 두는 것으로 마친다.

<편집자주>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