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10일 (월)

[기자수첩] 분쟁 때마다 소환된 '임성기 정신'…누구에게나 같은 잣대 적용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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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그룹 본사 전경. 사진=한미약품

한미그룹에서 경영권 분쟁과 내부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바로 ‘임성기 정신’이다. 창업주인 선대회장의 경영철학으로 통칭되는 ‘임성기 정신’은 별도 문구로 정의돼 있지는 않다. 다만, 회사 공식 자료를 보면 임 회장은 ‘인간존중’과 ‘가치창조’를 경영이념으로 삼고, 우리 기술로 더 좋은 약을 만들겠다는 신념 아래 창조·혁신·도전을 이어갈 것을 강조했다.

한미그룹은 ‘임성기 정신’을 이어가고 있을까? 올해 초 불거진 팔탄공장 성비위 사건을 놓고 한미사이언스 개인 최대 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한미약품 전문경영인인 박재현 당시 대표간 분쟁 국면에서도 ‘임성기 정신’이 거론됐다. 당시 팔탄공장 고위 임원의 성비위 의혹이 제기됐고, 박 전 대표는 이 임원의 조사·징계 과정에 신 회장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신 회장은 이를 부인했다.

갈등이 커지자 송영숙 회장이 나서 “창업주 임성기 선대 회장도 한미의 다음 세대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중심이 되고, 대주주는 이사회를 통해 이를 지원하는 선진화된 지배구조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각 사 전문경영인은 관련 제도와 내부 통제 시스템을 더욱 공정하고 투명하게 정비해 달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신 회장의 경영 개입 논란을 겨냥해 전문경영인의 독립성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이번에는 송 회장 자신이 같은 원칙으로 검증받을 상황에 놓였다. 과거 한미약품에서 근무하며 임성기 회장 비서실을 거친 김태호 전 큐어세라퓨틱스 대표는 송 회장이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전 대표는 “임성기 정신이 복원돼야 한다”며 “선대회장은 준법 경영을 강조했고, 이를 위해서는 자정 작용과 내부 통제 시스템이 돌아가야 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표가 제기한 의혹의 사실관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 가르자는 것이 아니다. 신 회장을 둘러싼 경영 개입 논란에는 전문경영인의 독립성과 ‘인간존중’이라는 원칙이, 송 회장을 둘러싼 법인카드 의혹에는 공정하고 투명한 내부통제라는 원칙이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회사 규정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지원이라면 그 근거를 공개하면 되고, 규정을 벗어났다면 환수하면 될 일이다. 신 회장의 경영 관여 역시 정당한 대주주의 역할이었다면 그 범위와 근거를 설명하면 된다. 판단은 이사회와 감사위원회가 하면 된다.

한미그룹에서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임성기 정신’은 상대방의 행동을 평가하는 잣대로 소환돼 왔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임성기 정신을 요구하기 전에 자신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해 봤는지는 의문이다. ‘인간존중’은 피해자 보호와 독립 조사로, 전문경영인 체제는 대주주의 개입 한계를 명확히 하는 규정으로, 공정과 투명성은 오너의 회사 자산 사용을 통제하는 감사 절차로 증명하면 된다.

한미그룹에 부족한 것은 ‘임성기 정신’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이를 말하고 있다. 부족한 것은 그 정신이 최대주주와 창업주 가족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다. 창업주의 정신이, 분쟁 때마다 소환되는 구호가 아니라 실제 경영을 움직이는 원칙으로 남기를 바란다.

박병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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