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영업자인 박 씨(남성, 만 55세)는 몇 년째 건강검진에서 지방간을 지적받았지만, 비만과 당뇨병이 있으면서도 별다른 증상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최근 건강검진에서 간에 종양이 발견됐다. 검사 결과는 간암이었다. 다행히 간 기능이 잘 유지되고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 않아, 로봇 간 절제술로 종양이 있는 부위만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었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간담췌외과 임마누엘 교수는 "간암의 조기 진단이 어려운 이유는 초기에 뚜렷한 증상이 없고 상당히 진행된 이후에도 소화불량, 체중 감소, 식욕 저하, 피로감 등 비특이적 증상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간 기능이 악화하면 황달이나 복수 등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고 10일 말했다.
발생은 일곱 번째인데 사망은 왜 두 번째일까
2023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간암은 국내에서 일곱 번째로 많이 발생한 암이다. 그런데 통계청 사망원인통계에서는 폐암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발생 순위보다 사망 순위가 훨씬 높다는 것은 그만큼 늦게 발견되거나 진행이 빠르다는 뜻이다.
간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40.4%(2019년부터 2023년까지)로 2001년부터 2005년까지의 20.6%보다 크게 올랐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전체 암 평균 생존율 73.7%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 그만큼 간은 증상 없이 병이 깊어지는 '침묵의 장기'로 불린다.
원인도 달라지고 있다. 간암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원인은 만성 B형·C형 간염 바이러스와 간경변, 그리고 진행된 대사이상 지방간질환이나 알코올성 간질환이다. 예방접종과, 몸속 바이러스를 억제하거나 없애는 항바이러스 치료가 널리 쓰이면서 B형간염으로 인한 간암은 줄고 있지만, 과음이나 비만·당뇨병에 따른 지방간으로 인한 간암은 늘고 있다. 고령화와 생활습관 변화로 지방간 환자가 계속 늘고 있어 이런 흐름은 앞으로 더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간경변 없이도 암으로 건너뛴다
박 씨처럼 간경변으로 진단받은 적이 없는데도 간암이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고려대 의대 의료정보학교실 정석송 교수 연구팀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로 508만 410명을 2020년까지 추적 관찰한 결과, 대사이상 지방간질환이 계속 있던 사람은 이 병이 없는 사람보다 간세포암 발생 위험이 4.7배 높았다. 건강검진 사이에 지방간이 새로 생긴 경우에도 위험은 2.3배, 한때 지방간이 있다가 없어진 경우에도 2.2배 높게 나타났다. 이 결과는 국제학술지 《대한간학회지(Clinical and Molecular Hepatology)》에 실렸다.
간이 딱딱하게 굳는 간경변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암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는 뜻이다.

로봇 수술과 6개월 추적관찰이 답이다
간암 치료는 종양의 크기와 개수, 위치, 주요 혈관 침범 여부, 간 기능과 간경변 정도, 환자의 나이와 전신 상태를 함께 평가해 결정한다. 간 절제술과 간이식은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대표적 치료법이지만, 같은 병기라도 환자 상태에 따라 적합한 치료가 달라진다. 간 기능이 많이 떨어져 수술 후 간부전 위험이 크거나 간경변이 심하면 절제술 대신 간이식을 고려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개복수술 대신 복강경이나 로봇을 이용한 최소침습 수술의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절개창이 여러 개의 작은 구멍으로 줄어 수술 후 통증과 회복 부담이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다. 순천향대 부천병원은 수술 전 CT·MRI 영상을 AI로 재구성해 종양과 혈관, 담도의 위치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절제 범위와 남는 간의 용적을 미리 예측해 수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수술만큼 중요한 것이 꾸준한 관찰이다. 만성 B형·C형간염 환자는 항바이러스 치료와 함께 체중 관리, 절주, 규칙적 운동, 혈당·이상지질혈증 관리가 간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는다고 간암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간경변이 이미 있거나 간 손상이 진행됐다면 치료 후에도 간암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만성 간염이나 간경변, 진행된 지방간질환이 있는 고위험군은 특별한 증상이 없어도 6개월마다 추적 검사를 받아야 한다.
지방간은 건강검진에서 흔히 나오는 결과라 가볍게 넘기기 쉽다. 다만 비만이나 당뇨병이 함께 있다면 간경변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임 교수는 "최근 치료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조기 발견 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환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진행된 간암에서도 좋은 치료 성적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치료법이 발전하고 있다"며 "간암은 초기에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증상이 생긴 뒤 병원을 찾기보다 간암 위험 요인이 있는 고위험군이라면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