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사제와 항암화학요법 병용치료가 주요 선택지였던 일부 폐암 환자들에게 하루 한 번 복용하는 경구용 표적치료제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중국 디잘파마슈티컬이 개발한 폐암 치료제 ‘제그프로비’의 글로벌 개발·상업화 권리를 최대 15억달러에 확보하면서 치료 영역 확대에 나섰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디잘과 ‘제그프로비’(성분명 선보저티닙)의 전 세계 개발·상업화 권리를 확보하는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14일(현지시각) 밝혔다. 총계약 규모는 최대 15억달러로, 약 2조2300억원 규모다.
아스트라제네카는 계약금으로 6억달러(약 8900억원)를 지급한다. 향후 개발과 허가, 판매 실적에 따라 최대 9억달러(약 1조3400억원)를 추가로 지급한다. 디잘은 별도로 제그프로비의 전 세계 매출에 연동된 단계별 로열티도 받는다. 거래는 규제당국 승인 등을 거쳐 올해 하반기 마무리될 예정이다.
제그프로비는 암세포의 성장을 촉진하는 표피성장인자수용체(EGFR)를 차단하는 먹는 표적항암제다. 특히 기존 EGFR 치료제가 충분한 효과를 내기 어려웠던 ‘EGFR 엑손20 삽입 변이’를 표적으로 한다.
EGFR은 세포 표면에서 성장 신호를 전달하는 단백질이다.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성장 신호가 계속 켜진 상태가 되면서 암세포가 빠르게 증식할 수 있다. 엑손20 삽입 변이는 EGFR 유전자의 특정 부위에 유전물질이 추가되는 형태로, 흔한 엑손19 결손이나 엑손21 L858R 변이와 구조가 달라 기존 EGFR 억제제의 치료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제그프로비는 변이된 EGFR에 비가역적으로 결합해 성장 신호를 차단하도록 설계됐다. 정상형 EGFR보다 변이 EGFR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특징을 갖고 있어 치료 효과를 유지하면서 정상 조직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25년 7월 백금계 항암화학요법 이후 병이 진행한 EGFR 엑손20 삽입 변이 국소 진행성·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제그프로비를 가속승인했다. 승인은 다국가 임상시험 ‘WU-KONG1B 연구’에서 확인된 객관적 반응률과 반응지속기간을 근거로 이뤄졌다.
주사·항암 병용 대신 경구 단독요법 가능성 제시
이번 계약의 핵심은 제그프로비가 항암치료를 받은 뒤 사용하는 후속 치료제를 넘어, 진단 직후 사용하는 1차 치료제로 영역을 넓힐 가능성에 있다.
디잘은 최근 열린 2026년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연례학술대회에서 치료 경험이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제그프로비와 백금계 2제 항암화학요법을 비교한 글로벌 확증 3상 ‘WU-KONG28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이 연구는 미국 가속승인의 임상적 유익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제그프로비의 1차 치료 적응증 확대를 뒷받침하는 핵심 임상이다.
여기서 제그프로비는 항암화학요법과 비교해 질병 진행이나 사망 위험을 35% 낮췄다.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은 제그프로비군이 10.3개월, 항암화학요법군이 7.5개월이었다. 객관적 반응률도 각각 58.9%와 31.1%로 제그프로비군이 높았다.
디잘은 이 결과를 토대로 미국 FDA와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 산하 의약품평가센터에 1차 치료 적응증 확대를 신청했다. 양국 규제기관은 해당 적응증에 제그프로비를 혁신치료제로 지정했다.
환자 측면에서 가장 큰 특징은 경구 단독요법이라는 점이다. 경쟁 치료법 가운데 하나인 존슨앤드존슨의 ‘리브리반트’는 정맥주사 또는 피하주사 형태의 EGFR·MET 이중항체로, 1차 치료에서는 카보플라틴과 페메트렉시드 항암화학요법을 함께 사용한다. 반면 제그프로비는 먹는 약 한 가지로 치료할 수 있어 병원 방문과 주사 투여, 항암화학요법에 따른 부담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제그프로비도 간질성폐질환·폐렴, 설사 등 위장관 이상반응, 피부 이상반응, 안구 독성 등의 위험이 있어 치료 중 관찰이 필요하다. 1차 치료 적응증은 아직 심사 단계로, 실제 치료 확대 여부는 미국과 중국 규제기관의 최종 결정에 달려 있다.
타그리소 빈자리 채운다…9년 전 독립시킨 신약 다시 품어
이번 거래는 아스트라제네카가 기존 주력 제품인 ‘타그리소’로 확보한 EGFR 변이 폐암 시장의 지배력을 희귀 변이 영역까지 확대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타그리소는 주로 EGFR 엑손19 결손과 엑손21 L858R 변이 폐암에 사용되는 반면, 제그프로비는 치료 선택지가 제한됐던 엑손20 삽입 변이 환자군을 보완한다.
한편, 디잘은 2017년 아스트라제네카와 중국 미래산업투자기금(FIIF)이 공동 설립한 바이오기업이다. 당시 아스트라제네카는 중국혁신센터의 연구 인력과 기술 역량, 항암·심혈관대사·호흡기 분야 전임상 후보물질 3종을 디잘에 이전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약 9년 전 독립시킨 중국 연구조직에서 탄생한 신약을 대규모 계약을 통해 다시 글로벌 파이프라인에 편입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