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세의 일본인 남성은 물에 탄 일본소주(미즈와리)를 매일 3잔씩 마셨다. 이 석 잔은 한국식 희석소주의 약 8잔에 해당한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소주잔을 채운 뒤 비우던 그는, 최근 몇 주 동안 입맛이 뚝 떨어져 밥을 먹지 않고 소주만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딸꾹질이 시작돼 멈추지 않았고 심한 구토와 물설사로 큰 고통을 겪었다. 엿새 동안 이어진 탈수 증세에 그는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일본 도호쿠 의약대 병원 연구팀은 평소 알코올 의존성을 보이던 이 환자가 호흡기·소화기 증상은 물론 말초신경과 중추신경에 큰 문제를 일으킨 사례를 최근 학계에 보고했다.
이 환자는 병원에 도착할 당시 의식은 있었지만 온몸이 망가진 상태였다. 혈액 검사에서는 혈액 속 나트륨 농도가 낮은 저나트륨혈증과 심한 영양 불균형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목 부위는 찌릿찌릿한 감각 이상 증상을 보였고, 다리를 툭툭 쳐도 무릎 반사 반응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만성적인 음주자에게 흔한 ‘알코올 관련 말초 신경병증’을 의심했다. 이는 술 때문에 팔다리 신경이 손상되는 병이다. 하지만 신경학적 검사에서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발바닥과 발가락 바깥쪽을 긁었을 때 엄지발가락이 위로 젖혀지는 ‘바빈스키 징후’ (Babinski sign)와 복사뼈 아래쪽을 자극했을 때 나타나는 비정상적 중추신경 반사인 ‘차도크 징후’(Chaddock sign)가 뚜렷이 나타났다. 이는 뇌와 척수를 잇는 중추신경계의 핵심 통로(피라미드 경로)까지 손상됐음을 뜻한다.
연구팀은 특히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매우 충격적인 결과와 마주쳤다. 뇌간의 한가운데에 있는 뇌교(숨골과 소뇌를 연결하는 뇌 부위) 부위에 ‘삼지창’ 모양의 대칭적이고 뚜렷한 이상(고신호 병변)이 포착됐다. 환자를 덮친 주요 원인은 말초 신경병증뿐만 아니라, 중추신경계가 파괴되는 심각한 병인 ‘삼투성 탈수초 증후군’(ODS)인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에 의하면 만성 음주자는 뇌세포를 보호하는 유기 삼투물질이 늘 부족하다. 식사를 거르고 술만 마셔 영양 상태가 바닥나면 뇌세포가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해 삼투압 변화에 저항할 힘을 완전히 잃는다. 특히 신경세포 활성화에 필수적인 비타민 B1(티아민)과 비타민 B2가 결핍되면 뇌가 포도당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병세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연구팀은 즉각 비타민 보충 요법과 영양 재활 치료, 신중하고 느린 전해질 교정 치료를 시작했다. 환자의 구토와 구역질 증상은 이내 사라졌고 스스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만큼 회복돼 입원 8일 만에 퇴원했다. 발끝의 찌릿한 저림 등 신경학적 이상 징후는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최악의 상황인 혼수상태나 사지 마비로 진행되는 것을 막아냈다.
이 사례 연구 결과(Osmotic Demyelination Syndrome in an Alcohol-Dependent Patient With Alcohol-Related Peripheral Neuropathy: A Case Report)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물에 탄 일본 소주, 하루 3잔씩 마셨을 뿐인데”... 한국식 소주와 일본식 소주에 큰 차이
한국의 음주 문화 기준으로는 '하루 소주 3잔'은 반주 정도로 가볍게 마시는 수준으로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이 환자가 마신 술은 한국의 희석식 소주가 아니었다. 일본의 대중적인 소주인 ‘쇼추(焼酎)’였다. 이 두 가지 사이에는 양과 알코올 농도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인들이 흔히 마시는 일반 희석식 소주는 알코올 도수가 약 16~20도며, 한 잔에 약 50ml가 들어가는 작은 잔을 주로 쓴다. 반면 일본식 소주인 쇼추는 기본 도수가 25도 안팎이다. 일본에서는 전통 소주에 물을 타서 마시는 ‘미즈와리’ 방식을 즐기는데, 이때 쓰는 유리잔은 용량이 300~450ml(평균 350ml 내외)나 되는 큰 맥주잔이나 하이볼잔과 크기가 비슷하다.
또한 실제 섭취하는 순수 알코올 총량이 다르다. 얼음을 채우고 물과 술을 대략 6:4 비율로 섞어 미즈와리 한 잔을 만들면, 물 컵 크기의 잔 한 잔에 들어가는 쇼추 원액의 양만 약 120~150ml나 된다. 이는 한국 소주잔으로 3잔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이 사례 속 환자가 매일 마신 '물에 탄 일본소주 3잔'은 한국 소주잔 기준으로는 약 8잔이다.
이 환자는 1.8L 대용량 쇼추 한 병을 보통 4~5일 만에 비웠다. 하루 평균 약 400ml의 소주 원액을 매일 마신 셈이다. 한국의 초록색 소주 병(360ml, 약 16도)으로 환산하면, 매일 소주 1병 반에서 2병 가까이를 쉬지 않고 마시는 만성 폭음 상태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술에 포함된 에탄올을 1군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건강에 안전한 음주량은 없다"고 공식 경고하고 있다. 만성적인 음주는 온몸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알코올은 간세포를 지속적으로 파괴해 간이 딱딱하게 굳는 간경변증을 일으키고, 사망률이 매우 높은 간암으로 진행시킨다. WHO는 술을 1군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간암 외에 식도암, 구강암, 대장암, 유방암 등 치명적인 암을 유발한다. 또한 음주를 계속하면 췌장 세포가 스스로를 녹여 다발성 장기 부전을 부르는 급성 췌장염, 심장 근육을 망가뜨리는 심근증, 뇌졸중 및 심근경색 등 돌연사를 일으킬 수 있다.
환자가 진단받은 '삼투성 탈수초 증후군(ODS)'은 뇌세포의 수분 조절 능력이 무너지면서 신경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전선 피복 같은 막인 미엘린이 벗겨져 나가는 드물고 치명적인 중추신경계 병이다. 이 병은 대개 응급실이나 병원에서 저나트륨혈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수액으로 나트륨 수치를 너무 급격히 올릴 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분이 빠져나가 뇌세포가 순식간에 쪼그라들면서 손상을 입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환자는 병원에서 나트륨 수치를 빠르게 올리는 치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삼투성 탈수초 증후군에 걸린 채 병원을 찾았다. 만성적인 알코올 의존 및 이에 따른 극심한 영양실조 자체는 뇌세포를 매우 취약하게 해, 급격한 전해질 변화가 없어도 치명적인 뇌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술을 오랜 기간 많이 마시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팔다리 저림이나 무감각을 말초신경병증쯤으로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알코올 의존성 환자가 영양 부족과 구토 설사를 겪은 뒤 손발 저림과 함께 똑바로 걷지 못하거나, 발가락이 비정상적으로 비틀리는 신경학적 반사를 보인다면 이는 뇌가 파괴되고 있다는 응급 신호다. 중추신경계 합병증의 강력한 징후로 인식하고, 각종 검사와 치료를 서둘러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1. 삼투성 탈수초 증후군(ODS)은 병원 치료 부작용으로만 생기는 병이 아닌가요?
A1. 과거에는 병원에서 저나트륨혈증을 너무 빠르게 교정할 때만 생기는 인위적인 부작용으로 주로 인식됐습니다. 하지만 이 연구가 보여주듯 만성적인 폭음, 심한 영양실조, 비타민 결핍, 간경변증 등을 앓고 있는 고위험군 환자는 병원에서 수액 치료를 받기 전 단계에서도 일상적인 탈수와 대사 불균형만으로 뇌 신경막이 파괴되는 이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Q2. 알코올 관련 말초 신경병증(ALN)과 삼투성 탈수초 증후군(ODS)은 어떻게 구별하나요?
A2. 두 병은 모두 만성 음주자에게 생길 수 있어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반사 반응'입니다. 말초 신경병증은 다리를 두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는 반사 소실이나 무감각이 대부분입니다. 반면 삼투성 탈수초 증후군은 중추신경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발바닥을 긁었을 때 엄지발가락이 부채꼴처럼 위로 확 꺾이는 비정상적인 반사(바빈스키 징후)가 나타납니다. 말초 저림 외에 삼킴 곤란, 어눌한 말투, 의식 혼미 등이 동반된다면 중추신경에 이상이 생겼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Q3.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구토와 설사를 할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A3. 술 때문에 몸이 황폐해진 상태에서 며칠간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면 체내 수분과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같은 핵심 전해질이 한꺼번에 빠져나갑니다. 이때 갑자기 갈증이 난다고 맹물이나 이온 음료만 급하게 많이 마시면 체내 나트륨 농도가 묽어지며 중증 저나트륨혈증에 빠져 ODS의 기폭제가 될 수 있습니다. 즉시 병원을 찾아 전해질 수치를 측정하고 수액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