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학대나 방임을 경험한 사람은 성인이 된 뒤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 피해를 경험할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아동기 학대 경험이 성격과 정신 건강 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이후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피해 취약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UCL) 연구진은 최근 아동기 학대 경험이 어떤 심리적·성격적 변화를 통해 성인기에 연인이나 배우자에 의한 폭력 피해 위험으로 이어지는지 분석했다.
기존 연구에서는 어린 시절 학대나 방임을 경험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성인기에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을 경험할 가능성이 3~6배 높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단순한 상관관계를 넘어,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지 그 심리적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연구를 이끈 패트리치아 페졸리 박사는 “아동기 학대는 이후 연인 관계에서 해를 입을 위험을 높이는 심리적 흔적을 남길 수 있다”면서도 “그 흔적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적절한 개입을 통해 충분히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1990년대 영국과 웨일스 지역에서 태어난 쌍둥이 1만 1000여 명을 추적한 대규모 코호트 연구인 쌍둥이 조기 발달 연구(Twins Early Development Study) 자료를 분석했다. 참가자들이 22세가 되었을 때 측정한 자기 통제력, 공격성, 불안, 주관적 행복감 등 18개 성격 및 정신건강 지표와 함께 아동기 학대 경험 및 성인기 관계에서 폭력 경험을 조사했다.
이번 연구는 쌍둥이 연구 설계 방식을 통해 유전적 요인이나 가정 환경처럼 형제·자매가 공유하는 요소와 개인별 경험을 구분해 분석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유전적 취약성과 환경적 위험 요인을 보정한 이후에도, 아동기 학대 경험이 심리 발달에 독립적으로 영향을 미쳐 성인기 폭력 피해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유전적·환경적 교란 요인을 추가로 보정한 분석에서도 이러한 심리적 특성이 아동기 학대와 성인기 폭력 피해 사이를 매개한다는 결과를 확인했으며, 직접적인 영향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의하면, 아동기 학대와 이후 가정폭력이나 데이트 폭력 피해 취약성이 높은 사람들 사이에 세 가지 주요 심리적 특징이 관찰됐다. 낮은 주관적 웰빙과 적개심, 공격성이다.
이 가운데 낮은 주관적 웰빙은 인간관계, 공동체 소속감, 경제적 안정성 등 삶 전반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상태를 의미한다. 연구진은 이러한 상태가 자신을 보호해 줄 사회적 관계망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봤다. 여기에 분노와 적개심, 언어적·신체적 공격성 같은 행동 특성이 더해질 경우 폭력적인 관계에 노출될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페졸리 박사는 이러한 특성을 개인의 ‘성격적 결함’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심리적 취약성은 가혹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반응”이라며 “피해 경험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방식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또한 아동기 학대 경험과 친밀한 관계 폭력 피해 위험 모두 일부 유전적 요인과 연관성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구진은 “유전자가 누군가를 피해자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특정 유전적 특성이 사고방식이나 감정 조절, 행동 양식에 영향을 주면서 결과적으로 위험 상황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는 의미일 뿐, 폭력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가해자에게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현재 가정폭력 예방 프로그램이 학교 기반 관계 교육처럼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방식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번 연구는 아동기 학대나 방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개입이 더 효과적일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페졸리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특성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나 영구적인 결과가 아니다”라며 “특히 초기 관계 경험이 형성되는 청소년기가 개입의 중요한 시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랜싯 지역 보건-유럽(The Lancet Regional Health–Europe)》에 ‘Personality and mental health as mediators linking childhood maltreatment to intimate partner violence victimization: a Mendelian randomization–direction of causation twin study’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자주 묻는 질문]
Q1. 어린 시절 학대 경험이 왜 성인기 관계 폭력 위험을 높이나요?
연구에 따르면 아동기 학대는 자기통제력, 공격성, 주관적 행복감 등 성격과 정신 건강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런 변화가 이후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 피해에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Q2. 연구진이 확인한 주요 심리적 특징은 무엇인가요?
낮은 주관적 웰빙, 행동 문제, 공격성이 핵심 요인으로 나타났다. 특히 인간관계와 삶 전반에 대한 만족도가 낮고 분노·적개심이 강한 경우 폭력적인 관계에 노출될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됐다.
Q3. 유전적 영향이 있다는 것은 폭력 피해가 ‘타고난다’는 의미인가요?
아니다. 연구진은 유전자가 피해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만 일부 유전적 특성이 감정 조절이나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쳐 위험 상황에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