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07일 (화)

비만약과 항암제가 바꾼 자본의 질서, 신약은 어떻게 패권이 됐나

윤태진 지음 | 바다출판사 | 284쪽 | 2만2000원

윤태진 박사 <신약의 전쟁> 책. 이미지=바다출판사

한때 전기차 기업 테슬라를 시가총액에서 앞질렀던 제약사가 있었다. 비만 치료제 열풍의 중심에 선 일라이 릴리다. 유럽 증시에서는 노보 노디스크가 시가총액 1위에 오르며 존재감을 키웠다. 신약 개발이 더 이상 제약업계 안의 경쟁에 머물지 않고, 자본시장과 산업 질서까지 흔드는 시대가 된 것이다.

윤태진 박사의 <신약의 전쟁>은 바로 이 변화의 중심을 파고든다. 비만 치료제, 항암제, 뇌질환 치료제, 그리고 이를 둘러싼 기술 수출과 협상의 세계를 따라가며, 신약이 왜 ‘미래 먹거리’를 넘어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유한양행 전략실장과 상무를 지내며 얀센의 렉라자 계약을 비롯해 길리어드, 베링거인겔하임 등과의 기술이전, 공동연구, 전략적 투자 등 40건이 넘는 계약에 관여한 인물로 소개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단순한 산업 해설서에 머물지 않는다. 과학기술의 원리를 짚는 데서 멈추지 않고, 어떤 기술이 왜 투자받고 어떤 플랫폼이 왜 빅파마의 선택을 받는지까지 ‘딜 메이커’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비만약, 항암제, 뇌질환… 재편되는 패권 지도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비만 치료제와 항암제, 뇌질환 치료제를 중심으로 글로벌 제약산업의 판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가 비만 치료제를 앞세워 어떻게 세계 투자자들의 시선을 끌었는지, 키트루다 이후 항암제 시장 질서가 왜 흔들리기 시작했는지를 촘촘하게 짚는다. 특히 중국 아케소의 이보네시맙이 PD-L1 양성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3상에서 키트루다 대비 무진행생존기간을 유의하게 개선한 사례는, 이중항체 기술이 더 이상 주변부 실험이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항체-약물접합체(ADC)를 다룬 부분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ADC를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정밀의학 시대 항암제 경쟁의 중심축으로 바라본다. 암세포를 더 정밀하게 겨냥하는 기술이 왜 주목받는지, 또 이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어떤 기회를 잡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은 산업 독자들에게 특히 유용하다. 리가켐바이오, 에이비엘바이오, 에이프릴바이오, 이뮨온시아, 한올바이오파마 등의 사례도 함께 다뤄진다.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둘러싼 설명도 흥미롭다. 저자는 혈액-뇌 장벽(BBB)을 넘기 위한 여러 기술을 비교적 쉽게 풀어내며, 복잡한 뇌질환 신약 개발을 독자가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다. 난해한 내용을 산업 이야기 속에 녹여낸 점이 이 책의 강점이다.

신약은 더 이상 의학의 언어만이 아니다

이 책이 한국 독자에게 특히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K-바이오를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 바이오 산업이 우연히 기술을 잡는 ‘줍는 산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대신 대학과 연구소의 성과를 산업적 가치로 연결하는 K-DDI(한국형 신약 기획 플랫폼), K-BCG(K-바이오 컨설팅 그룹) 같은 구조적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신약 개발을 개별 기업의 승부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시스템 경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

부록의 실무적 가치도 크다. 렉라자 글로벌 계약 경험을 바탕으로 협상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지, 계약서의 위험 조항을 어떻게 읽을지, 협상 결렬 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BATNA)을 어떻게 설계할지 같은 조언도 담겼다. 바이오텍 경영진이나 사업개발 담당자에게는 꽤 실질적인 참고서가 될 만하다.

다만 기술과 거래, 기업 사례가 풍부한 만큼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밀도 높게 느껴질 수 있다. 등장하는 회사와 플랫폼, 질환군이 많아 개별 장면은 흥미롭지만, 비전공자에게는 호흡이 조금 가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신약의 전쟁>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이 책은 신약을 단순히 병을 고치는 약으로만 보지 않는다. 기술이 자본을 부르고, 그 자본이 다시 연구개발과 산업 전략을 움직이며, 그 결과가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신약을 바라본다.

왜 지금 비만 치료제 하나가 시가총액 판도를 바꾸고, 항암제 기술의 변화가 글로벌 자본의 방향을 흔드는지 궁금한 독자라면 이 책은 꽤 선명한 답을 준다. 신약이 더 이상 의학의 성취만이 아니라 산업과 패권의 언어가 됐다는 사실을 이 책은 또렷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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