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주지훈, 추영우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가 공개 2주차에 1190만 시청을 기록, ‘오징어게임 2’를 더블 스코어로 누르고 글로벌 1위에 올랐다. 촬영지 중 한 곳은 실제로도 중증 외상 환자들이 촌각을 다투며 실려 오는 곳, 서울 강서·양천구 지역 응급의료기관 1등급 서울부민병원 응급실이었다.
이 병원은 스스로 응급상황을 이겨낸 곳이기도 하다. 서울 주요 병원들이 지역으로 진출하고, 지방 의료진은 서울로 떠나는 ‘지방의료 응급상황’에서 부산에 본거지를 두고 서울에 진출, 세계적 병원으로 성장시킨 것.

서울부민병원은 2011년 처음 개원할 때만해도 미래가 불투명했지만, 2023년부터 줄곧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선정하는 ‘세계 최고 병원’ 순위에서 한국내 비대학병원 1위를 고수해왔다.
이 병원은 의료계에선 개원 때 못지않게 2020년 9월, 보건복지부 장관과 분당서울대병원장 등을 지낸 정진엽 박사가 의료원장으로 오면서 더 눈길을 끌었다.
정 원장은 소아정형외과 명의로도 유명했지만 삼성서울병원장과 중앙대병원장을 역임한 ‘스포츠의학의 태두’ 하권익 박사와 대한병원협회장,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성상철 박사의 입담을 합친, ‘유머의 달인’이었다.
공교롭게도 하권익 박사의 애제자였던 하용찬 박사가 합류하며 이 병원을 EPL-MLB-PGA 급 국가대표 선수들을 관리하는 ‘스포츠 의학의 메카’로 키우고 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EPL)나 미국 메이저리그(MLB) 상위 구단에서 선수들 피지컬 모니터링에 쓰는 최고 수준의 장비인 ‘VALD(발드)’ 시스템을 도입해 유소년부터 국가대표까지 돌보고 있는 것. 핸드볼 H리그 공식 지정병원이고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 쇼트트랙 국가대표 등을 관리하고 있다. 특히 골프클리닉은 대한골프협회, KPGA 등과 협약을 맺어 프로 및 국가대표 선수들의 건강을 챙기고 있다.
하용찬 박사는 최근 국내 최초로 국산 수술 로봇을 활용해 ‘고관절 전치환술’에도 성공했다. 무릎 관절에 주로 쓰이던 국산 큐비스 로봇수술의 영역을 고관절까지 확장해 의료-산업 협력의 이정표를 세운 것.
서울부민병원은 부산이 본거지인 부민병원그룹(인당의료재단)에서 태어났다. 설립자인 정흥태 이사장은 “부민병원을 세계적 병원으로 키워 환자들에게 최고의 의술을 제공하려고 했지만 서울의 의사들을 데리고 올 수가 없었다”면서 “그래서 서울에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를 갖춘 병원을 세우고 초고수들을 영입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서울 강서구는 서울 안에서 인구는 세 번째로 많았지만 1인당 상급∙종합병원 의료진 수는 강남구의 1/10밖에 안됐다.

그 모태가 된 부민병원은 1985년 5월, 부산 금정구 서동에서 ‘정흥태 정형외과 의원’ 간판으로 처음 시작했다. 정 이사장은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정확한 진단으로 만족스러운 치료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에만 집중했다”고 말한다. 환자의 신뢰를 받으면 다른 것들은 자연스럽게 풀린다는 것. 젊은 의사가 친절하고, 실력이 있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환자가 몰려왔다.
4년 후 1989년엔 북구 덕천동으로 확장 이전하면서 병원 이름을 ‘부산 시민의 병원’이란 뜻으로 ‘부민정형외과’로 바꿨다. 개원 의원으로선 파격적으로 최신식 컴퓨터단층촬영(CT) 기기를 도입했고 환자들의 요구를 철저히 분석해 팔, 다리, 허리 등 전문분야를 나눠 치료를 했더니 북부산권과 서부산권은 물론, 양산과 김해 등에서 ‘용한 병원’을 찾아 환자들이 몰려왔다.
전문화의 길을 가면서 환자 만족도가 한층 높아졌다. IMF 외환위기 속에서도 척추건강연구소, 관절의학연구소를 설립했고 의료진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뼈와 관절만 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명확했다. 고령 환자들이 정형외과 치료 때 고혈압, 당뇨, 심혈관질환 등 내과적 합병증을 호소하고 있었기 때문.
정흥태 이사장은 “관절만 잘 고치는 것은 반쪽짜리 의술”이라고 판단하고 종합병원을 세워야겠다고 결론 내렸다. 척추·관절을 중심에 두고 내과·신경과·심혈관을 얹은 조합을 통해 '토탈 케어'로 변신하겠다는 것. 정 이사장은 이를 “수술의 전문성은 좁고 깊게(Specialized), 내과적 안전망은 넓고 든든하게(Comprehensive)”로 요약했다. 부민병원은 한국갤럽의 부산∙경남 지역 의료기관 브랜드 인지도 조사에서 전문병원 1위를 달성한 2003년, 종합병원으로 한 단계 도약했다. 2008년에는 ‘인술을 베푸는 마당’이란 뜻의 인당의료재단을 설립하면서 구포부민병원을 개원했고, 2011년엔 마침내 서울로도 진출했다.

정 이사장은 환자들이 전국에서 찾아오는 최고 병원을 짓고 싶었다. 2005년 미국 멤피스 척추연구소와 오스트리아 그라츠병원 등에 의료진을 파견하는 것을 스타트로 해외에서 해답을 찾아왔다.
2014년 부민병원의 레이다에 인공관절 및 스포츠의학 분야 세계 최정상 병원인, 코넬대 부속 HSS(Hospital for Special Surgery)가 들어왔다. 뉴욕 양키스와 뉴욕 메츠 등 미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치료와 재활을 담당하는 주치의들이 포진한 병원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정 이사장은 2005년 1월 뉴욕의 HSS와 CMC(Center for Musculoskeletal Care) 등을 방문한 길에 HSS에 협업을 제안했고, HSS는 직접 실사 팀을 한국에 보내 서울과 부산을 살핀 뒤 기준에 맞다고 판단했다. 2015년, 부민병원그룹은 HSS Global Orthopedic Alliance의 아시아 첫 회원이 됐다.
협업의 초점은 수술 기법이 아니었다. 정 이사장은 “대한민국 의사들의 손 기술은 그때도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란 얘기를 들을 때였다”며 “우리가 부족했던 건 표준화된 임상 경로(CP, Clinical Pathway)였다”고 했다. 환자가 입원해서 퇴원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매뉴얼화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 구조를 한국 실정에 맞게 이식하고 싶었던 것.
환자들은 통증관리에서 뚜렷한 변화를 피부로 느꼈다. 수술 당일 또는 다음 날부터 보행 재활이 가능해졌다. “생각보다 안 아프고 빨리 걷게 되어 놀랍다”는 말이 이곳저곳 병상에서 이어졌다.
HSS는 매년 부민병원을 방문해 평가하고, 부민 의료진들도 매년 HSS를 찾아 계속 배운다. 그렇게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HSS의 아시아 파트너는 부민병원이 유일하다. 일본에도, 중국에도, 홍콩에도, 싱가포르에도 없다. HSS 눈높이에 맞는 파트너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부민병원은 이제 전국에 병원 6곳과 프리미엄 건강검진센터 1곳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병원그룹으로 발전했다. 부산부민·서울부민·해운대부민병원 세 곳은 모두 보건복지부 지정 ‘관절 전문병원’이자 종합병원이다. 그것도 지역 거점병원 역할을 하는 ‘포괄2차종합병원’이다. 여기에 구포부민병원(재활·요양), 2027년 하반기 500병상으로 개원할 명지부민병원(부산 강서구 명지동, 신축 중)이 더해진다.
부민 네트워크의 마지막 거점은 제주다. 영리 병원 논란으로 오랫동안 표류해왔던 녹지국제병원의 부지와 건물을 경매로 낙찰 받아 리모델링을 준비 중이다. ‘제주국제부민병원’이다.
이렇게 서울-부산-제주 의료 벨트가 완성되면, 부민은 글로벌 환자 경험까지 설계할 수 있는 무대를 갖게 된다. 하지만 정흥태 이사장은 “병원 숫자를 늘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며 “각 병원이 지역의 건강을 책임지는 허브가 되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의료 네트워크를 통해 대한민국 의료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것”이라 했다.

2020년대 들어 여기에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헬스케어가 더해지고 있다. 부민병원은 국내에서 일반 종합병원 최초로 대학병원에서 사용하는 이지케어텍 EMR을 도입했다. 최근엔 생성형 AI 기반 의무기록 자동화, 수술 전 AI 시뮬레이션, 퇴원 후 디지털 모니터링까지 신기술 도입에도 정 이사장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환자 경험과 의료진 집중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라면서 “환자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선 기술, 서비스 연구와 도입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정 이사장의 ‘환자 중심’ 철학은 서울부민병원 건물 외벽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원래 주유소 터에 병원을 세우며 화초를 가득 채웠으며 환자가 진료실에서 의사 등 뒤 창밖에 나무를 보게 했다.
특히 건물 한쪽에 ‘ㄷ’자로 들어간 외벽 유리 창문은 담쟁이 덩굴이 커튼처럼 타고 올라 병실의 환자가 바깥 풍경을 담쟁이 덩굴 너머로 볼 수 있다. 차가운 병상에 누운 환자들이 잠시나마 자연을 보며 위안을 얻고 ‘집에 가기 싫을 만큼 편안한 병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