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 건강하던 28세 남성이 갑자기 난폭해지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신질환처럼 보였지만 뇌까지 침범한 ‘베체트병’이 원인인 것으로 검사 결과 뒤늦게 드러났다.
모로코 물레이 이스마일 군병원 신경과 연구진이 보고한 사례다. 남성은 과거 정신질환을 앓은 적이 없었고 가족 중에도 관련 병력도 없었다.
그는 병원에 오기 나흘 전부터 심한 두통을 호소했다. 입맛이 떨어졌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점차 줄었다. 병원에 오기 약 2시간 전부터는 상태가 급격히 달라졌다. 심하게 흥분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검사에서도 이상 증상이 뚜렷했다. 집중력이 떨어졌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하거나 상황과 관계없는 말을 하며 횡설수설했다. 발음이 약간 어눌했고 왼쪽 팔다리의 힘도 떨어져 있었다.
입·성기 궤양, 눈 염증…MRI에서는 뇌 병변 발견
의료진은 몸에서도 중요한 단서를 찾았다. 입과 성기 주변에 염증성 병변이 있었고, 눈에서는 포도막염(눈 안쪽에 생기는 염증)이 발견됐다.
뇌 MRI에서는 중뇌와 기저핵, 측두엽 등 여러 부위에서 염증으로 보이는 병변이 확인됐다. 뇌척수액에서도 염증을 시사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반면 약물·독성 물질 검사에서는 이상이 없었다. 여러 감염병과 다른 자가면역질환 검사도 음성이었다.
의료진은 이런 결과를 종합해 남성을 ‘신경 베체트병’으로 진단했다. 베체트병은 몸속 혈관에 반복적으로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베체트병이 왜 생기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면역체계가 과도하게 반응하면서 혈관에 반복적으로 염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유전적 요인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HLA-B51이라는 유전자형과의 관련성이 잘 알려져 있다. 감염이나 환경 요인이 면역반응을 자극해 발병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제기된다.
베체트병은 입안이나 성기 궤양, 피부 병변, 눈의 염증 등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염증이 뇌와 척수 같은 중추신경계까지 침범하면 ‘신경 베체트병’이라고 한다. 이때 두통이나 마비뿐 아니라 성격 변화, 조증, 우울, 급성 정신증 같은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보통 베체트병 환자에게 신경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논문에 따르면 신경계 증상은 베체트병 환자의 약 3~30%에서 나타나며, 대개 다른 베체트병 증상이 시작된 뒤 수년이 지나 발생한다. 이번처럼 갑작스러운 정신증이 첫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의료진은 “정신과적 증상이 신경 베체트병의 초기 신호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런 증상이 신경학적 증상보다 먼저 나타나거나 동시에 나타날 수 있어 오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면역 억제 치료하자 2주 만에 정신 증상 호전
남성은 염증을 강력하게 줄이는 고용량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 치료를 받았다. 심한 흥분과 정신 증상을 조절하기 위해 항정신병 약도 함께 사용했다.
치료를 시작한 지 약 2주 뒤 정신 증상은 좋아졌다. 3개월 뒤까지 새로운 전신 증상이나 재발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왼쪽 팔다리의 힘이 약간 떨어지는 증상은 남아 있었다.
의료진은 베체트병이 단순히 입안 궤양이나 피부 문제만 일으키는 병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뇌에 염증이 생기면 두통이나 팔다리 마비뿐 아니라 성격 변화, 심한 우울감, 조증, 급성 정신증 같은 증상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갑자기 발생한 환청이나 망상, 심한 흥분, 앞뒤가 맞지 않는 말 등 증상의 원인은 정신질환에만 있지는 않다. 특히 심한 두통이나 팔다리 힘 빠짐, 발음 이상 등 신경학적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면 뇌질환을 포함한 다른 원인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사례는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최근 게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