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신 중 타이레놀을 먹으면 아이가 자폐증에 걸릴 수 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이 세계 의학계와 임산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가운데, 이를 둘러싼 과학적 근거를 엄격하게 검증한 연구가 발표됐다.
미국 뉴욕타임즈, 영국 가디언 등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영국 런던 세인트조지스대학교 산부인과 및 모체태아의학팀 아스마 칼릴 박사팀을 비롯한 국제 연구진이 관련 연구 43편을 종합 분석한 결과,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 복용은 아이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지적장애 위험을 높이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분석 내용은 ⟪란셋 산부인과·부인과·여성건강 (The Lancet Obstetrics, Gynaecology & Women’s Health)⟫ 2026년 1월호에 발표됐다.
분석 결과,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복용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ADHD, 지적장애 위험을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증가시키지 않았다. 일부 초기 연구에서는 약 복용과 발달장애 사이에 연관성이 관찰됐지만, 연구진은 이러한 신호가 약 자체의 영향이라기보다 고열, 통증, 감염 등 약을 복용하게 만든 원인 질환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했다. 즉, 아세트아미노펜이 신경발달 장애를 유발한다는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같은 근거 없는 경고가 임신부에게 불필요한 공포를 주고, 오히려 위험한 선택을 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신 중 고열과 심한 통증은 조산, 태아 신경발달 이상, 임신 합병증 위험을 높일 수 있는데, 아세트아미노펜은 임신 중 사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해열·진통제다. 대체 약물인 이부프로펜 등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는 임신 후기 태아 신장 손상과 동맥관 조기 폐쇄 위험 때문에 사용이 제한된다.
연구진은 “필요할 때 적정 용량으로 아세트아미노펜을 사용하는 것이 산모와 태아 모두에게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며, “연관성과 인과관계를 혼동한 주장보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판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유럽과 북미 여러 대학과 병원의 산부인과, 역학, 소아신경발달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수행한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으로 이뤄졌다. 연구진은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노출과 아이의 신경발달 결과를 다룬 관찰 연구들을 전수 검토한 뒤, 편향 위험이 낮고 통계적 신뢰도가 높은 연구만을 엄격하게 선별해 분석에 포함했다.
설문 기억에 의존해 복용 여부를 회상하게 한 연구, 표본 수가 적거나 추적 기간이 짧은 연구, 단순 상관관계만 제시한 연구는 제외됐다. 특히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 중 한 명만 약에 노출된 경우를 비교하는 ‘형제자매 비교 연구’를 핵심 근거로 삼아, 유전적 요인과 가정환경을 최대한 통제했다.
이렇게 진행된 메타분석은 임신 중 타이레놀 사용을 둘러싼 오랜 논쟁에 대해, 과학적으로 가장 엄격한 기준에서 안전성을 재확인한 연구로 평가됐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22일 미국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임신 중 타이레놀 복용이 자폐증 등 신경발달 장애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언급하며,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신부가 복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와 FDA 관계자들도 배석해 이러한 주장과 함께 자폐증 문제를 주요 보건 정책 과제로 제시했으나, 이 발언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의료계와 전문가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