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14일 (화)

경계를 넘나든 천재 음악가를 막은 벽은?

[이성주의 건강편지]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2025년 08월 25일ㆍ1685번째 편지
레나드 번스타인 [사진=위키피디아]

샴페인 사회주의자(영국), 살롱 공산주의자(독일), 캐비어 좌파(프랑스), 구찌 사회주의자(이탈리아)…. 우리나라의 ‘강남 좌파’에 해당하는 그룹을 미국에선 ‘래디컬 시크(Radical Chic)’라고 부르지요?

‘극단주의 유행 추종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이 용어는 미국 언론인 톰 울페가 1970년 ‘뉴욕 매거진’에 쓴 기사 ‘래디컬 시크: 레니의 그 파티’에서 유래했지요. 여기에서 레니는 1918년 오늘(8월 2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렌스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각각 이주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레너드 번스타인입니다. 파티는 번스타인 부부가 ‘흑표당(Black Panther Party)’을 후원하기 위해 뉴욕의 아파트에서 연 것이었고요.

번스타인은 ‘강남 좌파’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를 틀 지을 수는 없을 듯합니다. 경계가 없는 대가라고나 할까요? 

번스타인은 하버드대 재학 시절 사회주의 운동권이었고, 나중에 FBI의 대대적 조사를 받기도 했지요. 반전운동, 반핵운동에 앞장섰고 급진당을 후원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소련이 로스트로포비치를 연금했을 때, 그가 해외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 1989년 크리스마스 때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식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지휘하면서 ‘환희의 송가’를 ‘자유의 송가’로 바꿔 연주합니다.

번스타인은 음악 영역에선 교향곡에서부터 발레, 종교음악, 오페레타, 피아노곡, 뮤지컬 등을 넘나듭니다. 그가 작곡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지금도 공연되고 있지요? 그는 1958~1972년 CBS TV 프로그램 ‘청소년 음악회’와 베스트셀러 교양서적 ‘음악의 즐거움’으로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번스타인은 사랑에서도 남달랐습니다. 그는 1946년 한 파티에서 코스타리카 출신의 배우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를 만납니다. 약혼 발표 뒤 파혼했지만, 펠리시아의 새 연인 리처트 하트가 심근경색으로 급사하자 또다시 만나서 1951년 결혼합니다. 둘은 3남매를 뒀지만 번스타인은 남자들을 사랑했습니다. 양성애자였던 것이지요. 펠리시아는 생전에 남편에게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당신은 호모이고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당신은 이중생활의 가능성을 인정하지도 않아요. 당신의 평상심, 건강, 모든 신경계가 특정한 성적 유형에 의지하는데 어떡하겠어요?” 번스타인은 아내와 따로 살다가, 1977년 펠리시아가 폐암을 진단받자 그녀에게 돌아와 임종 때까지 간병합니다.

번스타인의 스타 탄생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그는 1943년 뉴욕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아르투르 로진스키에 의해 뉴욕 필 보조지휘자로 채용됐습니다. 얼마 뒤 뉴욕 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날 카네기 홀의 공연에서 지휘할 예정이었던 브루노 발터가 독감 탓에 앓아누워버렸습니다. 뉴욕 필은 25세의 번스타인에게 지휘를 맡기는 파격적 결정을 했고 이 젊은 지휘자가 리허설도 없이 부랴부랴 호출받아 와서 완벽에 가깝게 공연을 이끌었습니다. 다음날 뉴욕타임스가 1면에 보도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지요. 

번스타인은 뉴욕 필 최초의 미국인 상임 지휘자이자 유럽의 명문 오케스트라를 이끈 최초의 미국 지휘자였습니다. 공연장에만 머물지 않고 에이즈 연구와 환자 돕기, 음악가 후원 등을 위해 애썼습니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8개 국어를 구사했으며 늘 책을 가까이 했습니다. 연주 여행 때엔 트렁크 3, 4개에 책을 채워 다니며 틈만 나면 책을 읽었습니다. 그 공부와 사색이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능케 한 것 아닐까요? 

그러나 그 천재도 하나의 벽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부인은 폐암의 희생양이 됐고, 번스타인은 50대 중반부터 폐기종을 앓다가 가슴막에 생기는 ‘악성종피종’ 탓에 심근경색이 와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폐암을 비롯한 암에 걸릴 수 있지만, 담배를 피우면서 건강하기는 힘듭니다. 번스타인이 만약 조금 더 오래, 건강히 살 수 있었다면 또 다른 경계를 넘나들거나 허물 수 있었을 텐데….

번스타인은 구스타프 말러를 빛나게 한 음악가이기도 했습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OST로도 유명한,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감상하겠습니다.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듣기▷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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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y*** 2025-08-27 21:47:02

    번스타인이 지휘한 몇 장의 뉴욕 필하모닉의 음반을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더 오래 살았더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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