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사구시 의학 정립한 하비

[이성주의 건강편지]피는 돌고돈다

입력 2008.04.02 02:50 입력 2008.04.02 02:50수정 2018.10.04 14:25 조회수 427

실사구시 의학 정립한 하비

피는 심장에서 동맥으로 나가 신체의 구석구석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한 뒤 노폐물을 싣고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돌아옵니다. 심장의 피는 폐에 들러 신선한 산소를 공급받고 다시 심장으로 돌아옵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혈액의 순환이론이죠. 하지만 17세기까지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1578년 오늘(4월 2일)은 이 혈액의 순환이론을 제시해 의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현대의학의 선구자’ 윌리엄 하비가 태어난 날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1세기의 의성(醫聖) 갈레노스가 제시한 혈액이론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사람이 먹은 음식물은 위와 대장 등을 통해 흡수돼 피로 변하고, 혈액는 정맥을 통해 몸 전체로 출렁거리며 퍼져가며 온몸에 영양분을 공급합니다. 피는 또 동맥을 활기차게 요동치면서 몸을 따뜻하게 합니다. 오른쪽 심장은 정맥에서 온 피를 폐에 보내는 곳이고 왼쪽 심장은 피를 가열하는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또 건강과 기질은 피를 비롯한 4가지 체액에 좌우된다고 믿었습니다. 점액이 지배하면 냉담해지고, 혈액이 지배하면 쾌활하게 됩니다. 흑담즙이 지배하면 우울해지고 황담즙이 지배하면 성마르게 됩니다. 참고로 우울을 뜻하는 영어 ‘Melancholy’는 흑담즙의 고대 라틴어 ‘Melancholio’에서 온 말입니다.

하비는 갈레노스의 이론이 인체의 여러 현상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간파했습니다. 그는 인체와 동물을 해부하고 몸의 특정부위나 장기를 실로 묶어 피의 흐름을 확인하는 실험을 통해 혈액의 순환론을 확립했습니다.

고전을 탐구하면서도 실험에 따라 논리적 이론 체계를 세우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모범을 선보인 것이죠. 그는 혈액순환론이 당시 의학자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지만 개의치 않고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하비는 1657년 6월3일 아침 혀가 마비된 상태에서 깨어났다가 혀에서 피를 빼내는 치료를 받았습니다. 어딘가 아프면 통증 부위에서 피를 뽑아내는 치료는 아이러니하게도 갈레노스의 이론에서 온 것이었죠. 당연히 효과가 없었고, 그날 밤 하비는 숨을 거둡니다. 그의 사인은 뇌혈관이 터지거나 막혀 혈액이 뇌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해주지 못하는 ‘뇌졸중’이었습니다.

요즘은 혈관이 튼튼해 혈액이 원활하게 순환하는 것이 건강을 보증한다는 것이 상식처럼 통합니다. ‘혈관나이’라는 개념도 생겼죠. 혈관나이를 젊게 하려면 건강 원칙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선 술, 담배를 멀리해야 합니다. 1주 3~5번 운동을 해야 하는데, 주말에 몰아서 하는 운동은 혈관나이를 젊게 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채소와 생선을 곁들여 골고루 적게 먹는 것도 중요하죠. 스트레스나 걱정을 제때 푸는 것도 필수적입니다. 최근 독일 연구진은 걱정거리에 휩싸여 있으면 혈액 속에 피떡(혈전)이 증가해 혈액의 흐름이 방해받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관련기사는 http://test2.kormedi.com/news/health_report/1184390_1481.aspx 참고) ‘피가 마른다’는 말이 일리 있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죠.

4월은 혈액이 잘 순환하도록 생활습관을 바꾸기에 좋은 달입니다. 야외에서 운동하기에 가장 좋은 달인 듯합니다. 오늘부터 담배 확 끊어버리고 운동화의 끈을 매는 것은 어떨까요? 혈관나이가 날마다 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