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DTC는 점(占) 보는 수준, 대국민 사기극"
[DTC 규제 완화, 반대한다] 이종극 서울아산병원 교수
[DTC 규제 완화, 반대한다] 이종극 서울아산병원 교수
정부가 비의료 기관(민간 유전자 검사 업체)도 소비자 의뢰에 따라 유전자를 검사하는 '소비자 의뢰 유전자 검사(Direct-To-Consumer, DTC)' 제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하지만 여러 비판에 직면하면서 난관에 빠졌다. 특히 과학계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난달 30일 보건복지부는 DTC 검사 제도 개선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지난해(2017년) 11월 민관 협의체를 구성해 5개월간 논의한 결과라며 개선안을 공개했다. 개선안의 핵심은 웰니스 검사 항목 대폭 확대, 유전체 검사 기관에 대한 인증제 시행 등이다.
하지만 과학계는 개선안을 전면 부정했다. DTC 항목 확대 근거가 과학적 설명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협의체 과학계 대표 위원 2인 가운데 1인으로 참여한 이종극 서울아산병원 의생명연구소 교수는 이날 공청회에서 "업계 의견이 거의 그대로 반영됐다", "DTC 검사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 등 직설적으로 개선안과 정부를 비판했다.
첨예하게 대립했던 의학계와 산업계가 합의했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듯했지만, 과학적 시각으로 봤을 땐 DTC 검사 제도가 왜곡되고 있다는 게 이종극 교수의 주장이다. 지난 3일 이종극 교수를 만나 DTC 제도 개선 문제점과 방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어봤다.
현재 DTC 검사, 과학적 근거 없다?
- 공청회에서 현재 DTC 검사는 과학적 설명력이 거의 없다고 했는데.
"현재 DTC로 하고 있는 비만, 혈압 등의 유전자 검사는 위험도(Odd ratio)가 굉장히 낮다. 그 말은 해당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미미하다는 뜻이다. 식습관, 환경 등 다른 많은 요소가 관여하기 때문에 유전자 검사를 하는 의미가 없다. 차라리 직접 혈압 등을 측정하는 게 훨씬 정확하다. 혹은 피부 탄력, 모발 굵기 등 이미 본인이 다 알고 있는 것을 검사한다. 왜 이걸 돈을 내고 검사하나."
- 정부 개선안은 웰니스 항목을 대폭 확대하고 당뇨, 고혈압 등 질병 예방 목적의 검사도 가능하게 했다. 잘못된 방안인가?
"풀어야 할 규제는 안 풀고 엉뚱한 규제를 풀었다. 허용 항목 대부분은 수백 개 유전자가 관여하는 것이다. 몇 개 유전자 검사로는 1%밖에 설명할 수 없다. 또 질병 예방 항목의 근거 수준으로 '위험도(Odd Ratio)>1.2'를 제시했는데, 이 기준은 식별력이 거의 없다. 예를 들어 환자 100명과 정상인 100명을 놓고 특정 돌연변이를 갖고 있는지 검사한다고 치자.
위험도 1.2라는 값은 정상인 집단에선 특정 돌연변이가 10%, 환자 집단에선 12% 발견됐다는 뜻이다. 정상인 100명 가운데서도 특정 돌연변이가 10명 발견되었고, 환자 집단에서도 12명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 이걸 기준으로 '당신은 이 돌연변이를 갖고 있으니 다른 사람보다 특정 질병이 걸릴 확률이 높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 풀어야 할 규제는 무엇인가?
"정말 유용성이 있는 항목에 대해 DTC 검사를 허용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BRCA1/2 유전자는 변이가 있는 경우 50~80%가 유방암으로 발병한다. 위험도가 5배 정도 늘어난다. 미국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돌연변이 BRCA 유전자가 있어 선제적으로 유방 절제술을 받았던 이유다. 치매를 유발하는 APOE 유전자도 마찬가지다.
특히 암이나 치매는 40~50대에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니고 있어도 발병률이 극히 낮다가 70대 이후부터 70% 이상으로 확연하게 높아진다. 따라서 미리 유전자 변이가 있다는 걸 알아둔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유용성 높은 항목에 대한 검사는 생명윤리법에 근거해 '제한' 항목으로 묶어 의료기관에서만 할 수 있도록 했다. 그걸 풀어줘야 한다."
협의체는 영역 다툼, 정부는 근거 없는 개선안
복지부가 DTC 제도 개선을 위해 구성한 민관 협의체는 의료계와 산업계의 영역 다툼이 대부분이었다고 이종극 교수는 말했다. 정부는 중재자로서 필요한 논의를 이끌어가기보다 의료계와 산업계의 업계 간 빠른 합의에 더 중점을 두는 듯했다. 결국, 소비자에게 가장 중요한 과학적 근거 마련 방안 등 필수적인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자료=보건복지부]
- 민관 협의체에서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던 내용이 개선안에 담겨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협의체에서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인가?
"똑같은 논쟁의 반복이었다. 의료계와 산업계가 각자 자신들의 입장만 얘기하다 보니 과학적 근거에 대해선 논의되지 않았다. 그런데 복지부가 보내준 최종 개선안엔 '위험도 1.2' 등 과학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문구들이 담겨 있었다. (이종극 교수는 공청회에서 "개선안을 보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선안은 사무관 한 명이 작성했는데, 어디서 자료를 받아서 적었는지 모르겠다. 업계 의견을 대부분 수용한 것 같다. 그 안이 합리적이면 괜찮은데, 과학적으로 불합리하니 문제다.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세부 내용이 결정됐는지 물어봐야 할 것이다. 결국 협의체는 요식행위였다고 본다."
- 의료계와 산업계의 입장 차가 큰가?
"아무래도 BRCA1/2, APOE 등 유용성이 높은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되면 의료계 영역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진다. 과거에도 질병에 대한 DTC 검사를 의료계가 반대하면서 일차적으로 비질병(웰니스) 항목만 허용됐다. 그런데 질병 검사도 목적에 따라서 의료계와 산업계가 나눌 수 있다. 진단 목적은 의료계가 하되, 예방적으로 쓰일 수 있는 부분은 산업계가 자유롭게 스크리닝할 수 있게 해주면 DTC 검사가 훨씬 유용해질 것이다."
- 소비자 입장에선 DTC 검사의 과학적 근거 여부가 중요할 텐데, 정작 협의체에선 과학적 유용성을 담보할 방법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소수 의견으로 치부된 것인가.
"공청회에서 직설적으로 지적한 이유다. 누구도 과학적 근거를 갖고 DTC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얘기한 사람이 없었다. 서로 영역이 상충하는 부분을 가르는 데 신경 쓰느라 정작 DTC 검사의 유용성을 확립하거나 제도를 정착시키는 방법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다."
왜곡된 DTC 제도, 목적부터 잘못됐다
이종극 교수는 본질을 빗나간 논의가 DTC 검사 제도를 왜곡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공청회에서 추가 허용된 항목에 대한 DTC 검사를 "사기"라며 극단적으로 표현했던 이유다. DTC 검사 제도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선 목적부터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 공청회에서 DTC 검사가 사기와 다를 바 없다고 얘기했는데.
"현재 유전적 설명력이 없는 DTC 검사를 이용해 업계에서는 건강 보조 식품이나 화장품 등을 파는 이차적인 사업에만 관심이 있는듯하다. 솔직히 지금 상황으로 보면 과학을 팔아먹는 산업이라 생각한다.
생각해 보라. 놀랐던 건 DTC 검사를 보험사에서도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DTC 검사가 정말 유용성이 있다면 보험사는 해당 유전자를 지닌 사람을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려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그런데 반대로 보험 판촉 행사를 위해 보험사가 DTC 검사를 시켜주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DTC 검사가 질병 예측을 못 한다는 증거다."
- 업계에선 예방이든 재미든 소비자들이 검사할 수 있는 권리를 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국가(보건복지부)가 DTC 검사 항목을 승인해주고 보증하게 되면 쓸모없는 유전자 검사도 모두 과학적이고 유용성이 있는 것으로 믿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 시행하려고 하는 DTC 유전자 검사 제도는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민의 건강과 질병 예방 목적에 부합하는 제도로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재미로 점을 치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점을 치는 일도 하나의 시장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바람직한 시장은 아니라고 본다. 더구나 그렇게 점을 치는 일을 정부가 승인하고 보증하나? 오죽하면 공청회에서 소비자가 업체나 정부 상대로 소송을 하면 나는 그 사람 편에 서서 과학적 측면에서 사기라는 걸 증명하겠다고 얘기했겠나."
- 말씀을 들어보면 DTC 검사 확대를 꼭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DTC 검사 확대를 찬성한다. 그런데 본래 목적에 맞는 DTC 검사를 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목적부터 뒤틀린 논의를 하고 있다. 개선안대로라면 인증제도 아무 의미가 없다. 정부가 제시한 '위험도 1.2', '논문 몇 편' 등의 기준은 모든 회사가 다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유용성 없는 걸 국가가 공인해주는 셈이다.
위험도 기준을 2로만 올려도 지금 업계에서 하는 검사들 대부분 탈락한다. 위험도 2는 사실상 최소 기준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업계가 자꾸 과학적 설명력이 없는 검사를 하려고 한다는 데 있다. 또 이렇게 불필요하거나 의미 없는 유전자 검사를 하도록 한 게 바로 의료계라고 생각한다."
- DTC 검사가 본래 목적대로 쓰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DTC 검사의 목적은 질병 예방이나 임상적 유용성이 있는 유전자 검사를 해 실질적으로 질병 예방 및 관리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DTC로 BRCA1/2 검사를 해서 변이 여부를 미리 알고 있다면 유방암 예방에 훨씬 도움 되지 않겠나. DTC 검사는 그런 목적으로 나온 것이다.
따라서 DTC 검사에 질병 검사 제한을 풀어줘야 하고, 한편으론 잘 관리해야 한다. 관리 감독할 기관도 필요하다. 미국도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DTC 규제 완화, 찬성한다] 인터뷰가 15일 발행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사진= vitstudio/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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