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환경보건학회, "'살충제 계란' 만성 독성 우려"

한국환경보건학회,

‘살충제 계란이 안전하다’는 정부 발표를 환경 보건 전문가들이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부가 만성 독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1일 "최악의 조건을 설정한 살충제 5종을 위해 평가한 결과에서도 건강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음식을 통해 살충제를 섭취하더라도 한 달 정도 지나면 대부분이 몸 밖으로 배출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성인의 경우 하루 126개, 평생 매일 2.6개의 계란을 먹어도 건강에 큰 문제는 없다고 강조했다.

계란을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는 것이 정부의 최종 판단이다. 하지만 환경 보건 전문가들이 정부의 발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한국환경보건학회는 같은 날 성명서를 통해 "계란은 매일 먹는 음식이기 때무에 1회 섭취나 급성 노출에 의한 독성이 문제가 아니다"며 "지금이라도 만성 독성 영향이 우려되는 섭취량을 제시하고 잠재적 고노출군의 건강 피해를 추적 조사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 단체는 "급성 독성이 미미함만을 강조하지 말고 만성 독성 영향 가능성을 고려하여 노출 관리 및 건강 영향 조사 등이 뒤따라야 한다"며 "농가에서 실제 사용했던 방제용 약제 제품을 전수 회수하여 포함된 유해 살충제 성분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계란 모니터링이 추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환경보건학회는 계란 살충제 오염 사태의 원인으로 이원화된 관리 행정, 의약외품 관리 체계의 허점, 축산물 안전 및 위생 감시 체계 실패를 지적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계란 살충제 오염 파동에 대한 (사)환경보건학회의 입장

계란은 우리나라 국민 한 명당 한해 평균 250개를 소비하는 식품으로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다. 특히 영유아와 어린이가 자주 먹기 때문에 계란에 대한 위생 및 안전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계란 살충제 오염 사태는 우리의 식탁이 유해 화학 물질로부터 안전하지 않으며 국가의 식품 위생 및 안전 관리망에 큰 구멍이 존재함을 증명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통해 생활 환경 화학 물질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음을 배웠다. 계란 살충제는 여러 맥락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닮았다. 정부의 생활 안전 문제에 대한 소통에도 문제가 있음을 드러냈다. 계란 살충제 오염 파동은 우리의 식탁 안전을 위한 총체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명백히 드러낸다.

(사)한국환경보건학회는 계란 살충제 오염 사태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1. 이원화된 관리 행정으로 사각지대 발생. 계란 잔류 살충제는 그동안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식품 위생 안전 관리망이 생산, 유통 및 소비 단계에 따라 이원 관리되고 있는 것은 이번 사태의 큰 이유이다.

2. 의약외품 관리 체계의 허점. 허가된 닭 진드기 방제 약제 14종 이외에 농가에서 방제 효과가 좋고 더 독한 살충제를 사용하더라도 이를 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허가된 방제 약제 조차도 생산 현장의 상황을 거의 반영하지 못하고 지정되어 있었다.

3. 축산물 안전 및 위생 감시 체계 실패. 계란 등 축산물의 유통과 소비 단계에서 살충제에 대한 안전 및 위생 감시 체계가 실패했다. 현장과 연계되지 않은 감시는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계란 살충제 오염 사태에 대한 다음과 같은 대응이 필요하다.

1. 계란 살충제의 만성적인 영향에 대한 주의와 대책이 필요하다. 식약처와 일부 전문가 단체는 일상적 수준으로 계란을 섭취하는 경우 ‘급성 독성’이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극단적인 고섭취군을 대상으로 산정한 식약처의 8월 21일 발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발표는 중요한 사실을 흐릴 가능성이 있어 주의 깊게 해석되어야 하며, 우리는 이를 경계한다.

계란은 매일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1회 섭취나 급성 노출에 의한 독성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우려하는 건강 피해는 만성 독성 영향이다. 예를 들어, 피프로닐의 급성 독성 참고치는 신경 독성에 근거한 것으로 0.003㎎/㎏이다. 한편, 암원성에 근거하여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식량기구에서 정한 (만성) 허용 섭취량은 급성 독성 참고치보다 15배 낮은 0.0002㎎/㎏에 불과하다. 더욱이 피프로닐의 광분해 산물은 더욱 안정하며 독성도 더 크다. 급성 독성이 미미함만을 강조하지 말고 만성 독성 영향 가능성을 고려하여 노출 관리 및 건강 영향 조사 등이 뒤따라야 한다.

2. 계란 살충제 노출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한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 어떤 살충제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현재는 분석 대상으로 선정된 살충제에 대해서만 계란의 오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실제 생산 현장에서 사용된 살충제를 모두 추적해야 한다. 농가에서 실제 사용했던 방제용 약제 제품을 전수 회수하여 포함된 유해 살충제 성분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계란 모니터링이 추가되어야 한다. 살충제 방제 작업 직후에는 계란에 훨씬 높은 농도로 오염되어 있을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개인의 노출량은 더 클 수도 있다. 현장에서의 사용 실태를 반영하여 계란의 살충제 오염 수준을 정확하게 추정해야 한다. 오염된 계란의 유통망 조사와 이를 토대로 한 소비자의 노출과 위해성 평가를 통해 필요한 추가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3.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투명한 정보 공개와 소통이 요구된다. 계란 살충제 파동에 대한 식약처의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불필요한 걱정이라면 정확한 근거를 토대로 불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로 정당한 우려를 차단하는 것은 국민의 식탁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 기관의 자세가 아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우리는 해당 살충제들의 급성 독성을 우려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만성 독성 영향이 우려되는 섭취량을 제시하고 잠재적 고노출군의 건강 피해를 추적조사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여야 한다.

계란 살충제 오염 파동을 계기로 삼아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식탁 안전 위생망을 근본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1. 생산 현장과 유통 및 소비 단계에 따라 분절되어 있는 식품 안전 관리 체계의 허점을 진단하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 농식품부와 식약처로 나누어져있는 식품 위생 및 안전 관리 체계는 식품 안전 문제를 감시하고 해결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HACCP의 사후 관리 체계 보완도 중요하지만, 이원화된 안전 관리 체계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할 우려는 상존한다.

2. 생산 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축산용 살충제 위생.안전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허가된 방제 약제는 더이상 판매되지 않거나, 빈 양계사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방제 약제가 대부분이었다. 현장을 도외시한 탁상 행정이 아닐 수 없다.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며 동시에 안전성을 보장하는 관리 체계를 구축하여야 한다.

3. 투명하고 객관적인 건강 영향 정보 공개, 소통망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 정부에서 계란 살충제 오염 사실을 즉각 공개하고 대책을 강구한 점을 평가한다. 그러나 불충분한 부분적 정보를 토대로 계란 살충제 섭취로 인한 건강 위험에 대해 성급한 결론을 공포했다. 성급한 안전진단을 결론내리면서도 분석에서 누락된 살충제가 연이어 나왔고 유통 이력 추적 제도의 허점이 노출되는 등 국민을 혼란스럽고 걱정하게 했다. 소통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국민은 정확한 정보와 자료를 원한다.

계란 살충제 사태는 우리의 식탁이 유해 화학 물질에 오염되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기회에 안전한 식품이 생산될 수 있도록 공장식 동물 사육 등에 대한 검토 등 축산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평가가 뒤따르기를 기대한다. 계란 살충제 파동을 계기로 식품 위생 및 안전에 대한 국가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것을 촉구한다.

2017년 8월 21일

(사)한국환경보건학회

[사진출처=nopthanon pimphat/shutterstock]

    도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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