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급대원으로 일하는 51세 영국 남성은 가벼운 감기를 앓고 난 뒤 갑자기 목소리가 쉬더니 3주가 지나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담배에는 손을 대지도 않았고 체중이 줄거나 목 주변에 멍울이 만져지는 일도 없었다. 이 때문에 감기 후유증이 오래 가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비인후과에서 내시경으로 목 안을 들여다본 순간,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왼쪽 성대가 완전히 마비돼 굳어 있었다. 컴퓨터 단층촬영(CT) 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 목 앞쪽 갑상선 뒤편에 숨어 있던 혹(크기 15mm)이 모습을 드러냈다. 의료진은 처음에는 흔한 양성 혹인 ‘부갑상선 선종’으로 판단해 칼슘 수치를 낮추는 약을 쓰며 경과를 관찰했다. 그러나 혈액 속 칼슘과 호르몬 수치는 계속 치솟았다.
첫 진료 후 약 3년 만에 혹을 떼어내 현미경으로 정밀 조직 검사를 한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그 혹은 단순한 양성 종양이 아니었다. 주변 피막과 지방 조직을 무섭게 파고드는 악성 종양인 부갑상선암으로 밝혀졌다. 환자는 곧바로 3차 암 전문 병원으로 옮겨졌다. 광범위 절제술을 받은 끝에 혈액 수치는 정상을 되찾았고 재발 없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또 다른 58세 여성은 피 속의 칼슘 농도가 치솟는 고칼슘혈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왼쪽 갑상선 아래에서 혹(크기 20mm)이 발견돼 곧바로 절제 수술을 받았다. 수술 직후 조직 검사 결과에서는 단순한 양성 혹으로 나타났고 증상도 가라앉는 듯했다.
수술 후 11개월이 됐을 때 받은 정밀 검사에서 피 속 칼슘 수치가 다시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온몸에 이상 증상이 재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밀 스캔 검사에서는 부갑상선 부위가 다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첫 진료 2년 만에 숨겨져 있던 종양을 완전히 떼어내는 2차 수술을 받았다.
떼어낸 조직을 대형 전문 병리센터에서 정밀 재검토한 결과, 처음에 양성 판정을 받았던 바로 그 자리에 암 세포가 깊숙이 파고들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진은 이 환자에게 부갑상선암 진단을 내렸다. 의료진의 추적 관찰과 2차 수술 덕분에 남아 있던 암을 완전히 없앤 이 환자는 3년 넘게 재발 없이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다.
영국 스컨소프 종합병원 연구팀의 이 사례 연구 결과(Parathyroid Carcinoma: A Report of Two Cases)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목이 쉬어 발성 장애가 나타나면 의심할 수 있는 병이 적지 않다. 목을 무리하게 써서 생기는 성대 결절이나 성대 폴립, 감기 바이러스에 의한 급·만성 후두염, 위산이 성대를 자극하는 역류성 식도염·후두염 등을 통상 떠올릴 수 있다.
쉰 목소리는 때로 후두암·폐암·식도암·갑상선암 등이 보내는 강력한 경고 신호일 수 있다. 후두암을 비롯해 폐의 윗부분이나 가슴 중앙 부위(종격동)에 암이 생겨 되돌이후두신경(성대를 움직이는 신경)을 누르는 폐암, 림프절 전이로 신경을 압박하는 식도암, 갑상선암 등은 모두 성대 마비와 함께 쉰 목소리를 일으킨다. 이번 사례처럼 갑상선 뒤에 있는 부갑상선에 암이 생겨도 같은 증상을 보인다.
부갑상선은 목 앞쪽 갑상선 뒤에 나란히 붙어 있는 완두콩 크기의 기관 4개로 이뤄져 있다. 혈액 내 칼슘 농도를 일정하게 조절하는 부갑상선 호르몬을 분비한다. 일반 인구 1000명당 1~4명꼴로 발생하는 일차성 부갑상선 기능 항진증의 대부분은 양성 혹인 선종 때문에 발생한다. 악성 암인 부갑상선암은 전체 부갑상선 질환 환자의 1% 미만에서만 나타난다. 국내에서도 국가암등록통계에 별도 단독 순위로 집계되지 않을 만큼 드물다. 부갑상선 수술을 한 전체 환자의 1% 안팎에 그친다.
부갑상선암이 무서운 이유가 따로 있다. 암 덩어리 자체의 물리적 압박보다는 암세포가 뿜어내는 호르몬이 큰 문제다. 부갑상선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뼈 속에 갇혀 있어야 할 칼슘이 한꺼번에 녹아 혈액 속으로 빠져나오면서 극심한 고칼슘혈증을 일으킨다. 뼈가 속부터 비어서 가벼운 충격에도 뼈가 잘 부러지며 심한 관절통이 동반된다. 또한 과부하가 걸린 콩팥이 망가져 신장 결석과 급·만성 신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심한 구토와 탈수, 온몸에 힘이 빠지는 근육 쇠약, 칼슘이 뇌 신경을 마비시켜 기억력 감퇴와 정신 착란까지 부르는 치명적인 전신병으로 번질 수 있다.
혈액 검사에서 혈청 칼슘 수치가 14mg/dL 이상으로 치솟거나 부갑상선 호르몬 수치가 정상 상한치의 2배를 넘으면 악성 종양을 강력히 의심해야 한다. 현대 첨단 영상 장비를 활용해도 수술 전에는 양성 선종과 악성 종양을 명확히 구별하기가 어렵다. 오직 수술로 종양을 떼어낸 뒤, 현미경으로 미세 혈관이나 피막 침윤을 확인하는 조직병리 검사로만 최종 확진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사례처럼 1차 수술에서는 양성으로 잘못 판정됐다가 뒤늦게 재발해 암으로 드러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부갑상선암은 환자의 약 30%에서 수술했던 원래 자리에 다시 암이 생기고, 또 다른 30%는 암 세포가 폐·간·뼈 등으로 퍼질 위험이 있다. 적절한 수술적 치료를 받을 경우 5년 생존율은 약 86%다.
감기를 앓은 뒤라도 쉰 목소리가 2~3주 이상 이어질 때는 단순 성대 문제로 넘겨선 안 된다. 목소리 변화는 목 안쪽 깊은 곳에서 자라난 종양이 성대를 움직이는 되돌이후두신경을 압박하고 있다는 위험 신호일 수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온몸의 뼈마디가 쑤시고 극심한 피로감이나 소화기 이상이 반복되거나, 부갑상선 수술 후에도 고칼슘혈증이 재발한다면 서둘러 종합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1. 부갑상선암으로 인한 고칼슘혈증이 생기면 정신 착란까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1. 칼슘은 뼈를 구성하고 뇌 신경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을 조절해줍니다. 혈액 속 칼슘 수치가 치솟으면 뇌 신경전달 과정에 심각한 과부하와 교란이 발생합니다. 초기에는 멍해짐과 극심한 피로감, 기억력 저하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수치가 더 높아지면 환각, 섬망, 극심한 정신 착란 및 혼수 상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Q2. 목 안쪽에 생긴 부갑상선 혹에 대해, 수술 전에 주삿바늘로 조직 검사를 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A2. 부갑상선 종양의 경우, 주삿바늘로 찔러 세포를 채취하는 검사(세침흡인검사)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악성 종양이면, 주삿바늘이 지나간 경로를 따라 암세포가 목 안쪽의 다른 조직으로 퍼져나가는 파종(암세포 번식) 위험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초음파와 혈액 검사로 위치와 기능을 파악한 뒤 절제 수술로 전체 조직을 확인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Q3. 뼈가 약해지고 골다공증이 생겼다면 칼슘 영양제를 더 챙겨 먹어야 하지 않나요?
A3. 부갑상선암이나 부갑상선 기능 항진증으로 인한 골다공증 환자는 칼슘 보충제를 함부로 복용하면 안 됩니다. 몸속 뼈가 약해진 원인이 칼슘 부족이 아니라, 호르몬 이상으로 뼈의 칼슘이 핏속으로 과도하게 빠져나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에서 칼슘 영양제나 고용량 비타민D를 먹으면 혈중 칼슘 수치가 치솟아 신부전이나 심장마비 등 치명적인 합병증을 부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