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21일 (월)

외래 전문의가 입원전담전문의가 된 이유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 #38 다시, 병실로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이미지=챗GPT 생성

나는 내분비대사내과 전문의다. 당뇨병과 갑상선, 뇌하수체 등 호르몬과 관련된 질환을 진료한다. 특히 내 전공인 당뇨병 진료는 입원보다 외래 진료의 비중이 훨씬 크다. 그렇게 십수 년간 외래에서 환자를 만나던 나는 2025년부터 입원 환자만을 전담해 돌보는 의사, 이른바 ‘입원전담전문의’로 일하고 있다.

외래 중심으로 일해 온 전문의가 갑자기 입원 환자를 돌보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하나같이 의아해했다.

“왜? 오랫동안 안 하던 일을 하는 게 너무 힘들지 않아? 잘 지내고 있었잖아. 아깝지 않아?”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2024년 어느 일요일 오후를 떠올린다.

의정 갈등이 시작되면서 20년 만에 병동 당직을 서게 됐다. 오랫동안 입원 환자를 직접 보지 않았던 나에게 내과 당직은 두려운 일이었다. 위장관 출혈로 혈압이 떨어지는 환자, 폐렴이나 심장 문제로 숨을 몰아쉬는 환자들의 밤을 내가 책임질 수 있을까.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병원의 내과 의사는 한정되어 있었으니까. 중증 환자가 많은 우리 병원의 내과 당직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오후, 말기 암 환자가 숨쉬기 힘들어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실로 가서 병력을 확인하고 진찰한 뒤, 이미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둔 환자에게 그 뜻이 여전한지 다시 물었다. 환자는 자신의 결정은 확고하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두려움을 털어놓았다. 죽음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겪게 될 호흡곤란과 통증이 두렵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두려움에 공감했다. 그리고 고통을 덜기 위해 의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설명했다.

환자와 함께한 시간은 10분 남짓에 불과했지만, 나는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전공의 시절, 연명의료를 받지 않기로 한 환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나는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격무와 수면 부족을 핑계 삼아 어떻게든 중증 환자를 살리는 데만 매달렸다. 더 이상 적극적인 치료를 할 수 없는 환자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그날 그 환자 앞에서 나는 그 시간을 다시 떠올렸다.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감정 뒤에서 다른 마음 하나가 올라왔다.

다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나 역시 나이가 들면서 환자로 입원해 보기도 했고,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입원하시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부모님이 입원 중 섬망을 겪자 나까지 당황하며 어찌할 줄 몰랐던 경험도 있다.

환자가 되어 본 경험, 보호자가 되어 본 경험, 그리고 내과 전문의로 살아온 시간이 함께 쌓인 지금이라면 전공의 시절보다 훨씬 더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진료를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과 소망이 생겼다.

대학병원의 외래 앞은 많은 환자로 북적인다.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는 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당뇨병은 만성질환 중에서도 골치 아픈 병이다. 다른 질환과 함께 따라오는 경우가 많고, 그 자체로 온몸에 합병증을 일으킨다.

짧은 외래 진료 시간 안에 여러 문제를 한꺼번에 살피고 치료 계획까지 세워야 한다는 것이 내게는 큰 스트레스였다. 병실에서 환자의 하루를 직접 보고 싶었다. 아픈 환자의 곁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살피고, 치료뿐 아니라 그 사람이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돌보고 싶었다.

그렇게 병원에 입원의학센터가 생기고 입원전담전문의로 일할 기회가 왔을 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손을 들었다. 2025년 3월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막 1년을 넘겼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돌아보면 유난히 마음에 남는 환자들이 있다. 치료가 쉽지 않았던 환자도 있고, 짧은 입원 기간 동안 정이 들었던 환자도 있다. 그들을 만나면서 입원전담전문의의 역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의료가 세분화되고 전문화될수록 환자 한 사람의 문제는 오히려 더 복잡해진다. 특히 고령의 환자들은 한 가지 질환만 가지고 병원에 오지 않는다. 여러 질환과 복용 중인 약을 함께 살피면서 무엇을 어디까지 검사하고 치료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때로는 의학적으로 할 수 있는 치료와 환자에게 실제로 필요한 치료 사이에서 고민해야 한다. 퇴원 이후 어디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으며 지낼 것인지까지 생각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 과정에서 입원전담전문의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여러 과의 치료를 조율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환자의 병을 하나의 장기나 한 가지 진단으로 나누어 보지 않고, 그 사람이 처한 상황 전체를 바라보는 일이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바람으로 시작했다. 다시 병실에서 환자를 제대로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다른 마음도 생겨나고 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우리나라 입원의학이 제대로 자리 잡는 데 나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때까지, 지치지 말자.

<편집자주>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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