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디세우스가 거인을 쓰러뜨린 비장의 무기는 ‘포도주’였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포도주에 물을 섞어 마셨고, 오디세우스가 동굴에 가져간 포도주 역시 물에 희석해 마실 만큼 진한 술이었다. 거인마저 취하게 한 술, 물을 타면 정말 덜 취할까?
원작 《오뒷세이아》에서 동굴에 갇힌 오디세우스는 탈출을 위해 키클롭스에게 진한 포도주를 거듭 권한다. 술맛에 기분이 좋아진 키클롭스는 오디세우스에게 ‘상’까지 약속한다. 상은 다름 아닌 “동료들을 먼저 먹고 너는 마지막에 먹겠다”는 것.
그러나 키클롭스는 결국 술에 취해 쓰러진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이 틈을 노려 그의 눈을 찌른 뒤 탈출한다.
오디세우스가 거인에게 물 한 방울 타지 않은 술을 권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음주 문화에 비춰보면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술에 물을 타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취하는 것 자체보다 술과 대화를 함께 즐기면서 절제하려는 자세가 중요하게 여겨졌다. 포도주에 물을 섞어 마셨고, 물을 타지 않은 포도주를 그대로 마시는 것은 야만적인 음주로 보기도 했다. 술자리 진행자가 그날 분위기에 따라 포도주와 물의 비율을 정할 정도였다.
물 타도 알코올 총량은 같아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술에 물을 타면 정말 덜 취할까. 물을 섞으면 술의 농도가 낮아져 실제로 도수는 떨어진다. 하지만 술에 들어 있던 알코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6도 소주 한 병(350mL)을 예로 들어보자. 여기에 물 650mL를 부으면 총 1L, 도수는 5.6도가 된다. 맥주와 비슷한 도수다.
숫자만 보면 소주가 맥주로 변한 듯하지만, 처음 들어 있던 순수 알코올 56mL는 그대로다. 1L를 모두 마시면 결국 소주 한 병에 든 알코올을 전부 섭취하는 셈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저도수 술도 만만히 볼 수 없다. “생맥 두 잔 정도야”라고 가볍게 생각하기 쉽지만, 5도 생맥주 500mL 두 잔에는 순수 알코올 50mL가 들어 있다. 16도 소주 한 병을 마신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얼마나 도수 높은 술을 마셨느냐만큼 얼마나 많이 마셨느냐도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왜 술 마실 때 물을 많이 마시라고 할까?
미국 국립의학도서관(National Library of Medicine·NLM)의 의학정보사이트 메드라인플러스(MedlinePlus)에 따르면 물을 마신다고 이미 몸에 들어온 알코올이 사라지거나 분해가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을 마시면 수분 부족으로 인한 각종 증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알코올은 몸의 수분을 유지하도록 돕는 호르몬인 ‘바소프레신’의 분비를 억제한다. 술을 마시면 화장실을 자주 찾게 되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체내 수분 손실도 늘어난다. 미국 국립알코올남용·알코올중독연구소(National Institute on Alcohol Abuse and Alcoholism·NIAAA)에 따르면 술로 인한 탈수는 갈증과 피로, 두통 등 숙취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음주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점이다. 술 한 잔 사이에 물을 마시면 다음 잔까지 자연스럽게 간격이 생긴다. 물을 마시는 만큼 포만감도 생겨 술을 연달아 마시는 것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조금 마시고 천천히 즐겨야
고대 그리스의 술은 취하기 위한 술과는 거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포도주에 물을 섞고 둘러앉아 취기가 과해지지 않도록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날 학술 발표·토론회를 뜻하는 ‘심포지엄(Symposium)’도 바로 이 술자리에서 유래했다. 고대 그리스어 ‘심포시온(Symposion)’은 ‘함께 마신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둘러앉아 술을 나누며 대화하고 토론하던 모임을 가리켰다. 결국 술에 물을 타는 건 천천히 마시며 자리를 오래 즐기자는 의미에 가까웠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지지 않은 건 덜 마시고 천천히 마시는 것이 낫다는 점이다. 음주량이 적을수록 술로 인한 건강 위험은 감소한다. 술을 마시더라도 짧은 시간에 몰아 마시기보다 천천히 마시면 과음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