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에서 내려온 담즙과 췌장에서 나온 소화액이 십이지장으로 빠져나가는 작은 길목. 이 좁은 부위에도 암이 생긴다. 이름조차 낯선 ‘바터팽대부암’이다.
한국에서 한 해 발생하는 환자가 900명도 되지 않는 희귀암이다. 환자가 적다 보니 대규모 연구가 쉽지 않았고, 같은 바터팽대부암이라도 왜 어떤 환자의 암은 유독 공격적인지 제대로 가려내기도 어려웠다.
한국 연구진이 이 암을 세포 하나하나까지 들여다본 결과, 기존에 크게 두 종류로 나누던 바터팽대부암을 4가지로 더 세밀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재발과 사망 위험이 높은 ‘PB-KRAS’형을 찾아내고, 이 암이 주변 면역세포의 힘까지 떨어뜨리는 정황도 확인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소화기내과 박주경 교수·병리과 장기택 교수팀과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이세민 교수팀이 이 같은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고 12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바이오마커 리서치(Biomarker Research)》에 실렸다.
연구진은 바터팽대부암을 단일세포 전사체와 공간 전사체 기술로 분석해 세포 단위의 면역환경까지 살펴본 세계 첫 연구라고 전했다.
두 종류로 보던 희귀암, 세포 분석하자 4개로 갈렸다
바터팽대부는 담관과 췌관이 만나 십이지장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이곳에 암이 생기면 담즙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황달이 나타나기도 한다.
2026년 중앙암등록본부가 발표한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바터팽대부암 신규 환자는 연간 864명으로 전체 암 발생의 0.3% 수준이다.
지금까지는 암세포의 생김새에 따라 주로 ‘장형’과 ‘췌담도형’으로 나눴다. 하지만 같은 유형 안에서도 환자별 경과가 달라 이런 구분만으로 재발 위험이나 치료 반응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먼저 바터팽대부암 환자 8명의 종양을 단일세포 전사체 분석법으로 조사했다. 암 덩어리를 통째로 보는 대신 세포를 하나씩 나눠 어떤 유전자가 활발하게 작동하는지 살펴보는 방법이다. 이후 별도 환자 62명의 종양 자료로 결과를 검증했다.
그 결과 암세포는 △Int-Wnt △Int-Hypoxia △PB-KRAS △Cycling 등 4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기존 장형은 암 성장과 관련된 WNT 신호가 강한 유형과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 적응한 유형으로 다시 갈렸다. 췌담도형에서는 KRAS 관련 신호가 두드러진 PB-KRAS형이 확인됐다. 세포 분열이 특히 활발한 Cycling형도 따로 구분됐다.

가장 눈에 띈 PB-KRAS…재발·생존 결과도 나빴다
네 유형 가운데 가장 위협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PB-KRAS형이었다. 이 유형은 암세포의 유전체가 불안정한 데다 KRAS 관련 신호가 강했다. 암이 계속 살아남고 다시 자라는 데 유리한 성질도 두드러졌다.
실제 환자 자료에서도 PB-KRAS형 암세포 비율이 높은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재발이 많고 생존 결과도 좋지 않았다.
여러 요인을 함께 고려한 분석에서는 사망 위험을 나타내는 위험비가 116.6으로 계산됐다. 다만 이를 “사망할 가능성이 116.6배 높다”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분석 대상이 62명으로 적어 위험비가 매우 크게 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도 작은 표본의 한계를 인정했다. 다만 1000차례 반복 분석에서도 PB-KRAS형과 나쁜 예후의 연관성은 유지됐다. 정확한 위험의 크기는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후속 연구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왜 더 독한가 봤더니…암 주변 면역세포까지 힘 잃어
연구진은 암세포 자체뿐 아니라 주변에 어떤 세포가 모여 있는지도 살펴봤다.
공간 전사체 분석을 이용하면 조직 속 세포의 위치를 유지한 채 어떤 유전자가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암세포 주변의 ‘세포 지도’를 그리는 셈이다.
PB-KRAS형 주변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 암을 공격해야 할 CD8 T세포 가운데 기능이 떨어지는 세포가 많이 모여 있었고, 면역반응을 억누르는 대식세포도 함께 분포했다.
TGFB2, SPP1, FGF2 등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데 관여하는 신호도 확인됐다.
PB-KRAS형은 암세포 자체가 공격적일 뿐 아니라 주변 면역세포가 제대로 싸우기 어려운 환경까지 만들고 있을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다만 이번 연구만으로 PB-KRAS형이 면역항암제 내성을 직접 일으킨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 치료 반응과 연결되는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같은 암’으로 묶지 않고 위험한 환자 먼저 가려낼 길
이번 연구의 핵심은 바터팽대부암을 단순히 장형과 췌담도형으로 나누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갔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암을 세포 수준에서 4가지로 나누고, 이 가운데 어떤 유형이 보다 공격적인지 찾아냈다. 여기에 암 주변의 면역환경까지 분석해 PB-KRAS형이 왜 나쁜 경과를 보일 수 있는지도 설명할 단서를 제시했다.
후속 연구에서 결과가 확인되면 재발 위험이 큰 환자를 더 일찍 가려내고, PB-KRAS형에는 KRAS 관련 신호나 면역억제 환경을 겨냥하는 식으로 치료 전략을 달리하는 데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박주경 교수는 “이번 연구로 바터팽대부암의 공격성을 결정하는 분자적 기전을 세포 단위에서 규명했다”며 “재발 고위험 환자를 조기에 선별하고 KRAS 및 면역억제 신호를 겨냥한 새로운 치료 전략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과 보건복지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