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30일 (목)

1조원 계약이라더니 실제 받는 돈은 일부…제약·바이오 '뻥튀기 공시' 막는다

금감원, 기술이전 계약금·마일스톤 구분 공시 의무화…IPO 공모가 산정 근거도 표준화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금융감독원 사진=연합뉴스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1조원 규모 기술수출 계약'처럼 총액부터 내세우는 발표 방식에 제동이 걸린다. 계약과 동시에 실제로 받는 돈은 일부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임상 성공이나 품목허가처럼 조건을 채워야만 들어오는 마일스톤인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계약 규모만 부각되다 보니 투자자들이 이를 이미 확정된 수익으로 오인하는 일이 반복돼왔다.

금융감독원이 이런 관행에 손을 대기로 했다. 앞으로 기술이전 계약을 공시할 때 총 계약규모만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계약금과 마일스톤을 나눠 공개해야 한다.

왜 지금 공시를 손보나

금융감독원은 30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외부 자문위원과 제약·바이오 업계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증권신고서, 정기·수시공시, 관련 언론보도 전반을 검토한 결과를 담았다.

금감원이 공시 개선에 나선 시점은 삼천당제약을 둘러싼 공시 논란과도 맞물린다. 다만 삼천당제약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이유는 계약금액을 부풀렸거나 허위 정보를 공시해서가 아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4월 20일 삼천당제약의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공시하고 21일자로 지정했다. 사유는 ‘영업실적 등에 대한 전망 또는 예측 공정공시 미이행’으로, 벌점 5점이 부과됐다. 삼천당제약이 지난 2월 6일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의 캐나다 판매 실적과 향후 공급 물량 등 실적 관련 정보를 정식 공정공시에 앞서 보도자료로 공개한 것이 문제가 됐다.

당시 삼천당제약은 캐나다 출시 후 약 3개월간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에서 매출 97억원, 영업이익 약 57억원을 냈고 유럽·캐나다에서 75만 병의 확정 구매주문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회사는 이후 불성실공시 지정과 관련해 이 수치들이 실제 실적과 구매주문에 근거한 것이며, 제재는 자료 내용의 허위 여부가 아니라 정보를 공개한 절차와 순서에 관한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함께 논란이 됐던 유럽·미국 라이선스 계약도 이번 불성실공시 지정 사유와는 별개라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공시와 계약 내용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동안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삼천당제약은 3월 30일 장중 123만3000원까지 올라 코스닥 ‘황제주’로 불렸지만 이후 급락했다.

전인석 대표가 지난 3월 약 2500억원 규모의 보유지분 매각 계획을 내놨다가 4월 이를 철회한 가운데, 미국 공급계약 규모 등을 둘러싼 시장의 의문도 이어졌다. 회사 측은 계약 내용을 허위로 발표하거나 부풀렸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7월 21일에는 16만7500원에 거래를 마쳐 3월 장중 최고점보다 86% 이상 낮아졌고, 고점 부근에서 매수한 투자자들의 손실도 커졌다. 다만 여러 요인이 동시에 작용한 만큼 공시 위반 하나를 주가 급락의 원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개선 TF’서 개선방안 논의

금감원은 지난 4월 10일 ‘제약·바이오 공시 종합개선 TF’를 출범시켜 공시 개선방안을 논의해왔다. 금감원은 임상시험과 기술이전 등 제약·바이오 기업의 핵심 정보가 전문적이고 불확실해 일반 투자자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개선 배경으로 들었다.

삼천당제약 사례는 이후 금감원 브리핑에서 직접 거론됐다. 이동규 금감원 공시심사국장은 지난 5월 11일 자본시장 현안 브리핑에서 삼천당제약 사례를 들며 기업이 배포하는 보도자료와 법정·거래소 공시 사이에 내용 차이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이런 차이를 줄이는 것도 제약·바이오 공시 개선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최근 임상시험 결과나 기술이전 계약 규모가 과도하게 해석되거나 공시 내용과 언론보도가 서로 어긋나는 사례가 반복돼 투자자 혼란을 키웠다고 진단했다. 연구개발 전 과정에서 제공되는 정보의 정확성과 비교 가능성을 높여 투자자가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개선안의 초점을 맞췄다.

제약·바이오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이번 개편의 파급력은 작지 않다. 코스닥 시장에서 제약·바이오는 올해 3월 말 기준 시가총액의 29.9%(183조 원)를 차지했고, 지난해 IPO 시장에서도 시가총액 기준 47.0%에 달했다.

공모가 산정부터 계약 공시까지, 뭐가 달라지나

IPO 단계에서는 기업가치 산정의 핵심 가정을 표준화한다. 앞으로 제약·바이오 기업은 예상 시장규모, 임상시험 성공확률, 허가·심사 리스크, 개발기간과 소요비용 등 네 가지 항목을 중심으로 공모가 산정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예상 시장규모는 전체 시장과 실제 목표시장을 나눠 적어야 하고, 임상시험 성공확률은 회사가 임의로 추정하지 못하도록 논문이나 기존 통계 같은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산정해야 한다.

상장 이후 공시도 크게 바뀐다. 기술이전 계약은 총 계약규모뿐 아니라 계약금, 개발 마일스톤, 허가·판매 마일스톤, 로열티를 구분해 각각의 지급 조건과 성격까지 함께 공시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는 실제로 확정된 수취 금액과 앞으로 조건이 충족돼야 들어오는 금액을 구분해서 볼 수 있게 된다. 계약상 비밀 유지를 이유로 계약 상대방을 밝히지 않는 경우에도, 상대방의 규모나 사업 역량 같은 최소한의 정보는 공시하도록 했다.

정기공시에는 파이프라인별 '연구개발 이력관리 총괄표'가 새로 생긴다. 현재 개발 중인 후보물질은 물론 과거 공개했던 제품군까지, 개발 완료·개발 중단·품목허가 등 주요 진행 경과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처음 계획보다 일정이 늦어지면 지연 사유와 앞으로의 계획도 함께 적어야 한다.

수시공시에서는 임상시험 결과를 공시할 때 전문용어의 뜻과 해석 방법을 함께 안내하고, 해당 파이프라인의 과거 공시 이력도 쉽게 연결해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다만 수시공시 세부 개선안은 한국거래소가 별도로 검토를 진행 중이다.

언론보도 관리 기준도 강화된다. 투자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보는 공시를 통해 먼저 공개해야 하고, 이후 나가는 언론보도는 그 공시 내용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공시되지 않은 중요 정보를 덧붙이거나 과장되고 주관적인 표현을 쓰는 것도 지양하도록 했다. 특정 투자자에게 정보를 먼저 제공하는 행위는 제한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하기 전 내부 승인 절차를 마련하도록 권고했다.

증권신고서 관련 기준은 발표 즉시 적용돼 앞으로 제출되는 IPO 서류부터 바로 반영된다. 반면 정기·수시공시와 언론보도 가이드라인은 금융위원회·한국거래소 등과의 협의와 서식 정비를 거쳐 연내 순차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금감원은 이번 개선방안이 "'기업이 말하는 공시'를 '투자자가 이해하는 공시'로 바꾸는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공시와 언론보도의 일관성을 높여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투자자가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위험요인을 균형 있게 판단할 수 있도록 공시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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