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30일 (목)

암 잡는 면역세포, 먼저 오면 달랐다…난치성 뇌종양 치료 새 단서

NK세포 먼저 오면 암세포 공격 강화…미세아교세포 먼저 오면 면역 억제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세포독성 T세포(파란색)가 암세포*붉은색)를 공격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일러스트. 면역세포는 암세포를 찾아 공격할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암세포 주변에는 암을 공격하는 면역세포도 있고, 오히려 암이 살아남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면역세포도 있다. 한국 연구진이 어떤 면역세포가 종양에 먼저 도착하느냐에 따라 암을 공격하는 힘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 대상은 치료가 어렵고 재발이 잦은 악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이다.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자연살해세포(NK세포)가 먼저 종양에 도착했을 때에는 항암 반응이 강해졌다. 반대로 뇌에 원래 존재하는 면역세포인 미세아교세포가 먼저 자리 잡자 NK세포의 공격은 약해졌다.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백선하 교수팀(김요나 박사)과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박성수 교수팀(한석규 박사)은 면역세포가 종양에 들어오는 순서를 조절할 수 있는 실험 장치를 개발해 이 같은 결과를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같은 세포 넣었는데 ‘도착 순서’ 바꾸자 결과 달라져

교모세포종은 뇌에서 생기는 악성 종양으로, 빠르게 자라고 주변 뇌 조직으로 퍼지는 특성이 있다. 수술과 방사선치료, 항암치료를 받아도 잦은 재발로 치료가 까다롭다.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암 주변의 면역 환경이다. 미세아교세포는 평소 뇌에서 손상된 세포나 이물질을 처리한다. 하지만 교모세포종 주변에서는 암세포가 살아남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반면 NK세포는 암세포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찾아 공격한다.

연구진은 이 두 면역세포가 암세포와 만나는 순서 자체가 종양의 반응을 바꿀 수 있는지 살폈다.

기존 세포 배양법으로는 세포가 종양에 도착하는 시점을 마음대로 조절하기 어려웠다. 이에 연구진은 여러 통로를 통해 원하는 세포를 정해진 순서대로 넣을 수 있는 미세유체 장치를 만들었다.

이 장치에서 지름 약 400㎛ 크기의 공 모양 3차원 인공 뇌종양 조직을 형성했다. 암세포와 미세아교세포, NK세포의 비율은 같게 유지했다. 바꾼 것은 종양에 도달하는 순서뿐이었다.

사진=서울대병원

결과는 뚜렷했다. 미세아교세포가 먼저 들어오자 암세포를 보호하고 면역 반응을 억누르는 데 관여하는 ‘STAT3’ 신호가 활발해졌다. 뒤이어 도착한 NK세포는 종양 안쪽으로 제대로 파고들지 못했다. 암세포를 죽이는 힘도 떨어졌다.

순서를 뒤집자 반응도 달라졌다. NK세포가 먼저 도착했을 때는 암세포 공격과 관련된 유전자들이 활발하게 움직였다. 같은 종류와 수의 세포를 넣고 도착 순서만 바꿨는데도 종양의 면역 환경이 달라진 것이다.

생존 기간 다른 환자 종양세포에서도 차이

실제 환자에게서 얻은 종양세포에서도 비슷한 차이가 나타났다.

10년 이상 생존한 환자와 생존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았던 환자의 종양세포를 비교했다. 생존 기간이 짧았던 환자의 종양세포는 미세아교세포와 함께 있을 때 더 잘 증식했고, NK세포의 공격에도 더 강하게 버텼다.

어떤 유전자가 이런 차이에 관여하는지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띈 것이 ‘IL12A’다. IL12A는 면역세포의 항암 활동을 돕는 단백질인 ‘인터루킨-12(IL-12)’의 한 구성 요소를 만드는 유전자다. NK세포가 먼저 종양에 들어왔을 때 이 유전자의 발현이 두드러지게 늘었다.

교모세포종 환자 27명의 세포 33만8000여 개를 분석한 결과, IL12A는 27명 가운데 2명에서만 관찰됐다. 전체 세포 중에서도 0.45%에 그쳤다. 교모세포종 안에서 이 면역 활성 신호가 대부분 억눌려 있음을 보여준다.

대규모 환자 자료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났다. IL12A 발현이 높은 환자일수록 생존 기간이 유의하게 길었다.

연구진은 IL12A가 교모세포종의 면역 상태와 환자 예후를 살펴볼 후보 지표가 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암이 만든 ‘면역 방어막’ 약으로 풀 수 있을까

그렇다면 미세아교세포가 먼저 자리 잡은 뒤에도 암을 보호하는 면역 환경을 되돌릴 수 있을까.

연구진은 면역 억제에 관여하는 STAT3 신호를 막는 약물 WP1066과 교모세포종의 표준 항암제인 테모졸로마이드를 함께 투여했다.

그러자 미세아교세포 때문에 억제됐던 IL12A의 발현과 분비가 다시 늘었다. NK세포도 종양 안쪽으로 더 깊이 침투했고, 암세포 사멸 효과도 커졌다.

암세포만 직접 공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암 주변의 면역 억제 환경까지 함께 바꾸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다만 실제 환자에게서 치료 효과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이번 연구는 세포로 만든 3차원 인공 뇌종양과 환자에게서 얻은 종양세포, 기존 환자 자료를 이용했다. WP1066과 테모졸로마이드 병용이 실제 치료 효과나 생존 기간을 높이는지는 임상시험에서 확인해야 한다.

연구진이 개발한 장치도 당장 환자의 치료법을 정하는 검사로 쓸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다만 환자마다 다른 종양의 면역 환경을 실험실에서 재현하고 치료 반응을 살펴보는 연구 도구로 활용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왼쪽부터)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백선하 교수, 김요나 박사,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박성수 교수, 한석규 박사 사진=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교모세포종의 면역 환경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암세포와 면역세포가 만나는 순서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한다는 점을 입증했다”며 “환자의 예후를 재현할 수 있는 이 플랫폼이 난치성 뇌종양 환자의 치료 반응을 미리 예측하고 맞춤형 면역치료 전략을 세우는 데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뉴로온콜로지(Neuro-Oncology)》에 게재됐다.

댓글 0
댓글 쓰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