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뉴욕에 사는 25세 남성은 평소 건강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다만 6년 전 청소년소아과를 찾은 이후엔 병원 진료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는 일주일 전부터 느닷없이 소변에 피(무통증 혈뇨)가 섞여 나오고 왼쪽 팔에 감각 이상을 느꼈다. 며칠 후 코피가 한 차례 나고 두통까지 발생하자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 환자가 응급실에서 잰 혈압은 수축기 혈압 253mmHg, 이완기 혈압 167mmHg였다. 미국의 고혈압 기준(수축기 130mmHg, 이완기 80mmHg)으 한참 넘어선 극심한 고혈압에 해당했다.
콩팥(신장) 검사 결과도 좋지 않았다. 콩팥 기능을 나타내는 지표인 혈중 크레아티닌 수치가 2.18mg/dL로 정상치(남성 0.6~1.2mg/dL, 여성 0.5~1.1 mg/dL)를 크게 초과해 급성 콩팥 손상으로 나타났다. 심전도 검사 결과도 나빴고 혈중 트로포닌 수치가 상승해 심장 허혈(허혈성심장병) 징후를 보였다.
또한 눈 검사(안저 검사)에서 3등급 고혈압성 망막병증이 진단됐다. 콩팥 생검 결과에서는 자가면역 반응에 의한 ‘혈전성 미세혈관병증(TMA)’이 확인됐다. 고혈압 진단을 받은 적도 없고 건선을 앓은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위험 요인도 없던 젊은 남성에게, 주요 장기가 동시 손상되는 ‘고혈압 응급증’이 발생한 것이다.
연구팀은 즉시 라베탈롤 정맥 주사 후 니카르디핀 주입 요법을 시행했다. 첫 1시간 동안 혈압을 20~25% 낮추기 위해서다. 환자는 이어 심장 중환자실과 일반 병동을 거치며 암로디핀, 로사르탄 등 복합 경구 항고혈압제 치료를 받았다. 이후 수축기 혈압 110~120mmHg 수준을 회복한 뒤 정기 외래 진료를 조건으로 무사히 퇴원했다.
이 사례 연구 결과(An Uncommon Presentation of Hypertensive Emergency in a Young Patient: A Case Report)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이 환자를 진료한 의료진은 처음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는 고혈압 병력도 없고 최근 6년 동안 병원 진료를 받은 적도 없었다. 평소 혈압을 정기적으로 측정하거나 추적 관찰한 의료 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보통 수축기 혈압 120mmHg 미만, 이완기 혈압 80mmHg 미만을 정상 혈압 범위로 본다. 미국에선 몇 년 전 고혈압 기준을 수축기 130mmHg 이상, 이완기 80 mmHg으로 높였다. 종전엔 수축기 혈압이 140 mmHg 이상이어야 고혈압이었다.
의료계는 수축기 혈압이 180mmHg 이상이거나 이완기 혈압이 110~120mmHg 이상으로 급격히 치솟으면서 심장·콩팥·뇌·눈 등이 급격히 손상되는 상태를 매우 위험한 ‘고혈압 응급증’(Hypertensive Emergency)으로 분류한다. 이는 장기 손상 징후가 없는 ‘고혈압 긴급증’(Hypertensive Urgency)과 구별된다. 후자의 경우에도 혈압은 급상승하지만 급성 장기 손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고혈압 응급증은 60세 이상이나 고혈압·당뇨병·만성콩팥병 등 환자에게 주로 발생한다. 기저질환(지병)이 없는 환자에게서 발생하는 비율은 전체의 8~23% 수준에 그치며 특히 20대 청년층에서 나타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젊은 연령대에서 지병이 없는데도 혈압이 갑자기 치솟는 고혈압 응급증이 나타나면 반드시 ‘이차성 고혈압’을 의심해야 한다. 이와 함께 여러 장기의 손상 여부를 살펴야 한다. 다른 병에 의해 이차적으로 고혈압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8~40세 고혈압 환자의 약 29.6%는 일차성 알도스테론증, 신혈관성 고혈압, 일차성 콩팥병 등 뚜렷한 원인을 갖고 있다. 알도스테론증은 혈압과 체액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알도스테론이 부신에서 과잉 분비돼 고혈압·저칼륨혈증을 일으킨다. 약을 먹어도 잘 듣지 않는 고혈압의 주요 원인이다.
고혈압 응급증은 치료 때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혈압을 너무 급격하게 떨어뜨리면 주요 장기로 가는 혈류량이 줄어 오히려 장기 손상이 악화할 수 있다. 따라서 발병 초기 1시간 안에 혈압을 20~25% 떨어뜨린 뒤, 24~48시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혈압을 조절하는 체계적인 응급 처치가 필요하다.
평소 고혈압 진단을 받은 적이 없더라도 원인 모를 혈뇨, 코피, 두통, 팔다리 감각 이상 등 이상한 증상이 고혈압과 함께 나타나면 서둘러 병원을 찾아야 한다. 특히 장기의 손상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1. 지병(기저질환)이 없는 젊은 사람도 갑자기 ‘고혈압 응급증’에 걸릴 수 있나요?
A1. 네, 가능합니다. 고혈압 응급증은 60세 이상 고령층이나 기존 고혈압 환자에게 주로 발생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평소 고혈압 증상이 없거나 진단을 받지 않았던 젊은 층에서도 이차적인 원인 즉 콩팥병이나 호르몬 이상 등으로 갑자기 고혈압 응급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Q2. ‘고혈압 응급증’과 일반적인 ‘고혈압 긴급증’은 어떻게 다른가요?
A2. 두 증상 모두 혈압이 급격하게 치솟지만 가장 큰 차이는 심장·콩팥·뇌·눈 등에 급성 손상이 발생했는지 여부에 있습니다. 장기가 손상된 징후가 동반된 경우를 ‘고혈압 응급증’이라고 합니다. 이 증상에는 즉각적인 정맥 투약 치료와 중환자실 입원 관리가 필요합니다.
Q3. 혈압이 너무 높을 때, 약을 써서 급격하게 정상 수치로 낮추면 안 되나요?
A3. 안 됩니다. 혈압을 갑자기 떨어뜨리면 인체의 혈류 자동 조절 기능이 무너지면서 심장·콩팥 등 주요 장기로 가는 혈액 공급이 순간적으로 확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장기 허혈이나 손상이 악화될 수 있으므로 첫 1시간 동안 20~25% 낮춘 뒤 단계적으로 혈압을 조절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