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했던 10세의 일본 여자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소변을 보기 힘들어졌다. 소변이 마려운 느낌은 왔지만, 막상 변기에 앉으면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이 여아는 동네 작은 의원(클리닉)을 찾았다. 검사 결과 소변에 기준치가 넘는 백혈구가 섞여 나오는 증상인 백혈구뇨(농뇨)가 확인됐다. 방광염이라는 진단과 함께 항생제를 처방받아 복용했지만, 증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환자의 오른쪽 엉덩이 주변에 평평한 발진과 물집이 포도송이처럼 떼 지어 돋아나기 시작했다. 소변을 시원하게 보지 못하는 증상이 잦아지자, 다시 의원을 찾아 다른 항생제를 받아왔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랫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고 무척 아팠다. 증상이 나타난 지 10일째 되던 날, 이 여아는 대형 종합병원 소아과 응급실로 옮겨졌다.
복부 초음파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 어린 환자의 방광은 소변을 전혀 배출하지 못해 소변이 808mL나 정체돼 있었다. 정상적인 또래 어린이의 방광 용량은 보통 300~500mL다. 오줌보가 정상 용량의 2배 이상으로 가득 차 터지기 직전이었다.
일본 이타바시 중앙 종합병원 연구팀은 이 환자의 방광이 파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요도에 가는 관을 삽입하는 요도 카테터 시술을 했다. 소변줄을 꽂자마자 소변이 1022mL나 쏟아져 나왔고, 압력이 낮아지면서 아랫배 통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특히 환자의 엉덩이에 난 물집은 뾰루지가 아닌 대상포진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신경을 타고 나와 물집을 일으킨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소변줄을 통해 방광의 압력을 낮춘 뒤, 곧바로 항바이러스제인 발라시클로비르를 하루에 1500mg(500mg씩 3회) 투여했다. 사흘 만에 엉덩이 물집에 딱지가 가라앉기 시작했고, 나흘 째에는 소변줄을 뽑아도 스스로 정상적인 배뇨를 할 수 있게 회복됐다.
소변을 덜 본 듯한 느낌(잔뇨감)이 약간 남아있었으나, 초음파 검사 결과 방광은 깨끗했다. 환자는 입원 8일째에 합병증이나 재발 징후 없이 건강하게 퇴원했다.
이 사례 연구 결과(A Pediatric Case of Urinary Retention Caused by Shingles on the Buttocks)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소아 대상포진이 부른 방광 마비...'엘스버그 증후군'
대상포진은 통상 50세 이상에 흔한 병으로 알려져 있다. 소아에게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며, 발생하더라도 주로 가슴 부위에 나타난다. 이 사례 속 어린 환자처럼 엉덩이나 사타구니 등 천골(엉치뼈) 신경 부위에 대상포진이 발생하는 것은 매우 희귀하다.
천골 신경 부위는 방광이 소변으로 차오르는 감각을 느끼게 하고, 소변을 짜내도록 방광 수축을 조절하는 부교감 신경계가 몰려 있는 곳이다.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ZV)가 이 천골 신경절에 침범해 신경염을 일으키면, 운동 신경이 일시적으로 마비된다. 이로 인해 방광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이완되고, 소변을 보라는 신호인 ‘배뇨근 반사’가 차단된다. 방광이 수축력을 완전히 잃는 상태가 돼 소변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고 고이는 ‘급성 요폐(요저류)’ 현상이 발생한다.
이처럼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척수 신경근에 염증이 생기고, 이 때문에 급성으로 배뇨 기능 장애나 요폐가 일어나는 병을 ‘엘스버그 증후군’이라고 한다. 단순 헤르페스 바이러스(HSV-2)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ZV)가 전체 원인의 74%를 차지한다.
이 환자를 진단하기 까다로웠던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반 사례와는 달리, 피부에 붉은 발진이나 물집이 돋아나기도 전에 배뇨 장애 증상부터 먼저 나타났다. 이 때문에 초기 동네 의원에서는 요로 감염이나 단순 방광염으로 오인해 항생제만 처방했다.
어린이는 어른과 달리, 대상포진이 생겨도 통증을 덜 느끼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부끄러워 엉덩이나 항문 주위를 부모나 의료진에게 선뜻 보여주지 않는다.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에 의한 방광 기능 장애를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까닭이다.
대상포진에 따른 급성 요폐는 일시적인 신경 마비 증상이다. 소변줄로 방광 파열을 막으면서 골든타임인 72시간 이내에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시작하면 대개 수주 내에 정상적인 배뇨 기능을 회복한다. 이 황금 시기를 놓쳐 방광이 과도하게 부풀어 오른 상태가 지속되면 소변이 콩팥(신장)으로 거꾸로 흘러 급성 신부전을 일으키거나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이번 사례가 던지는 교훈은 명확하다. 어린이가 갑자기 소변을 보기 힘들어하거나 아랫배 통증을 호소할 때, 단순히 소변 검사 수치만 보고 방광염으로 단정해선 안 된다. 부모는 아이의 옷을 벗겨 엉덩이, 사타구니, 허벅지 등에 원인 모를 붉은 뾰루지나 물집이 돋아나지 않았는지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피부 발진이 없더라도 배뇨 장애와 함께 엉덩이 주변의 감각 이상을 호소한다면, 신경학적인 원인을 의심해야 한다. 서둘러 비뇨의학과(옛 비뇨기과)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찾아 진단 및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1. 아이가 어릴 때 수두 예방접종을 맞았어도 대상포진에 걸려 방광 마비가 올 수 있나요?
A1. 예, 그렇습니다. 수두 예방접종을 맞으면 대상포진 발생률이 크게 낮아지지만 바이러스가 100% 차단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례 속 어린 환자는 생후 1세 무렵에 수두를 실제로 앓았던 적이 있고, 수두 백신은 접종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어릴 때 수두를 직접 앓았던 아이는 바이러스가 체내 신경절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질 때 재활성화합니다. 이 때문에 대상포진 및 요폐 합병증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Q2. 대상포진으로 소변줄을 꽂으면 소변줄을 오래 차고 있어야 하나요?
A2.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대상포진으로 인한 방광 기능의 마비(급성 요폐)는 바이러스가 신경에 염증을 일으켜 생긴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해 치료하면 손상됐던 천골 신경이 정상을 회복합니다. 이 어린이도 치료 4일째에 소변줄을 완전히 제거했고, 이후 잔뇨 없이 정상적으로 소변을 볼 수 있게 돼 퇴원했습니다. 대개 수일에서 수주 안에 완전히 회복됩니다.
Q3. 엉덩이에 발진이 전혀 없는데도 소변을 못 보는 배뇨 장애가 대상포진 때문일 수 있나요?
A3. 네, 그렇습니다. 이 사례에서도 환자에게 소변을 보기 힘든 배뇨 장애 증상이 먼저 나타난 뒤에 엉덩이 피부 발진과 물집이 돋아났습니다. 원인 불명의 급성 배뇨 곤란이 발생하면 엉덩이나 다리를 면밀히 관찰해 적절히 대처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