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장의 펌프 기능이 조금만 떨어져도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과 관련된 뇌 영역에 미세한 손상이 생길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심장 기능 저하가 임상적으로 뚜렷한 심부전으로 진행되기 전부터 뇌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심혈관 건강 관리가 치매 예방의 새로운 접근법이 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지뇌과학연구소 연구팀은 경미한 심장 기능 저하로도 알츠하이머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뇌 영역에서의 미세구조 손상을 예측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 심혈관 건강과 뇌 건강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관상동맥질환과 심부전, 심방세동은 인지기능 저하 및 치매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혈압과 고콜레스테롤혈증, 비만, 제2형 당뇨병 등은 치매의 수정 가능한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연구를 이끈 지아 장 연구원은 “심장 건강은 관리와 치료를 통해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며 “심장 기능은 이미 일상적인 진료 과정에서 측정하는 만큼, 심장 기능 이상과 뇌 변화의 관계를 더 정확히 이해하면 인지기능 저하 위험이 높은 사람들 조기에 찾아 예방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심부전 이전 단계부터 뇌 변화 나타나
연구진은 라이프치히 심장연구(Leipzig Heart Study) 참가자 73명을 평균 3.5년간 추적 관찰했다. 참가자의 평균 연령은 54.8세였으며, 심부전 진단을 받은 환자와 진단은 받지 않았지만 관상동맥질환이 의심되는 환자가 포함됐다.
연구진은 연구 시작 시점에 좌심실 박출률(LVEF)과 NT-proBNP 등 심장 기능을 평가하는 지표를 측정했다. 좌심실 박출률은 심장이 한 번 수축할 때 혈액을 얼마나 내보내는지를 나타내는 심장 펌프 기능 지표이며, NT-proBNP는 심장에 부담이 커질수록 혈액에서 증가하는 심부전 관련 생체지표다.
연구진은 약 3.5년 뒤 확산강조 자기공명영상(DWI)으로 회백질의 미세구조를 분석하고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 검사를 실시다. 회백질의 미세구조는 평균확산도(mean diffusivity)로 평가했는데, 이 수치가 높을수록 뇌 조직의 미세구조 손상이 심한 것으로 해석한다.
심장 기능 저하, 알츠하이머병 취약 뇌 영역 손상과 연관
분석 결과, 심부전으로 진단되지 않은 참가자에서도 초기 좌심실 박출률이 낮을수록 추후 회백질의 평균확산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대상회(cingulate gyrus)와 설회(lingual gyrus) 등 알츠하이머병에서 취약한 것으로 알려진 뇌 영역에서 확인됐다.
반면 NT-proBNP 수치가 높을수록 광범위한 뇌 미세구조 손상이 나타난 것은 이미 심부전이 진단된 환자군에서만 관찰됐다. 이는 심장의 펌프 기능 저하는 심부전으로 진단되기 이전 단계에서도 뇌 변화와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심장 부담을 반영하는 NT-proBNP 상승은 보다 진행된 심장 기능 이상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심장 기능 저하가 기억력 감소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뇌의 미세구조 변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확인했다. 심장 기능이 나빠질수록 알츠하이머병에 취약한 뇌 영역의 미세구조가 손상됐고, 이러한 변화가 이후 기억력 저하와 연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 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뇌가 우리가 임상적으로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심장 기능 저하의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심부전 진단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환자에서도 심장의 펌프 기능이 미세하게 감소하면 수년 뒤 기억과 관련된 뇌 영역의 구조적 변화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심장 기능 저하가 곧 치매 발병 의미하는 건 아냐...추가 검증 필요
다만 연구진은 이번 결과만으로 심장 기능 저하가 곧 알츠하이머병 발병으로 이어진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연구에서는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 등 알츠하이머병의 대표적인 생체지표를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찰된 뇌 변화가 알츠하이머병 병리와 직접 관련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회백질 평균확산도가 향후 인지 기능 저하를 조기에 포착하는 민감한 영상지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기존 영상검사에서 뇌 위축이 나타나기 전 단계의 미세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아직 임상에서 사용할 표준 진단지표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앞으로 더 큰 규모의 장기 추적 연구를 통해 심장 기능과 뇌 미세구조, 인지 기능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아밀로이드와 타우 등 알츠하이머병 생체지표를 함께 분석해 심장 기능 저하와 치매 병리의 관계를 규명할 계획이다. 또한 심장 기능 이상을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이 실제로 뇌 미세구조 손상과 인지기능 저하를 줄일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중재 연구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신경과학저널(Journal of Neuroscience)》에 ‘Mapping the Heart–Brain Continuum beyond Heart Failure: Why Neurology Matters’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심장 건강 지키는 8가지 생활수칙
이번 연구는 심장 건강 관리가 심혈관질환 예방을 넘어 장기적인 뇌 건강과 인지 기능 유지에도 중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심장협회(AHA)는 심혈관 건강을 개선하고 유지하기 위한 핵심 기준으로 ‘라이프 에션셀 8(Life’s Essential 8)’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건강한 식습관과 규칙적인 신체활동, 금연, 충분한 수면 등 4가지 생활습관과 적정 체중 유지, 콜레스테롤·혈당·혈압 관리 등 4가지 건강지표가 포함된다.
평소 채소와 과일, 통곡물, 견과류, 생선 등으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꾸준히 운동하는 한편, 담배와 전자담배를 피하고 충분히 자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혈압과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를 확인하고 적정 체중을 유지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자주 묻는 질문]
Q1. 심부전 진단을 받지 않았는데도 뇌 건강에 영향을 받을 수 있나요?
A. 이번 연구에서는 심부전 진단을 받지 않은 사람에서도 심장의 펌프 기능이 다소 떨어질 경우 수년 뒤 기억과 관련된 뇌 영역의 미세구조 손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심장 기능 저하가 곧 치매나 알츠하이머병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Q2. 연구에서 사용한 좌심실 박출률(LVEF)과 NT-proBNP는 무엇인가요?
A. 좌심실 박출률은 심장이 한 번 수축할 때 혈액을 얼마나 내보내는지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심장 기능 지표다. NT-proBNP는 심장에 부담이 커질수록 혈액에서 증가하는 단백질로, 심부전 여부와 중증도를 평가할 때 활용되는 생체지표다.
Q3. 심장 건강을 관리하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나요?
A. 아직 이번 연구만으로 심장 기능을 개선하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연구진은 심장 기능 저하를 조기에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이 뇌의 미세구조 손상과 인지기능 저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기 위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