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환자, 살릴 수 있을까. 수술실로 바로 보내야 할까, 중환자실이 먼저일까."
온몸에 피를 흘리는 환자가 실려 오면 의료진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복잡해진다.
한국 연구진이 이런 판단에 참고할 수 있는 예측 모델을 20만 명이 넘는 환자 기록을 분석해 만들어냈다.
고려대 안암병원 중환자외상외과 이재명 교수와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중환자외과 백승민 교수 공동 연구팀은 인공지능 기계학습 기술을 활용해 외상환자의 조기 사망 위험을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했다고 7일 밝혔다. 다만 이 모델은 병원에 설치해 바로 쓰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환자 정보를 입력하면 사망 위험도를 수치로 계산해내는 예측 알고리즘에 가깝다.
교통사고나 추락 같은 외상은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사망 원인이고, 특히 젊은 층에서 두드러진다.
이런 경우 환자 상태가 짧은 시간 안에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 위험한 환자를 초기에 정확히 가려내야 의료진이 빠르게 처치하고, 중환자실·수술실·수혈 같은 자원을 적절히 배분할 수 있다.
하지만 사고 상황, 다친 부위와 정도, 나이와 몸 상태, 사고 현장에서 병원까지 받은 응급처치, 병원 도착 후 치료 과정까지 워낙 다양한 요인이 뒤섞여 있어, 이 판단이 말처럼 쉽지 않다.
기존 연구들은 대개 한두 병원의 적은 자료만 들여다본 경우가 많아, 다른 병원이나 다른 시기에도 똑같이 잘 맞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인공지능이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예측했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20만7012명의 기록으로 만든 예측 모델
연구팀은 질병관리청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모은 전국 단위 중증외상 자료 23만7616건 가운데, 빠지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를 뺀 20만7012건을 분석했다. 이 중 2016~2018년 자료로 예측 모델을 만들고, 2019~2020년 자료로 실제 성능을 확인하는 방식을 썼다. 이미 알고 있는 자료가 아니라, 아직 보지 못한 새로운 환자에게도 이 예측 모델이 통하는지를 검증한 것이다.
연구팀은 로지스틱회귀(Logistic Regression), k-최근접이웃(k-NN), 의사결정나무(Decision Tree), 랜덤포레스트(Random Forest), 다층퍼셉트론(MLP), XGB 등 6가지 방식의 기계학습 기법을 나란히 돌려 성능을 비교했다.
그중 XGB 모델이 가장 성능이 좋았다. 위험한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얼마나 잘 가려내는지 보여주는 두 가지 평가 지표에서 각각 0.985, 0.957을 기록했다. 1에 가까울수록 정확하다는 뜻인데, 0.98을 웃도는 점수는 이 분야에서 매우 높은 축에 속한다. 두 번째로 우수했던 랜덤포레스트 모델도 0.984, 0.956으로 비슷한 수준의 성능을 보였다.
응급의료체계 전반이 흔들렸던 2020년 코로나19 유행기 자료에서도 XGB 모델은 평상시와 사실상 같은 0.984를 기록했다. 병원 밖 상황이 아무리 어수선해도 이 예측 모델만큼은 흔들리지 않고 제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무엇을 근거로 위험을 짚어냈나
연구팀은 이 예측 모델이 무엇을 근거로 위험을 판단했는지도 들여다봤다. SHAP이라는 분석 기법을 활용해, 인공지능이 최종 판단을 내릴 때 각 정보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하나하나 되짚어본 것이다.
그 결과 병원 도착 전 심정지 여부, 손상중증도점수, 나이, 첫 수혈까지 걸린 시간 등이 사망 위험을 가르는 핵심 요인으로 나타났다. 공교롭게도 이 요인들은 응급실 의료진이 환자를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정보들과 겹친다.
결과만 던져주는 게 아니라 "왜 위험하다고 봤는지"까지 알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판단 근거를 알아야 의료진도 그 결과를 믿고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전국 단위의 공공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예측의 정확도뿐만 아니라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설명할 수 있는지(해석가능성), 다른 병원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확장성), 시간이 지나거나 상황이 달라져도 성능을 유지하는지(일반화 가능성)까지 함께 살펴봤다. 그런 만큼 특정 병원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라 여러 현장에 두루 쓰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이번 결과는 과거 기록을 분석해 검증한 단계로, 실제 병원 현장에 적용하려면 추가 검증이 더 필요하다.

이재명 교수는 “향후 응급의료체계와 외상진료 현장에서 환자 위험도를 빠르게 선별하는 데 활용될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백승민 교수는 “전국 외상 등록자료를 활용해 조기 사망 위험을 체계 수준에서 선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향후 보정과 전향적 검증을 거쳐 응급의료체계와 외상시스템에 AI 기반 위험 선별을 통합하는 연구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응급실에서는 몇 초의 판단이 생사를 가른다. 지금 당장 모든 병원에 도입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예측 모델이 검증을 거듭해 하나씩 현장에 쌓일 때마다 "그때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이라는 탄식이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이번 연구는 응급·외상외과 분야 국제학술지 《World Journal of Emergency Surgery》에 실렸다. 이 학술지는 외과·응급의학 분야에서 상위 약 2.6%(평균 JIF 백분위 97.4)에 해당하는 Q1 학술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