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는 환자 곁에서만 일하지 않는다. 투약하고, 주사 놓고, 활력 징후(vital sign)를 확인하고, 환자와 보호자를 응대한다. 그 뒤엔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무엇을 했는지, 언제 했는지, 환자 반응은 어땠는지 의무기록에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차팅'(charting)이다. 환자 안전을 위해 빠뜨릴 수 없는 일이지만, 간호사에겐 큰 부담이다. 신규 간호사라면 더하다. 전문용어, 병원별 서식, 빠른 입력 속도, 기록 오류에 대한 압박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현장에서 "환자 보는 시간보다 기록하는 시간이 더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동아대병원이 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공지능(AI) 기반 의무기록 시스템을 도입했다. 병원은 6일 "부울경 최초로 AI 의무기록 시스템을 본격 가동한다"고 했다. 이제부턴 간호사가 음성으로 말하면 간호 처치 기록과 각종 서식이 자동으로 작성된다는 점이다.
말하면 기록되는 간호기록…무엇이 달라지나
간호사가 병상 옆에서 처치 내용을 음성으로 입력하면, AI가 의무기록에 맞는 형태로 정리한다. 처치를 마친 뒤 컴퓨터 앞에 앉아 다시 내용을 입력하던 과정이 줄어드는 셈이다.

간호 처치 기록뿐 아니라 병원 내 각종 서식 작성도 자동화한다. 전자의무기록(EMR)과 직접 연동하지 않고도 의료 정보를 이해해 필요한 내용을 기록·입력하는 AI 기능을 갖췄다.
의무기록은 단순한 메모가 아니다. 환자에게 어떤 처치를 했는지, 의료진이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이후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남기는 공식 기록이다. 환자 안전은 물론 의료진 간 인수인계, 보험 청구, 의료분쟁 대응까지 모두 이 기록에 달려 있다. 정확해야 하고, 바로 그 정확성 때문에 현장 간호사에겐 부담이 크다.
AI 의무기록은 이 병목을 줄이려는 시도다. 의료진이 말한 내용을 단순히 받아쓰는 수준이 아니라, 의료 현장의 용어와 문맥을 파악해 기록 초안을 만들고 서식에 맞춰 정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태움'도 줄어들까?...AI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관심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간호기록 부담이 줄면, 간호사들이 호소해온 '태움'도 줄어들 수 있을까.
답은 조심스럽다. AI가 태움을 직접 없애지는 못한다. 태움은 기록 업무가 많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인력 부족, 높은 업무 강도, 신규 간호사 교육 방식, 위계적 조직문화, 야간·교대근무 피로가 겹친 구조적 문제다. AI 시스템 하나로 풀린다고 말하면 과장이다.
다만, 기록 부담은 태움을 키우는 환경 요인 가운데 하나다. 신규 간호사는 환자 처치와 기록 방식을 동시에 익혀야 한다. 기록이 늦거나 틀리면 선배의 지적이 이어지고, 퇴근 뒤에도 차팅을 마무리해야 하는 날이 생긴다. 이 과정에서 업무 스트레스와 관계 갈등이 커진다.
AI 의무기록의 의미는 "태움을 없앤다"가 아니라 "태움이 생기기 쉬운 업무 압박 일부를 덜 수 있다"에 가깝다. 기록 시간이 줄고, 서식 작성 오류가 줄고, 신규 간호사의 적응 기간이 짧아진다면 현장 분위기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AI가 쓴 기록, 그대로 믿어도 될까
한계도 분명하다. 음성 인식은 의료 현장의 소음, 말투, 약어, 전문용어에 영향을 받는다. 비슷하게 들리는 약물명이나 처치명을 잘못 인식하면 환자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환자와 보호자의 민감한 정보가 음성으로 처리되는 만큼 개인정보 보호와 접근 권한 관리도 빠뜨릴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최종 확인이다. 기록을 만드는 건 AI지만, 확인하고 확정하는 책임은 의료진과 병원 시스템에 있다.
동아대병원은 "AI 기반 의무기록 시스템은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진료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높여 환자 중심 의료서비스를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번 시스템을 시작으로 회진 기록, 간호기록, 병원 내 다양한 서식을 자동 생성하는 AI 기능을 확대할 계획"이라 했다.
이에 부울경 의료계의 AI 경쟁도 새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그동안 AI 의료는 영상 판독, 진단 보조, 로봇수술처럼 눈에 보이는 기술 위주로 소개됐다.
그러나 병원 현장이 실제로 기다리는 AI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의료진이 반복 업무에 덜 묶이고, 환자 곁에 더 오래 머물게 하는 기술이다. 간호사가 꼭 해야 할 일에 더 집중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렇게 병동의 하루는 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