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혈액암 환자에게 조혈모세포이식은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치료법이지만, 이식 뒤 공여자의 면역세포가 환자 몸을 공격하는 합병증이 문제가 돼 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이 위험을 낮추도록 설계한 세포치료제 ‘트레그지’를 승인하면서, 혈액암 이식 치료 분야에 새로운 선택지가 마련됐다.
FDA는 오르카바이오(Orca Bio)의 동종 조절 T세포 기반 면역세포치료제 ‘트레그지’(Tregzi, 개발명 Orca-T)를 성인 혈액암 환자의 일치 공여자 조혈모세포이식에 사용할 수 있도록 1일(현지시간) 승인했다. 이번 허가는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GVHD) 없는 생존을 개선하는 것을 근거로 이뤄졌다.
이식편대숙주질환은 조혈모세포이식 후 공여자의 면역세포가 환자의 장기와 조직을 공격하면서 생기는 합병증이다. 피부, 간, 위장관, 폐 등 여러 장기를 침범할 수 있고, 만성으로 이어지면 장기적인 삶의 질 저하와 치료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트레그지는 이런 면역 반응을 조절하도록 만든 정밀 세포치료제다.
공여자 세포 재구성해 이식 합병증 낮춰
트레그지는 기존 조혈모세포이식 재료를 다시 설계한 치료제로 볼 수 있다. 일반적인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은 조직형이 맞는 건강한 공여자의 조혈모세포와 면역세포를 환자에게 주입한다. 반면 트레그지는 공여자 혈액에서 필요한 세포를 분리해 조합을 조정한다.
핵심은 조절 T세포다. 조절 T세포는 과도한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트레그지는 정제된 조절 T세포를 포함해 이식편대숙주질환 위험을 낮추고, 조혈모세포와 전구세포로 환자의 혈액·면역 체계가 다시 만들어지도록 돕는다. 여기에 일반 T세포도 함께 사용해 남아 있을 수 있는 암세포를 제거하고 감염에 대응하는 면역 회복을 돕도록 설계됐다.
허가 근거는 3상 임상시험 ‘프리시전-T(Precision-T)’다. 이 연구에는 급성골수성백혈병, 급성림프구성백혈병, 골수이형성증후군, 혼합표현형 급성백혈병 환자 187명이 참여했다. 환자들은 트레그지를 투여받는 군과 조작하지 않은 일반 동종 이식편을 투여받는 군으로 무작위 배정됐다.
1년 시점에서 트레그지 투여군의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 없는 생존율은 78%였다. 표준 이식군은 38.4%였다. 중등도 이상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 발생률은 트레그지군 12.6%, 표준 이식군 44%로 나타났다. 전체 생존율은 트레그지군 94%, 표준 이식군 83%였다.
FDA는 트레그지 투여군에서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 없는 생존율이 표준 이식군보다 유의하게 높았다고 밝혔다. 오르카바이오는 이번 결과가 이식 후 만성 합병증을 줄이면서 환자의 회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1회 치료 비용 약 6억6500만 원…공급망 확보가 관건
트레그지는 세포치료제 특성상 제조와 공급 과정이 치료 접근성의 핵심 변수다. 오르카바이오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 있는 약 10만 제곱피트 규모 제조시설에서 트레그지를 생산하고 있다. 회사는 공여자 세포 채취부터 병원 투여 가능 상태의 최종 제품 공급까지 72시간 안에 완료하는 체계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트레그지는 환자 본인의 T세포를 이용하는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와 달리, 건강한 공여자의 세포를 사용한다. 회사는 이 방식이 환자 세포 상태에 따른 제조 실패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실제 상업화 과정에서는 치료센터 확보, 공여자 세포 채취와 운송, 제조 일정 조율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오르카바이오는 우선 일부 치료센터에서 트레그지를 출시한 뒤, 올해 말까지 약 25개 센터로 공급망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추가 수요와 운송 시간 단축을 위해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에도 새 제조시설을 마련하고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트레그지의 미국 도매가격은 42만8000달러로, 약 6억6500만 원 수준이다. 오르카바이오는 트레그지가 1회 치료제로서 동종 이식 후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과 관련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가격 책정 배경으로 설명했다.
오르카바이오는 비상장 바이오기업이다. 회사는 올해 초 두 차례 투자 라운드를 통해 2억5000만 달러, 약 3885억 원을 조달했으며, 대부분을 트레그지 출시 준비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바이오 기업공개(IPO) 시장이 다시 움직이는 가운데 상장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회사 측은 당분간 트레그지의 시장 안착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