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자꾸 약속을 잊는다." "방금 한 말을 또 한다."
부모님의 기억력 변화가 눈에 띄면 가족은 치매부터 떠올린다.
중앙치매센터 발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65세 이상 한국 치매 환자는 약 98만 4600명으로, 노인 10명 중 1명꼴로 추산된다. 2039년엔 200만 명, 2050년엔 300만 명을 초과할 전망이다. 연간 치매 관리 비용도 22조6000억 원을 넘어섰다.
알츠하이머병 치료는 목표가 달라졌다. 증상을 완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항체치료가 국내에서 2024년 5월부터 임상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은 2026년 5월 기준 알츠하이머병 항체치료 200례를 달성했다고 1일 밝혔다.
다만 이 치료로 알츠하이머병이 낫는 것은 아니다. 모든 치매 환자가 쓸 수 있는 치료도 아니다. 아밀로이드 단백질 축적이 확인된 경도인지장애 또는 경증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서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게 목표다.
완치 아닌 '진행 지연', 그래도 의미 있는 이유
항체치료는 떨어진 기억력을 되돌리는 치료가 아니라, 병의 시계를 늦추는데 중점을 둔다.
국내에서 쓰이는 대표적 항아밀로이드 항체치료제인 레카네맙은 3상 임상시험에서 인지·기능 평가척도인 CDR-SB 점수를 기준으로, 위약군 대비 18개월 시점 임상적 저하를 약 27%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병을 없애주진 못해도, 혼자 병원에 다니고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길어진다면 초기 환자와 가족에게는 현실적인 의미가 있다.
다만 비용 부담이 크다. 레카네맙은 아직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연간 수천만 원의 치료비를 전액 부담해야 한다. 최근 여러 보험사가 레카네맙 치료비를 보장하는 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면서, 보장 한도도 점차 늘고 있다.

왜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처방할까
치료 대상은 제한된다. 아밀로이드가 쌓인 것이 확인된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만 적용된다.
관건은 이 조건에 맞는 환자를 어떻게 골라내고, 치료 중 나타나는 이상반응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이것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병원의 진료 체계부터 보강해야 한다.
국내 의료기관 상당수는 치매 진단과 치료를 오랫동안 신경과가 맡아 온 관행에 따라, 이 치료도 신경과 중심으로 운영한다.
서울성모병원은 다르다. 신경과와 정신건강의학과가 각각 독립적인 처방 체계를 갖췄다. 인지기능 저하로 어느 진료과를 먼저 찾든 동일한 수준의 치료와 장기 추적관찰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영상의학과·핵의학과·진단검사의학과·간호부도 함께 참여해 진단, 투약, 이상반응 관리를 나눠 맡는다.
현재 진료에는 신경과 양동원·윤보라·이혁제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이창욱·강동우·변기환 교수가 참여한다. 여러 진료과가 함께 움직이는 이유는 이 치료가 정교한 안전 관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ARIA 21%, 왜 MRI 확인이 필요할까
레카네맙은 2주마다 정맥주사로 맞는다. 가장 주의할 이상반응은 뇌부종이나 미세출혈 형태로 나타나는 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ARIA)이다. 전체 투약 환자의 약 21%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된다. 해외 처방정보 기준으로 실제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는 3%, 입원이 필요할 정도로 중대한 경우는 0.7%다.
대부분은 별다른 증상 없이 정기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만 확인되고, 이때 투약을 조절하며 관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드물게 심각한 사례로 이어지기도 해 치료 전 위험도 평가가 필요하며, MRI 판독과 신경과 진료, 이상반응 대응 체계를 갖춘 의료기관에서 신중하게 시행해야 한다.
200례가 남긴 것
임상 진료와 함께 연구 성과도 이어지고 있다. 신경과 연구팀은 알츠하이머 신약 치료를 앞둔 환자와 보호자의 인식 구조를 분석했다. 맞춤형 소통 지표를 제시한 이 연구로 국제·국내 학회에서 2년 연속 수상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연구팀은 아밀로이드·타우 단백질 바이오마커, APOE 유전 요인, 치매 진행 예측 모델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신경과 양동원 교수는 "치매 전문 의료진이 정기적으로 검토하며 항체치료 대상 환자를 매우 신중하게 결정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국내 환자에서는 심각한 부작용 발생이 드물었다"며, "초기 아밀로이드 단백질 축적량이 적은 조기 환자일수록 단백질이 빠르게 제거되는 것을 확인하였고, 일부 환자에서는 9개월 치료 후 아밀로이드가 완전히 제거된 것도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정신건강의학과 강동우 교수는 "항아밀로이드 면역치료제의 도입은 알츠하이머병 진료를 증상 중심 치료에서 질병의 근본 병리를 표적하는 치료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변화"라고 말했다. 이어 "200례 달성은 새로운 면역치료제를 실제 임상 현장에 안전하고 체계적으로 적용하면서 축적한 경험의 결과인 만큼, 앞으로도 정밀진단 기술과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치료 전략을 제공하는 정밀의학 실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200례라는 숫자에는 그만큼의 판단이 쌓여 있다. 어떤 환자를 치료 대상으로 볼지, 이상반응이 나타나면 어떻게 대응할지를 하나하나 확인해 온 시간이다.
기억력이 떨어졌다고 모두 항체치료 대상은 아니다. 원인이 알츠하이머병인지, 병기가 치료 가능한 초기 단계인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실제로 쌓였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조금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 진료실을 찾는 것, 그것이 치료 기회를 놓치지 않는 첫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