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 면역 기능이 정상인 건강한 사람에게도 별다른 증상 없이 눈에만 결핵균이 침투해 급성 시력 상실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례 연구 결과가 나왔다.
말레이시아 국립대 안과 연구팀은 전신 결핵 증상이 전혀 없던 23세 남성 교도소 수감자에게서 발생한 ‘안결핵성 시신경염’ 사례를 학계에 보고했다. 연구팀에 의하면 이 환자는 나흘 전부터 왼쪽 눈의 시력이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침, 객혈, 발열, 체중 감소 등 결핵 증상은 전혀 없었고 안구를 다치거나 수술한 적도 없었다. 후천성면역결핍증(HIV) 검사에서는 음성이 나왔고, 면역력에 전혀 이상이 없었다.
병원을 찾은 당시 환자의 왼쪽 눈 시력은 겨우 눈앞의 손움직임을 알아차릴 정도의 심각한 상태였다. 검사 결과, 왼쪽 눈의 시신경 유두가 심하게 충혈된 것으로 나타났다. 코 쪽 경계가 흐릿하고 확장되고 구불구불해진 망막 혈관과 중심성 암점도 확인됐다. 중심성 암점은 정상적인 시야의 한가운데에 검은 반점이 있거나, 중심부가 흐려져 사물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야 결손 현상이다. 흉부 X선(엑스레이) 촬영 결과는 정상이었지만, 적혈구 침강 속도가 크게 높아져 있었고 만투스 피부 반응 검사와 결핵 퀀티페론 검사에서 모두 양성이 나왔다.
뇌척수액 전기영동 검사에서는 올리고클로날 밴드가 확인돼 전신성 감염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올리고클로날 밴드는 환자의 혈청이나 뇌척수액(CSF)에서 관찰되는 면역글로불린(IgG) 밴드다. 중추신경계 내에서 특정 항체가 생성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도 왼쪽 시신경 부위가 비대하고 조영제 투여 후 강화 현상이 나타나 시신경염으로 의심됐다.
연구팀은 환자가 밀집 환경에서 지내고 있고 결핵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것을 근거로 안결핵성 시신경염이라는 최종 진단을 내렸다. 이후 감염내과와 협진해 표준 폐외 결핵 치료법인 ‘2EHRZ/4HR’ 요법(초기 2개월간 에탐부톨, 이소니아지드, 리팜피신, 피라지나미드 병용 투여 후 4개월간 이소니아지드, 리팜피신 유지)과 피리독신 처방을 시작했다.
치료 1개월 후 환자의 왼쪽 눈 시력은 정상(1.0)을 되찾았다. 색각 검사와 적색·명도 포화도 역시 정상화했고, 시신경 유두 부종과 충혈이 사라져 경계가 뚜렷해졌으며 예후가 좋았다.
이 사례 연구 결과(Isolated Unilateral Optic Neuritis Secondary to Presumed Ocular Tuberculosis in an Immunocompetent Adult)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기침 없는 ‘눈 결핵’의 공포...면역 정상인도, 갑자기 실명 위기에 부닥칠 수 있어
이 사례 속 환자는 면역력이 정상이고 결핵의 전형적인 신호인 기침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결핵균이 눈에만 침투해 단 4일 만에 실명 위기에 처했다. 이같은 ‘안결핵’ 사례는 임상에서 치명적인 복병으로 꼽힌다.
안결핵은 결핵균이 폐가 아닌 눈의 조직에 침투해 염증을 일으키는 병이다. 결핵균이 눈으로 들어오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직접적인 혈행성 전파다. 폐에 있던 결핵균이 혈액을 타고 눈의 안구 후방이나 시신경막으로 이동해 직접 시신경을 파괴하고 압박한다. 둘째, 간접적인 항원 반응이다. 몸속 어딘가에 숨어 있던 결핵균에 대해 눈 조직이 과민성 알레르기 면역 반응을 일으켜 시신경에 손상을 입힌다.
전체 결핵 환자 중 안결핵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1~2%다. 하지만 눈 조직의 특성상 검체 채취(생검)가 불가능해 진단이 매우 까다롭다. 안결핵은 치명적인 시력 장애를 남기므로 매우 위험한 병이다. 특히 안결핵 환자의 약 80%는 기침, 가래, 객혈 등 전신 증상이 전혀 없고 흉부 엑스레이도 정상으로 나오기 때문에 초기에 놓치기 쉽다.
결핵균은 공기를 통해 퍼진다. 교도소, 요양병원, 요양원, 기숙사, 군대 등 좁은 공간에 여러 사람이 모여 생활하는 사람은 결핵에 상대적으로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들 밀집 시설 생활자는 한 명만 감염돼도 많은 사람에게 퍼질 위험(교차감염 위험)이 매우 높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면역 기능이 뚝 떨어져 있는 사람은 결핵균의 집중 표적이 될 수 있다. 항암 치료를 받는 암 환자나 면역억제제 복용자, 당뇨병 및 만성신부전 환자, 심한 다이어트로 영양 균형이 깨진 사람 등은 잠복 중이었던 결핵균이 다시 활동하기에 좋은 대상이다. 건강한 사람은 결핵균이 눈이나 폐 등 일부 부위에만 머문다. 반면 취약계층은 방어벽이 무너지며 결핵균이 혈액을 타고 뇌까지 침투해 ‘결핵성 뇌수막염’ 등 치명적인 전신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안결핵성 시신경염은 초기 진단이 늦어지면 영구적인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반적인 시신경염 환자는 고용량 스테로이드(코르티코스테로이드) 투여로 치료한다. 하지만 결핵성 시신경염 환자가 항결핵제 투여 없이 스테로이드만 투여하면, 체내 면역이 억제돼 결핵균이 온몸에 퍼지고 시력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
따라서 별다른 통증이 없더라도 급격한 시력 저하나 시야 중심부가 까맣게 변하는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안과를 찾아야 한다. 결핵 약 중 ‘에탐부톨’ 성분은 드물게 약물 유발성 시신경독성을 일으킬 수 있지만, 철저한 모니터링과 함께 정해진 용법을 지키면 추가 독성 없이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다.
갑자기 시력에 이상이 생기면 숨은 감염병의 첫 번째 경고 신호일 수 있다. 최근 시력이 뚝 떨어진 것 같으면 서둘러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만투스 피부 검사나 결핵 퀀티페론 검사 등 정밀 진단을 받아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1. 폐결핵 증상이 전혀 없고 엑스레이도 정상인데 어떻게 눈 결핵에 걸릴 수 있나요?
A1. 결핵균은 반드시 폐에만 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혈액을 타고 이동하다가 호흡기 증상 없이 오직 눈에만 침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안결핵 환자의 대다수는 기침을 전혀 하지 않고 흉부 X선 검사에서도 정상으로 나옵니다. 눈의 이상한 증상 자체를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Q2. 눈이 아프지 않고 충혈도 없는데 시신경염일 수 있나요?
A2. 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이 눈 질환은 통증이나 충혈을 동반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사례의 환자처럼 ‘통증 없는 급격한 시력 저하’와 ‘시야 중심부에 어두운 그림자가 가려지는 증상(중심성 암점)’만으로 나타나는 시신경염이 많습니다. 아프지 않다고 해서 방치하면 시신경이 영구 손상될 수 있습니다.
Q3. 결핵에 감염될 위험이 높은 사람은 눈 건강을 위해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하는가요?
A3. 교도소, 요양원, 군대 등 밀집 시설에서 생활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진 암 환자 등은 갑작스러운 시력 저하가 생겼을 때 단순 노안이나 피로 때문으로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의사의 정확한 진단 없이 약국에서 스테로이드 성분의 안약이나 소염제를 사서 임의로 바르거나 먹으면 안 됩니다. 결핵균을 급격히 증식시켜 실명을 부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정밀 검사 후 처방을 받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