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암 환자가 진료실에서 “암이 문맥까지 침범했다”는 설명을 들으면 막막해진다. 병이 더 진행됐고, 치료는 한층 어려워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문맥은 장에서 흡수된 영양분이 담긴 혈액을 간으로 보내는 큰 혈관이다. 간문맥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문맥 침범이 있다고 해서 모든 환자의 치료 선택지가 똑같이 좁아지는 것은 아니다. 암이 문맥 안에서 어디까지 번졌는지, 간 기능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에 따라 치료 전략을 다시 따져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윤준 교수팀은 문맥종양혈전을 동반한 간세포암 환자에서 방사선색전술과 면역항암 병합요법의 치료 성적을 비교한 연구 결과를 24일 발표했다.
문맥종양혈전은 간암 세포가 이 혈관 안으로 파고들어 덩어리처럼 자라는 상태를 말한다. 이 경우 간으로 가는 혈류가 막히거나 줄어들 수 있고, 간 기능도 나빠지기 쉽다. 문맥종양혈전을 동반한 간암은 치료가 까다롭고 예후도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약물치료만이 답인지 따져본 연구
간암 치료는 병의 범위와 간 기능에 따라 달라진다. 암이 작고 간 기능이 좋으면 수술이나 간이식, 고주파열치료처럼 암을 직접 제거하거나 태우는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암이 큰 혈관을 침범하면 치료가 훨씬 복잡해진다. 수술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진행성 간암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고, 이때는 면역항암제나 표적치료제 같은 약물치료가 중요한 선택지가 된다.
이번 연구에서 비교한 면역항암 병합요법은 아테졸리주맙과 베바시주맙을 함께 쓰는 치료다. 아테졸리주맙은 면역세포가 암을 공격하도록 돕는 약이고, 베바시주맙은 종양이 새 혈관을 만들어 자라는 과정을 억제하는 약이다.
다만 암이 간 안에 주로 머물러 있고, 문맥 침범 범위가 비교적 제한된 환자라면 방사선색전술도 치료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방사선색전술은 방사성 물질을 담은 작은 입자를 간동맥을 통해 암 쪽으로 보내는 치료다. 간암은 주로 간동맥에서 혈액을 공급받기 때문에, 이 길을 따라 방사성 입자를 넣으면 암 부위에 방사선을 집중시킬 수 있다. 몸 밖에서 방사선을 쬐는 치료와 달리, 혈관 안으로 들어가 암 가까이에서 방사선이 작용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이 두 치료법 가운데 어떤 환자에게 어떤 치료가 더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살폈다.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서울대병원, 국립암센터,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받은 문맥종양혈전 동반 간세포암 환자 213명이 분석 대상이었다.
환자들은 방사선색전술을 받은 군과 아테졸리주맙-베바시주맙 병합요법을 받은 군으로 나뉘었다. 연구팀은 전체 생존기간, 암 진행 없이 지낸 기간, 종양 반응률, 안전성을 비교했다. 환자마다 병의 정도와 간 기능 상태가 다를 수 있어, 이런 차이를 줄이기 위한 통계 보정도 함께 적용했다.
큰 줄기까지 번지기 전이면 차이 뚜렷
분석 결과 전체 생존기간 중앙값은 방사선색전술군이 27.5개월이었다. 아테졸리주맙-베바시주맙군은 8.6개월이었다. 중앙값은 환자들을 생존기간 순서대로 세웠을 때 한가운데에 해당하는 값이다. 일부 환자가 매우 오래 살거나 매우 짧게 생존한 경우의 영향을 줄여 치료 성적을 볼 때 쓰인다.
차이는 모든 환자에게 똑같이 나타나지 않았다. 방사선색전술의 이점은 암이 문맥의 가장 큰 줄기까지 번지기 전 단계에서 더 뚜렷했다. 문맥 침범이 작은 가지나 한쪽 간엽 수준에 머문 환자군에서는 방사선색전술군의 사망 위험도가 아테졸리주맙-베바시주맙군의 약 36% 수준으로 나타났다. 간암이 문맥을 침범했더라도, 아직 큰 줄기 혈관 전체로 번지기 전이라면 방사선색전술을 검토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암이 주 문맥까지 침범한 환자군에서는 두 치료법 사이에 통계적으로 뚜렷한 차이가 나오지 않았다. 암 진행 없이 지낸 기간과 종양 반응률에서도 두 군 간 의미 있는 차이는 없었다.
이번 결과를 “방사선색전술이 면역항암 병합요법보다 항상 낫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
복수·정맥류 출혈은 낮은 경향
안전성에서도 참고할 만한 결과가 나왔다.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의 복수 발생률은 방사선색전술군 12.0%, 아테졸리주맙-베바시주맙군 20.5%였다. 정맥류 출혈은 각각 1.7%, 8.0%였다.
다만 간 기능 상태와 예후를 평가하는 차일드-퓨 점수 악화에서는 두 군 간 차이가 뚜렷하지 않았다. 차일드-퓨 점수는 간경변이나 간암 환자에서 간 기능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평가할 때 쓰는 지표다.
이번 연구는 새 환자를 모집해 치료법을 무작위로 나눈 임상시험은 아니다. 이미 치료받은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되짚어 두 치료법의 결과를 비교한 연구다. 연구팀이 환자 상태 차이를 줄이기 위해 통계적 보정을 했지만, 치료를 선택할 당시의 환자 상태가 결과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런 한계에도 이 연구가 환자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문맥까지 침범한 간암이라도 치료 선택지가 하나로 고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암이 문맥의 어디까지 번졌는지, 간 기능이 얼마나 보존돼 있는지, 이후 항암치료와 어떻게 이어갈 수 있는지에 따라 치료 순서를 다르게 짤 수 있다.
환자는 진료실에서 세 가지를 물어볼 수 있다. 내 암이 문맥의 큰 줄기까지 침범했는지, 현재 간 기능이 방사선색전술을 견딜 수 있는 상태인지, 방사선색전술 뒤 약물치료나 다른 항암치료로 이어갈 수 있는지이다.

김윤준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문맥종양혈전을 동반한 간세포암은 치료가 어렵고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환자의 간 기능과 문맥 침범 범위에 따라 방사선색전술이 유용한 치료 전략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며 “방사선색전술이 간 기능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해 이후 항암치료와 연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진행성 간암의 순차적 맞춤치료 전략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2025년 9월 24일 온라인에 먼저 공개됐으며, 2026년 1월 국제학술지 《진단·중재영상(Diagnostic and Interventional Imaging)》에 게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