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cm의 훤칠한 키. 연예인 못지않은 외모의 남성 A씨가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소위 ‘히로뽕(메스암페타민 상표 필로폰의 은어)’ 중독자였다. 불법적인 일로 쉽게 돈을 벌던 그가 다다른 쾌락의 종착지는 마약이었다.
3년이 넘는 치료는 약을 끊는 과정만이 아니었다. 삶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세우는 시간이었다. 그는 약은 물론, 불법적인 생활과도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 지금은 경기도의 한 카페에서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린다. 한때는 마약이 하루를 버티게 했지만, 이제는 갓 구운 빵 냄새와 “고맙다”는 손님들의 인사가 일상을 채운다.
#B씨는 처음부터 골치덩이 환자였다. 마약을 끊기 위해 입원해 놓고도 몰래 약을 들여왔고, 의료진의 믿음을 번번이 저버렸다. “이제는 정말 끊겠다”는 다짐은 수없이 깨졌다. 의료진은 여러 번 속았고, 여러 번 실망했다.
하지만 치료를 마치고 몇 년 뒤 B씨가 자전거를 끌고 병원을 다시 찾았다. 그는 삶의 새로운 재미를 찾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예전에는 주사바늘을 꽂으면 금세 쾌락을 얻었죠. 그런데 요즘은 동료들과 자전거를 타고 힘겹게 언덕을 오른 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더 짜릿합니다.” 그 말을 들은 주치의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 찰나의 환상이 아니라 땀 흘려 오른 정상에서 기쁨을 찾게 된 사람. 그보다 더 반갑고, 확실한 완치는 없었다.
A씨와 B씨가 평범한 일상을 되찾게 된 데는 한 병원의 오랜 노력이 있었다. 인천광역시 서구 가정동의 한 주택가 골목. 독특한 분위기를 내뿜는 병원 하나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건물 외벽의 페인트 자국은 갈라져 있고, 오래된 간판 역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인천참사랑병원. 국내에서 마약 중독 환자를 전문적으로 입원 치료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정신과 전문 병원이다. 전국 정신의료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보건복지부 의료기관 인증을 받았다. 전국 각지에서 마지막 희망을 품은 환자들이 이곳을 찾는다.

병원의 중심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천영훈 병원장이 있다. 그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마약 중독 치료 전문가다. 연간 4000건 이상의 외래 진료와 400건 가까운 입원 진료를 사실상 그가 혼자 담당하고 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믿기 어려운 규모다. 특히 입원 환자로 한정하면 한국 마약 중독 입원 환자의 90%는 천 병원장이 주치의다. 인천참사랑병원을 빼면 마약중독자를 입원 치료할 수 있는 전문 병원이 한국에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관심 없던 중독 치료와의 인연
천 병원장이 처음부터 마약 중독 치료 전문가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원광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의료계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우연처럼 중독 환자를 만났다. 원광대병원은 1990년대 당시 대학병원 중 최대 규모의 정신과 병동을 운영했다. 병상이 많으니 온갖 환자들이 몰렸다. 가장 흔한 유형은 알코올 중독자였다. 아직 이들에 대한 정확한 치료 매뉴얼도 없던 때다. 의사들조차 ‘이들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당시 전공의로 갖은 어려움을 겪었던 천 병원장은 중독 환자 치료에 학을 뗐지만, 중독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군의관 시절 그는 병무청 소속 징병 전담 의사로 전국을 돌았다. 광주, 전주, 의정부, 청주 등 전국의 병무청을 돌며 낮에는 병역 판정을 하고 밤에는 지역 정신과 병원에서 야간 당직을 섰다. 이때 직접 봤던 병원들의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천 병원장은 “당시만 해도 정신과 병원은 ‘여관업’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환자를 치료해서 사회로 돌려보내기보다 병원 안에 머물게 하는 데 더 익숙한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사람을 가둬 두는 병원이 아니라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병원을 만들 수는 없을까.’
그 꿈이 곧바로 마약 중독 치료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인천참사랑병원의 전신인 인천세브란스병원에서 전임의(펠로우) 과정을 밟으며 경험을 쌓았다. 이후 인천세브란스병원 운영이 중단되자 선배 의사가 아예 새로운 병원을 세웠고 그도 참여했다. 그것이 2003년 문을 연 인천참사랑병원이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2007년 마약 중독자의 에이즈·C형 간염 감염 요인을 조사하는 연구에 참여하면서였다. 중독자들을 만나보니 아무런 강의나 교육, 진료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연구가 끝난 뒤에도 그는 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여러 교도소를 드나들며 수감 중인 환자들을 만났다. 중독을 어떻게 대할지,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가르쳤다. 단순히 약을 끊는 법이 아니라 삶을 다시 살아가는 방법을 함께 고민했다.
대학 교수를 꿈꾸던 젊은 의사는 그렇게 조금씩 마약 중독 치료 전문가가 됐다. 이후 2013년, 몸담고 있던 인천참사랑병원을 완전 인수했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누구도 선뜻 맡으려 하지 않았던 분야를 그는 자신의 평생 과업으로 선택했다.
마약 중독 치료는 병원을 나서면서 시작된다
의료계에서 인천참사랑병원의 의미는 단순히 많은 마약 중독 치료 환자를 보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마약 중독 치료는 어쩌면 병원 밖의 환경이 더 중요하다. 어떤 치료를 받더라도, 병원 밖에서 단 한 순간의 방심으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천 병원장은 “병원과 지역사회가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치료는 소용이 없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인천참사랑병원은 인천의 지역사회와 긴밀한 관계에 있다. 인천서부보호관찰소와 인천정신보건센터는 협력병원으로 인연을 맺었고, 인천지방법원의 치료위탁기관으로 지정됐다. 인천지방검찰청, 인천광역시교육청은 청소년 마약류 중독 예방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이밖에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관과 협력하고 있다. 인천뿐만이 아니다. 마약 관련 사건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서울시 강남구 중독관리센터 역시 중독 회복 지원을 위해 올해 인천참사랑병원과 협약을 맺었다.

병원 신관에는 지역 노인들을 돌보는 햇살데이케어센터와 청소년 교육을 담당하는 킬리안 정서행동연구소가 들어섰다. 신관 2층은 아예 전체가 지역 사업을 주관하는 부서들에 할당되어 있다.
천 병원장은 병원에서 환자들을 볼 때마다 A씨와 B씨를 생각한다.
“병원 밖을 나서는 순간 마약 중독 치료의 ‘진검승부’가 시작돼요. 치료 뒤에도 환자들이 약에 접근하지 않게끔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죠. 환자에게 ‘치료는 끝났고, 이제 집에서 절대로 마약하시면 안 돼요’라고 말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병원과 일상 복귀 사이에 이들을 돌보는 시스템이 필요한 거죠.”
현재 보건복지부는 ‘급성기 정신질환자 지속치료 지원 사업’을 시범 진행 중이다. 덕분에 인천참사랑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담당 사회복지사가 배정된다. 퇴원 후 6개월까지는 정기적인 전화나 가정 방문이 이뤄진다. 병원 차원에서도 부설 기관이나 협력 지자체 센터들에 환자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마약 치료를 위해”
2021년 인천시는 24시간 대응이 가능한 정신건강 응급실 운영을 시작했다. 인천참사랑병원 역시 다른 병원 세 곳과 함께 운영 주체로 선정됐다.
중독 물질에 취해 자신이나 타인에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큰 환자는 ‘응급 환자’로 분류된다. 특히 필로폰은 급성 중독 상태에 이르면 환청과 환시, 망상 현상이 극심해진다.
문제는 이들을 받아줄 병원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상급종합병원이나 정신과 전문 병원들도 수용하기 어렵다. 전문적인 대응 체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년 전에는 필로폰을 투약한 뒤 극심한 환각 증상을 보이던 환자가 수용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 유치장 안에서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인천참사랑병원 응급실은 이들 응급 환자를 수용해 즉각적인 치료와 입원 연계를 진행한다. 다만 급성 중독 증상이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할 때는 해독 치료와 안정을 위한 처치가 먼저 이뤄진다.

이런 역할 때문에 의료계에선 인천참사랑병원을 흔히 ‘4차 병원’이라고 부른다. 1차 의료기관(동네 의원이나 보건소 등)·2차 의료기관(종합병원 등)·3차 의료기관(상급종합병원, 대학병원)으로 이어지는 기존 의료 체계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들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병원급 정신건강의학과도 수용하지 못하는 환자들이 정말 마지막 희망을 붙잡기 위해 찾는 곳이 인천참사랑병원이다.
딜레마도 있다. 정신건강의학과가 원체 손이 많이 가지만 마약 중독 치료는 그 중에서도 ‘끝판왕’이다. 환자들이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치료와 관리가 이어진다. 하지만 이 모든 의료 행위에 건강보험 수가를 온전히 인정받을 수 없다. 수가에 상한선이 있어 실제 투입되는 노력과 비용을 충분히 보상받기 어렵다. 결국 막대한 인력과 의료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구조지만, 병원으로선 감당해야 할 부담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병원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많은 중독 치료 환자를 한꺼번에 다른 시설로 옮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건물 노후화로 스프링클러 관련 대규모 시설 공사가 필요했지만 다행히 병원 운영을 중단하지 않는 선에서 공사를 마무리하며 한시름 덜었다. 그럼에도 노후한 병원 시설을 어떻게 개선할지는 여전히 천 병원장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높은 인건비에 시설 투자까지 고려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요. 병원이 지속가능해야 환자들의 치료도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이제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결국 그 모든 고민도 환자들을 위한 일이니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는 길, A씨와 B씨가 떠올랐다. 빵을 굽는 청년과 자전거를 타는 중년. 누군가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고, 누군가는 평범한 일상을 되찾았다.
천 병원장이 20년 가까이 마약 중독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다. 그는 마약 중독자를 ‘망가진 사람’이 아니라,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믿고 있다. 인천의 오래된 골목길에 자리한 병원은 오늘도 그런 사람들의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