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로 글로벌 항암제 시장을 이끌어온 MSD가 인공지능(AI) 기반 단백질 설계 기술에 투자했다. 신약 후보를 더 빠르고 정교하게 찾기 위해 AI가 학습할 실험 데이터를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MSD는 AI 신약설계 기업 프로틸리온 바이오사이언스(Protillion Biosciences)와 최대 5억1000만 달러, 우리 돈 약 7700억 원 규모의 공동연구·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프로틸리온은 비공개 선급금을 받고, 향후 연구·개발·상업화 성과에 따라 단계별 기술료를 받을 수 있다.
이번 계약의 핵심은 프로틸리온의 단백질 설계 플랫폼 ‘Prot-MaP’이다. 이 플랫폼은 단백질 설계 AI가 학습할 수 있는 대규모 실험 데이터를 만들고, 다양한 단백질 후보군의 특성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기술이다.
MSD는 이 플랫폼에 자사의 신약 발굴 역량을 결합해 여러 치료제 후보를 찾겠다는 계획이다.
AI 신약개발, 관건은 ‘좋은 데이터’
AI를 신약개발에 활용하려면 계산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AI가 제대로 배우려면 질 좋은 실험 데이터가 필요하다.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한쪽으로 치우치면 AI가 실제 개발 가능성이 낮은 후보를 그럴듯하게 예측할 수 있다.
프로틸리온의 Prot-MaP은 이런 문제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플랫폼이다. 단백질 설계 AI에 필요한 학습 데이터를 만들고, 수많은 단백질 후보가 어떤 특성을 갖는지 비교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단백질 설계는 항체치료제, 이중항체, 항체약물접합체(ADC) 같은 바이오의약품 개발에서 중요하다. 치료제가 질병 관련 표적에 얼마나 정확히 결합하는지, 몸 안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 불필요한 결합을 얼마나 줄이는지가 개발 성공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프로틸리온은 이 기술이 기존 방식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정교한 바이오의약품 후보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특정 산도 조건에서 결합 특성이 달라지는 항체나 여러 표적을 동시에 겨냥하는 단백질 후보를 분석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다만 이번 계약에서 구체적인 질환 표적이나 후보물질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
바이오의약품 후보 확보 경쟁 본격화
글로벌 제약사가 AI와 데이터 기반 신약 발굴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항암제 파이프라인를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있다.
해외 시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암 환자가 많은 한국에서도 기존 치료의 한계를 보완할 정밀한 치료제 수요가 계속 커지고 있다. 2023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가장 많이 발생한 암은 갑상선암이었고 폐암·대장암·유방암·위암·전립선암·간암이 뒤를 이었다. 환자군이 넓고 암종별 치료 전략이 세분화되면서 표적치료제와 바이오의약품의 개발 필요성도 더 커지고 있다.
MSD는 키트루다를 통해 면역항암제 시장에서 강한 입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제약사들은 기존 주력 제품 이후를 준비하기 위해 새로운 신약 후보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AI 기반 단백질 설계 플랫폼은 더 많은 후보를 빠르게 검토하고, 개발 가능성이 높은 물질을 선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이에 MSD는 최근에도 AI와 데이터, 항체 발굴 관련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구글 클라우드와 10억 달러, 약 1조5000억 원 규모의 협력을 맺었다. 쿼션트(Quotient Therapeutics)와는 최대 22억 달러, 약 3조 원 규모의 염증성 장질환 신약 발굴 계약을 체결했고, 인피니뮨(Infinimmune)과도 항체 발굴 협력을 맺었다.
이번 프로틸리온 계약은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AI가 신약을 대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약 후보를 더 빨리 찾기 위한 실험 데이터와 분석 체계를 강화하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프로틸리온은 이번 거래에 대해 복잡한 단백질 엔지니어링 문제를 해결하는 자사 플랫폼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
키트루다 이후 성장동력을 준비해야 하는 MSD가 AI 단백질 설계 기술에 거액을 투자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앞으로 바이오의약품 개발 경쟁에서 데이터를 얼마나 잘 만들고 해석하느냐가 중요한 승부처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