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빅파마 일라이 릴리가 최대 23억 달러, 우리 돈 약 3조5000억 원을 들여 확보한 혈액암 신약 후보가 첫 임상 성적표를 내놨다. 기존 JAK 억제제 치료에 실패한 골수섬유증 환자에서 비장 크기가 줄고 증상이 완화되는 신호가 확인되면서, 릴리의 대형 인수 결정에 힘이 실리고 있다.
릴리는 최근 유럽혈액학회(EHA) 2026 연례학술대회에서 차세대 JAK2 억제제 ‘AJ1-11095’의 1상 임상시험 결과를 공개했다. 이 후보물질은 릴리가 올해 인수한 미국 바이오기업 에이잭스 테라퓨틱스(Ajax Therapeutics)의 핵심 자산이다. 인수 계약 규모는 선급금과 단계별 기술료를 포함해 최대 23억 달러다.
골수섬유증은 혈액을 만드는 골수에 섬유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는 희귀 혈액암이다. 조혈 기능이 떨어지면서 빈혈, 피로, 체중 감소, 복부 불편감 등이 생길 수 있다. 비장이 커지는 것도 대표적인 증상이다. 국내에서도 드문 혈액질환으로 분류된다.
현재 골수섬유증 치료에는 표적치료제인 JAK(야누스 키나아제) 억제제가 쓰인다. 다만 기존 치료제에 반응하지 않거나 시간이 지나 효과가 떨어진 환자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릴리가 AJ1-11095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존 치료 실패 환자 70%서 비장 크기 감소
AJ1-11095는 JAK2, 즉 야누스 키나아제 2 단백질을 겨냥하는 표적치료제다. 기존 JAK 억제제와 다른 점은 JAK2의 제2형 구조를 표적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 기존 제1형 JAK 억제제와 다른 결합 방식을 노린다는 의미다.
이번에 공개된 AJX-101 연구는 용량을 단계적으로 높이며 안전성과 초기 효과를 살핀 1상 임상이다. 환자들은 하루 한 번 25mg부터 125mg까지 서로 다른 용량의 AJ1-11095를 투여받았다. 모두 과거 제1형 JAK 억제제 치료에 실패한 골수섬유증 환자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결과는 비장 크기 감소였다. 평가 가능한 환자 23명 중 16명, 즉 70%가 비장 용적을 35% 이상 줄이는 반응을 보였다. 이 지표는 골수섬유증 임상에서 흔히 쓰이는 ‘SVR35’다. 기존 JAK 억제제 치료 이후 환자군에서 과거 보고된 SVR35 반응률은 0~32% 수준이었다.
증상도 개선됐다. 12주 시점에 전체 증상 점수가 50% 이상 줄어든 환자 비율은 70%였다. 24주 시점에는 65%, 연구 기간 중 한 번이라도 이 기준에 도달한 비율은 96%로 집계됐다. 이 지표는 ‘TSS50’으로, 피로, 복부 불편감, 식은땀, 뼈 통증 등 환자가 느끼는 증상 부담을 평가하는 데 쓰인다.
병을 이끄는 돌연변이 부담도 줄어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질병을 이끄는 돌연변이 부담을 줄일 가능성이다. 골수증식종양에서는 JAK2, CALR, MPL 등 유전자 변이가 질병 진행에 관여한다. 연구진은 치료 후 이러한 변이 비율이 얼마나 줄어드는지도 분석했다.
초기 데이터에서 AJ1-11095는 환자 23명 중 21명에서 원인 돌연변이의 변이 대립유전자 빈도(VAF)를 낮췄다. 24주 치료에 도달한 환자 17명 가운데 59%는 이 수치가 20% 이상 감소했고, 35%는 50% 이상 감소했다. 이는 단순히 비장 크기나 증상만 줄인 것이 아니라, 질병을 움직이는 생물학적 부담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환자 수가 적은 초기 임상 결과인 만큼, 실제 질병 조절 효과로 이어질지는 더 큰 규모의 연구에서 확인해야 한다.
안전성 측면에서는 용량제한독성이 보고되지 않았다. 올해 5월 기준 용량증량 단계에 등록된 환자의 78%가 치료를 계속 받고 있었다. 지금까지 치료 중단은 5건 보고됐다. 조혈모세포 이식, 물류상 이유, 치료 반응 부족, 약물과 관련 없는 이상반응 등이 원인이었다. 약물 관련 독성으로 인한 중단은 없었다.
릴리, 2차 치료부터 3상 진입 추진
릴리는 우선 AJ1-11095를 단독요법으로 개발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현재 용량확장 단계에서 75mg 용량을 먼저 평가하고 있으며, 향후 몇 개 코호트를 추가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125mg 용량은 독성 우려로 개발 후보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커졌다.
회사는 기존 JAK 억제제 이후 치료가 필요한 2차 치료 골수섬유증을 우선 목표로 삼고, 가능한 한 빨리 3상 임상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이후 고위험 진성적혈구증가증, JAK2 억제제 치료 경험이 없는 골수섬유증 환자군으로 개발 범위를 넓힐 방침이다.
이번 인수는 릴리의 최근 사업 전략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릴리는 비만·당뇨 치료제 성공으로 확보한 자금을 차세대 신약 파이프라인 강화에 투입하고 있다. 초기 단계 바이오기업에 넓게 투자하는 방식과, 초기 임상에서 가능성을 보인 자산을 더 큰 금액에 확보하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릴리의 차세대 JAK2 억제제가 희귀 혈액암 치료의 새 선택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