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고비와 마운자로가 비만약 시장을 바꾼 뒤 관심은 다음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얼마나 많이 빼느냐보다 근육을 얼마나 지키며 빼느냐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비만 치료제 시장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약물이 이끌고 있다. 이들 약은 배고픔을 줄이고 포만감을 높여 체중을 크게 낮춘다.
하지만 체중이 줄 때 지방만 빠지는 것은 아니다. 일부 환자에서는 근육량 감소, 메스꺼움과 구토 같은 위장관 부작용, 주사제 투여 부담이 함께 따라온다.
과학자들이 전혀 다른 방향의 치료법을 제시했다. 덜 먹게 만드는 대신, 우리 몸의 큰 에너지 소비 기관인 근육을 깨워 혈당을 낮추고 지방 연소를 높이는 방식이다. 식욕을 억제하지 않으면서 대사를 개선하고, 체중 감량 과정에서 중요한 근육량을 지키는 것이 목표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와 스톡홀름대 연구진은 제2형 당뇨병과 비만 치료를 겨냥한 새로운 실험용 약물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셀(Cell)》에 발표했다. 논문명은 ‘제2형 당뇨병과 비만 치료를 위한 GRK 편향성 아드레날린 작용제(GRK-biased adrenergic agonists for the treatment of type 2 diabetes and obesity)’다.
식욕을 줄이는 약은 이미 나와 있다. 이제 관심은 체중 감량 과정에서 줄어드는 근육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로 옮겨가고 있다.
이번 연구는 근육 대사를 활용해 혈당과 체지방을 개선하려는 새로운 접근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방 태우는 신호만 골라 켠다
이번 후보물질은 GLP-1 계열 약물과 작용 방식이 다르다. GLP-1 약물은 장과 뇌 사이의 식욕 신호에 영향을 줘 배고픔을 줄이고 포만감을 높인다. 반면 이번 약물은 식욕 조절 회로가 아니라 골격근에 초점을 맞췄다.
골격근은 팔과 다리, 몸통을 움직이는 근육이다. 동시에 혈당과 에너지 대사를 조절하는 중요한 기관이기도 하다. 식사 후 혈액 속 포도당을 흡수하고, 에너지를 저장하거나 소비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근육량이 줄면 혈당 조절 능력과 기초대사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연구진이 개발한 후보물질은 ‘GRK 편향성 베타2 아드레날린 수용체 작용제(GRK-biased β2-adrenergic receptor agonist)’로 설명된다. 이름은 어렵지만 핵심은 비교적 단순하다. 우리 몸의 교감신경 스위치 중 하나인 베타2 아드레날린 수용체를 자극하되, 모든 신호를 한꺼번에 켜는 것이 아니라 근육 대사에 유리한 신호가 더 강하게 흐르도록 설계한 약물이다.
여기서 GRK는 ‘G단백질 연결 수용체 키나아제(G protein-coupled receptor kinase)’를 뜻한다. 이번 후보물질은 베타2 수용체를 자극하면서도 GRK2 관련 신호가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지게 작동하도록 만들어졌다. 베타2 아드레날린 수용체는 기관지, 혈관, 근육, 심장 등에 있는 단백질이다. 이 수용체를 자극하면 에너지 소비가 늘고 근육 대사가 활성화될 수 있다.
문제는 기존 베타2 작용제가 심장 박동 증가, 떨림, 혈압 변화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대사질환 치료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거론됐지만 안전성 문제가 한계였다.
연구진은 이 문제를 ‘편향성 작용(biased agonism)’으로 풀려고 했다. 쉽게 말하면 같은 스위치를 누르더라도 집 안의 모든 전등을 켜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방의 불만 골라 켜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이렇게 선택적으로 켜진 신호가 골격근의 포도당 흡수와 지방 연소를 높여 혈당과 체성분을 개선할 수 있다고 봤다.
동물실험에서 이 후보물질은 혈당 조절과 체성분을 개선했다.
연구진은 식욕을 줄이거나 근육량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지방 연소를 높이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기존 체중감량 치료에서 우려되는 근육 손실 문제를 줄일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먹는 비만약 가능성 보였다
연구진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초기 임상 1상도 진행했다. 임상에는 건강한 성인 48명과 제2형 당뇨병 환자 25명이 참여했다. 그 결과 이 약물은 전반적으로 안전하고 내약성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내약성은 환자가 약을 복용했을 때 부작용을 견디며 치료를 지속할 수 있는 정도를 뜻한다.
연구팀은 “근육은 제2형 당뇨병과 비만 모두에서 중요하며, 근육량은 기대수명과도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며 “이 약물은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치료법으로 건강한 체중 감량을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주사제가 아니라 알약 형태로 개발되고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다만 아직 대규모 임상으로 체중 감량 효과와 장기 안전성이 입증된 단계는 아니다. 다음 단계는 더 큰 규모의 임상 2상이다.
이 약물을 개발 중인 기업 아트로기(Atrogi AB)가 후속 임상을 이끌 예정이다. 연구진은 동물실험에서 확인된 혈당 개선, 지방 연소, 근육 보존 효과가 실제 제2형 당뇨병 또는 비만 환자에서도 재현되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는 비만과 당뇨병 치료가 식욕 억제 중심에서 근육 대사 조절로 넓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위고비와 마운자로가 체중 감량 시대를 열었다면, 이제 제약업계는 지방은 줄이고 근육은 지키는 방법을 찾고 있다. 살이 빠졌다는 숫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다.
지방은 줄이고 근육은 지키는 것이 비만 치료의 새로운 목표로 떠오르고 있다. 살은 빼되 근육은 지키는 치료는 비만약 시장의 다음 과제로 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