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든 어르신일수록 걷다가 전화가 오면 멈춰 선다. 계단 앞에서는 말을 끊는다.
그 이유를 물으면 "그냥 그게 편해"라고만 한다. 사실 뇌가 시킨 일이었다.
나이 든 뇌가 '그냥 서 있는 것'조차 젊은 뇌보다 훨씬 많은 자원을 끌어다 쓴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금까지는 간접 추정에 머물렀는데, 아일랜드 연구팀이 뇌파와 자세 신호를 동시에 측정해 직접 근거를 확보했다.
이런 내용의 아일랜드 더블린대(UCD) 전기전자공학부 토머스 르그랑 박사팀 연구 결과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2026년 6월 2일자에 실렸다.
뇌도 배터리가 있다
사람이 서 있을 때 균형을 실제로 담당하는 것은 척수와 뇌간이다. 몸이 기울면 이 구조들이 반사적으로 근육을 조여 자세를 잡는다. 빠르고, 자동이고,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는다. 젊은 시절에는 이 경로가 대부분의 일을 처리한다. 대뇌 피질은 거의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
나이가 들면 달라진다. 척수·뇌간의 자동 처리 능력이 떨어지면서, 대뇌 피질이 그 역할을 넘겨받기 시작한다. 피질은 감각을 모아 판단하고 근육에 명령을 내리는 고차원 경로다.
그런데 이 경로에는 한 가지 약점이 있다. 쓸 수 있는 용량이 정해져 있다. 균형에 더 쓸수록 시각·주의·판단에 쓸 여유는 줄어든다.
연구팀은 30세 미만 성인 64명과 65세 이상 노인 67명을 모집해 두 집단을 직접 비교했다. 딱딱한 바닥과 스펀지 매트 위에서 눈을 뜨거나 감은 채 서 있게 하면서, 머리에는 뇌파(EEG) 장치를, 발 아래에는 무게중심 흔들림을 기록하는 자세계를 붙였다.
이를 통해 측정한 것이 '피질운동학적 일관성(CKC·Corticokinematic Coherence)'이다. 뇌 피질의 전기신호와 몸의 흔들림이 얼마나 밀접하게 동조하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로, 높을수록 피질이 균형에 더 많이 개입한 상태다.
버티려 할수록 뇌는 왜 더 위험해질까
매트 위에 서거나 눈을 감아 감각 정보가 줄어들면, 노인 집단의 CKC는 젊은 집단보다 뚜렷하게 높았다. 흔들림이 클수록 수치도 함께 올라갔다.
바로 여기서 어려움이 발생한다. 균형에 처리 용량을 한계까지 쓰고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난 계단, 발 앞의 돌부리, 옆에서 끼어드는 사람에 동시에 대응할 여력이 없어진다.
처리 속도도 문제였다. 몸이 기울어지는 것을 파악하는 단계와 근육에 신호를 보내는 단계, 두 과정 모두에서 지연이 확인됐다. 전체 처리 속도는 젊은 성인보다 약 50% 느렸다.
뇌가 흔들림을 처리하는 속도와 용량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를 '이중과제 낙상(dual-task fall)'이라 부른다.
걷는 중 말을 하면 멈춰 서는 노인이 낙상 고위험군일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유럽신경학회지》에 실린 체계적 문헌고찰에서 이중과제 수행 중 보행이 흔들리는 노인의 낙상 위험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5배 이상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전화를 받거나 말을 걸어오는 사람에게 고개를 돌리다 넘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단순히 부주의만으로는 보기 힘들다. 균형 유지에 이미 한계치까지 쓰던 피질에 통화라는 처리가 얹히면서 용량이 넘쳐 생긴 산물이다.
그렇다면 혹시 귀 문제는 아닐까.
"귀 탓도 아니었다"
노인 낙상의 원인으로 자주 지목되는 것이 전정계, 즉 귀 안의 균형 기관이다.
연구팀은 참가자의 전정계 기능을 별도로 정밀 평가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전정계 기능과 상관없이, 나이 든 뇌에서 피질 자원의 과도한 동원과 처리 지연은 그대로였다.
르그랑 박사는 "이번 연구는 낙상을 예측하고 예방하는 데 뇌 수준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뇌파와 자세계를 동시에 측정하는 방식은 향후 낙상 고위험군을 뇌 활동으로 조기에 가려내는 도구로 발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균형 능력은 60세 이후부터 급격히 떨어지고 70대부터 가속화한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다. 이제 그 이유의 한 조각을 뇌에서 찾았다.
부모님이 걷다가 전화가 오면 멈춰 서거나, 계단 앞에서 말을 끊거나, 사람 많은 곳에서 유독 힘들어한다면 피질이 균형 유지에 상당한 용량을 쓰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말을 걸지 않고 옆에서 같이 걷는 것, 난간이 있는 계단, 조명이 밝은 통로가 따로따로 보이지만 사실 하나다.
피질이 균형 외에 다른 일도 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