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석과 이식 외에는 치료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유전성 신장질환 분야에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가 2조9000억 원 규모의 베팅을 했다.
릴리는 최근 미국 보스턴 바이오기업 아시디안 테라퓨틱스와 유전성 신장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전체 계약 규모는 최대 19억 달러(약 2조9000억 원)다.
선급금은 공개되지 않았다. 아시디안은 이번 계약에 선급금, 개발·상업화 단계별 기술료, 전 세계 매출에 따른 단계별 로열티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계약 구조는 비교적 명확하다. 아시디안은 RNA 엑손 편집 플랫폼을 활용해 후보물질 발굴과 초기 전임상 연구를 담당한다. 릴리는 이후 임상 개발과 생산, 상업화를 맡는다.
왜 신장질환인가
이번 계약의 표적은 유전성 신장(콩팥)질환이다.
콩팥은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내고 체액과 전해질 균형을 유지하는 장기다. 기능이 크게 떨어지면 회복이 쉽지 않다. 말기 신부전으로 진행하면 결국 투석이나 신장이식이 필요할 수 있다.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성인의 만성콩팥병 유병률은 7.6%다. 70세 이상에서는 21.6%까지 올라간다. 최근 10년 동안 환자 수와 진료비도 모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유전성 신장질환은 전체 콩팥병의 일부지만 젊은 나이에 발병하거나 가족력이 뚜렷한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말기 신부전으로 진행할 수 있지만 근본 치료법은 제한적이다.
업계에서는 신장질환 분야 최대 난제 중 하나로 약물 전달 문제를 꼽는다. 유전자의약품을 콩팥 세포까지 얼마나 정확하고 안전하게 전달하느냐가 치료제 개발의 핵심이라는 의미다.
DNA 대신 RNA를 고친다
아시디안의 RNA 엑손 편집은 DNA를 직접 수정하지 않는다. 단백질 생산 과정에서 중간 설계도 역할을 하는 RNA 단계에서 오류를 교정하는 방식이다.
우리 몸의 유전정보는 DNA에 저장돼 있다. 세포는 이를 RNA로 복사한 뒤 단백질을 만든다. 아시디안은 질병을 일으키는 RNA 구간을 정상 구간으로 바꿔 정상 단백질 생산을 회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존 유전자 편집은 DNA를 직접 바꾸기 때문에 효과가 오래 지속될 수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발생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RNA 편집은 유전정보 원본을 건드리지 않는다.
아시디안은 외부 효소를 새로 넣기보다 세포가 원래 갖고 있는 스플라이싱 기전을 활용한다. RNA가 단백질로 번역되기 전 필요한 부분만 이어 붙이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이용해 병적 엑손을 정상 엑손으로 대체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은 기존 유전자치료로 접근하기 어려운 대형 유전자 질환이나 변이 종류가 지나치게 많은 질환 등에 적용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릴리가 사들인 것은 후보물질이 아니라 플랫폼
이번 계약의 의미는 특정 후보물질 하나를 확보한 데 그치지 않는다.
릴리는 최근 유전자치료와 유전자 편집 분야에 잇따라 투자하고 있다. 2025년에는 메이라GTx와 망막 유전자치료제 계약을 체결했고, 지난달에는 프로플루언트 바이오와 최대 22억5000만 달러 규모 계약을 맺었다.
이번 아시디안 계약까지 더하면 릴리는 대사질환 치료제로 확보한 현금을 차세대 유전자의약품 플랫폼 확보에 투입하는 모습이다.
다만 환자가 당장 혜택을 보는 단계는 아니다. 후보물질 발굴과 전임상, 임상시험, 허가 심사를 거쳐야 한다. 실제 치료제로 이어지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번 계약은 투석과 이식 외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유전성 신장질환 분야에서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시험하는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