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 치료는 암세포를 공격하지만 몸속 정상 조직에도 상처를 남긴다. 특히 장은 손상에 취약하다. 장 점막은 음식물과 소화액, 장내 미생물에 매일 노출되고 세포 교체도 빠르게 일어난다.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 과정에서 장 점막이 손상되면 설사, 복통, 영양 흡수 저하 등이 나타나 환자의 삶의 질과 치료 지속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장 손상을 회복하는 데 식품 속 특정 아미노산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은 고기, 유제품, 콩, 견과류 등에 들어 있는 아미노산인 시스테인(cysteine)이 장의 자연 회복 시스템을 강하게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시스테인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중 하나다. 우리 몸은 다른 아미노산인 메티오닌(methionine)을 간에서 바꿔 시스테인을 만들 수 있고, 음식으로도 섭취한다. 그동안 시스테인은 주로 항산화 작용과 관련해 알려져 왔다. 세포 손상을 줄이고 산화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데 관여하는 물질로 여겨졌다. 이번 연구는 시스테인이 항산화 물질을 넘어 장 줄기세포의 재생 능력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장 줄기세포를 깨운 작은 아미노산
장 줄기세포는 손상된 장 점막을 다시 만드는 ‘복구 인력’에 가깝다. 장 안쪽 표면은 끊임없이 새 세포로 교체된다. 하지만 방사선이나 항암제 때문에 이 재생 시스템이 무너지면 장 점막 손상과 염증이 커질 수 있다. 연구팀은 시스테인이 줄기세포의 회복 신호를 강화해 손상된 장 조직 재건을 돕는 경로를 확인했다.
MIT 연구팀은 실험용 쥐에게 단백질의 기본 구성 성분인 20가지 아미노산 중 하나를 각각 풍부하게 넣은 식단을 제공했다. 이후 각 아미노산이 장 줄기세포와 전구세포(progenitor cell)의 재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석했다. 전구세포는 줄기세포에서 유래해 성숙한 장 세포로 자라는 중간 단계 세포다.
그 결과 가장 강한 재생 효과를 보인 물질이 시스테인이었다. 시스테인이 풍부한 식단을 먹은 쥐에서는 장 줄기세포와 전구세포의 회복 능력이 뚜렷하게 높아졌다.
작동 원리도 추적했다. 장 세포가 음식에서 흡수한 시스테인을 코엔자임A(CoA)라는 분자로 바꾸면 이 물질이 장 점막으로 방출된다. 이후 면역세포인 CD8 T세포가 이를 받아들이며 활성화된다. 활성화된 CD8 T세포는 증식하면서 인터루킨-22(IL-22)라는 신호 단백질을 만든다. IL-22는 장 점막 회복과 줄기세포 재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이토카인(cytokine)이다.
흥미로운 점은 CD8 T세포가 장 줄기세포 회복에 필요한 IL-22를 만드는 세포군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이 이번 연구에서 새롭게 부각됐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시스테인이 풍부한 식단이 IL-22를 만드는 면역세포 집단을 늘리고, 특히 CD8 T세포 비중을 키운다고 설명했다.
활성화된 T세포는 소장 점막에 모였다. 장 손상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반응하기에 유리한 위치다. 연구 결과 시스테인의 효과는 주로 소장에서 두드러졌다. 음식으로 섭취한 단백질과 아미노산 대부분이 소장에서 흡수되기 때문이다. 시스테인이 혈액을 타고 전신에 퍼지기 전, 장에서 먼저 높은 농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암 환자 장 보호 전략으로 이어질까
시스테인이 풍부한 식단을 먹은 쥐는 방사선으로 인한 장 손상 뒤 회복도 더 잘 이뤄졌다. 추가 실험에서도 항암제 5-플루오로우라실(5-fluorouracil, 5-FU) 투여 후 비슷한 재생 효과가 관찰된 것이다. 5-FU는 대장암과 췌장암 등 여러 암 치료에 쓰이는 항암제지만 장 점막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이번 연구가 곧바로 암 환자에게 시스테인 보충제를 권고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에게서 같은 효과와 안전성이 확인되려면 임상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암 환자는 치료 종류, 영양 상태, 간·신장 기능, 복용 약물이 모두 다르다. 특정 영양소를 고용량으로 섭취하기 전에는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해야 한다.
다만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향후 암 치료로 장 손상을 겪는 환자를 위한 식이 전략이나 보조요법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특히 합성 물질이 아니라 자연 식이 성분을 활용한다는 점에 의미가 있으며, 시스테인이 풍부한 식단이나 보충이 항암·방사선 치료로 인한 손상을 줄이는 방향으로 연구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스테인이 많은 식품으로는 육류, 유제품, 콩류, 견과류 등이 꼽힌다. 하지만 이번 연구의 핵심은 “단백질을 많이 먹으면 장이 무조건 빨리 낫는다”는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다. 특정 아미노산이 면역세포와 장 줄기세포 사이의 신호망을 바꿔 조직 재생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식탁 위 단백질 속 작은 아미노산 하나가 손상된 장을 회복시키는 ‘스위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논문출처: Dietary cysteine enhances intestinal stemness via CD8 T cell-derived IL-22. Nature, 2025; 647 (8090): 706 DOI: 10.1038/s41586-025-0958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