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마다 깨고,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무겁다. 그런데 건강검진에서 측정된 혈압은 늘 '정상 범위'다. 이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단순 피로나 스트레스로 넘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는 그런 판단이 틀릴 수 있다고 말한다. 병원에서 한 번 잰 숫자가 전부가 아닐 수 있다.
자는 동안 혈관은 쉬지 않는다
사람은 잠들면 몸도 함께 쉰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건강한 사람은 취침 중 낮보다 혈압이 약 10~20% 낮아진다. 몸이 휴식 모드로 전환되면서 혈관이 함께 이완되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밤에 혈압이 충분히 내려가지 않거나, 새벽이나 잠에서 깬 직후 오히려 치솟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패턴은 병원 혈압 수치만으로는 잡히지 않는다. 의학적으로는 '논디핑(non-dipping, 야간 혈압 저하 불충분)'이라고 부른다. 몸은 쉬고 있다고 믿었는데 혈관은 밤새 긴장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코를 심하게 골거나 자다가 숨이 막혀 깨는 수면무호흡이 있으면 밤새 몸이 반복적으로 경계 태세에 들어갈 수 있다. 숨이 막히면 몸은 산소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교감신경을 깨우고 혈압과 심박수를 함께 올린다.
수면무호흡이 없더라도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음주 다음 날 새벽에 자주 깨는 사람에게서도 논디핑 패턴이 나타날 수 있다.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보다 잠드는 습관도 마찬가지다. 생체 리듬이 흐트러지면 몸은 누워 있는데 혈관은 계속 깨어 있는 상태에 가까워진다. 이런 패턴이 반복될수록 심혈관 위험도 커진다.
야간 혈압이 낮 혈압보다 심혈관 위험을 더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본 지치의과대 가리오 가즈오 교수팀은 전국 의원 네트워크를 통해 진행한 대규모 추적 연구에서 야간 혈압이 가장 높은 그룹은 가장 낮은 그룹보다 뇌졸중 위험이 4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해 고혈압 전문 학술지 《고혈압 연구(Hypertension Research)》에 실렸다.
혈압은 통증처럼 바로 느껴지는 신호가 아니다. 이상이 생겨도 몸은 모른 채 지나간다.
병원 혈압이 정상이면 정말 괜찮은 걸까
혈압은 하루 종일 같은 숫자가 아니다. 병원에서 한 번 잰 정상 수치가 전부라고 믿다가 정작 위험한 순간을 놓칠 수 있다.
병원에서는 정상이던 사람이 새벽 화장실에 다녀온 직후나 출근 직전 유독 높은 혈압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병원만 가면 긴장해서 높게 나오는데 집에서는 안정적인 사람들도 있다.
한국 고혈압 환자는 1300만 명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는 자신이 고혈압인지조차 모르고 지낸다. 특별한 증상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고혈압학회와 유럽고혈압학회, 국제고혈압학회 등은 공통적으로 병원 혈압만으로 안심하지 말고 집에서 며칠간 같은 시간에 반복 측정할 것을 권고한다. 낮에는 괜찮다가 새벽·아침에만 치솟는 패턴은 병원에서 한 번 잰다고 해서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쓰이는 것이 '활동혈압검사'다. 작은 측정기를 몸에 차고 24시간 생활하면서 혈압 변화를 기록한다. 병원에서 의사 앞에 앉아 재는 혈압이 아니라, 출근 준비를 하거나 잠드는 실제 생활 속 혈압을 보는 방식이다.
오늘 아침 혈압, 제대로 재셨나요
아침 기상 후 소변을 본 뒤 의자에 앉아 등을 기대고 5분 안정한 상태에서 혈압을 재고 기록하는 것이 좋다. 잠들기 전 혈압까지 함께 기록하면 밤·아침 혈압 패턴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대한고혈압학회는 가정혈압 기준으로 수축기 135mmHg 이상 또는 이완기 85mmHg 이상이 반복된다면 병원 방문을 권고한다.
오는 5월 17일은 세계 고혈압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공식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세계고혈압연맹(World Hypertension League)이 매년 주관하는 국제 캠페인으로, 올해 주제는 '함께 고혈압을 조절하자(Controlling Hypertension Together!)'다. 혈압 관리는 개인의 의지만이 아니라 가족·의료진·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자고 나도 유독 피곤했던 아침, 출근 준비를 할 때마다 빨라지던 심장, 새벽마다 깨던 잠. 밤새 혈압이 내려가지 않았다는 신호이었을 수 있다.
몸은 쉬고 있다고 느끼는데, 혈관은 다른 시간표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