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병치레 없이 잘 지내던 50대 영국 남성이 포르투갈에서 쨍쨍 내리쬐는 햇빛을 쬐며 2주간의 휴가를 보내고 귀국했다. 그는 갑자기 불쾌감과 변비, 메스꺼움, 정신 혼돈 등 여러 증상을 보여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뜻밖에 이 환자는 면역병인 ‘사르코이드증(유육종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영국 잉글랜드 휘스턴병원 연구팀은 휴가 출발 2개월 전 목 부위의 림프절이 커지는 증상을 겪었던 53세 남성이 따뜻한 나라에 휴가를 다녀온 뒤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사례를 학계에 보고했다. 이 환자는 휴가 떠나기 두 달 전쯤 목에 혹이 생겨 병원을 찾았으나, 검사 결과 단순한 ‘반응성 변화’로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혈중 칼슘 수치도 정상이었다. 목 부위의 림프절 비대 증상이 몸속에 면역병이 잠복해 있음을 가리킬 수 있다는 점을 그 때는 까마득히 몰랐다.
연구팀은 환자에게 숨어 있던 사르코이드증이 일종의 촉매제인 햇빛을 만나 모습을 드러낸 셈이라고 말했다. 육아종 내 활성화된 대식세포가 햇빛(자외선)에 의해 합성된 비타민 D를 활성 형태인 ‘칼시트리올’로 마구 바꾸면서, 장내 칼슘 흡수와 골 재흡수를 비정상적으로 촉진해 중증 고칼슘혈증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육아종은 면역체계가 이물질이나 세균을 없애지 못할 때 대식세포가 뭉쳐 생기는 염증성 덩어리다. 사르코이드증은 비괴사성 육아종이 특징인 전신 염증 질환을 가리킨다.
검사 결과 이 환자의 조정 칼슘 수치는 3.71mmol/L(정상 범위 2.2~2.6)까지 치솟아 있었고, 콩팥 기능을 나타내는 수치(eGFR, 단위 ml/min/1.73m²)는 30으로 뚝 떨어져 콩팥 손상이 급속히 진행 중이었다. 이 수치의 정상 범위는 90~120이며 60 미만이 3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 콩팥병으로 진단한다.
의료진은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에서 폐의 미세한 혹(결절)과 양측 림프절 비대를 확인했고, 기관지 내 초음파를 통해 ‘비괴사성 육아종’을 발견하고 사르코이드증으로 최종 진단했다. 환자는 정맥 수액 주사를 맞고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았고, 이후 칼슘 수치가 정상화됐다.
퇴원 후에도 약 1년간 스테로이드 치료를 계속 받았다. 부작용으로 면역조절제인 메토트렉세이트로 약을 바꾸는 과정을 겪었다. 연구팀은 햇빛 노출이 사르코이드증 환자의 고칼슘혈증을 촉발하거나 악화할 수 있는 환경적 요인임을 입증한 사례라고 밝혔다.
이 사례 연구 결과(Hypercalcaemia After a Sunny Holiday)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햇빛의 비타민 D 합성, 면역병 환자의 경우 장기 파괴해
대부분의 사람에게 햇빛은 비타민 D를 만들어 뼈를 튼튼하게 해주는 좋은 요소이지만, 사르코이드증이나 루푸스 같은 특정 면역병 환자에게는 장기를 파괴하는 독이 될 수 있다. 이번 사례는 면역병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즐긴 휴가가 어떻게 치명적인 대사 장애로 이어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사르코이드증 환자의 약 10%에서는 고칼슘혈증이, 최대 60%에서는 고칼슘뇨증이 나타난다. 일반인의 경우 혈액 내 칼슘이 많아지면 부갑상선 호르몬(PTH)이 이를 억제해 균형을 맞춘다. 그러나 유육종증 환자의 육아종은 이런 신체의 통제 시스템을 무시하고 비타민 D를 무제한으로 활성화한다. 마치 고장 난 보일러처럼 혈액 속에 칼슘을 계속 쏟아붓는다.
특히 주의해야 할 적신호는 통증 없는 목의 멍울이다. 감기나 염증으로 목이 부으면 만졌을 때 아픈 경우가 많지만, 사르코이드증이나 림프종 등에 의한 부기로 나타나는 멍울은 통증이 거의 없다. 이 환자도 2개월 전 발견한 목의 멍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강한 자외선에 노출되면서 잠복해 있던 병증이 폭발했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햇빛을 쬔 뒤 이전에 없던 변비, 메스꺼움, 갈증, 정신이 멍해지는 증상 등이 나타나면 즉시 혈중 칼슘 수치를 확인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평소 목 주위에 딱딱한 응어리가 만져지거나 림프절 비대 증상이 있는 사람은 강한 햇빛을 피하고 적절한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하는 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자주 묻는 질문]
Q1. 햇빛을 많이 쬐면 누구나 고칼슘혈증에 걸리나요?
A1. 아닙니다. 일반적인 건강한 사람의 경우 체내 피드백 시스템이 작동해 필요한 만큼만 비타민 D를 활성화하므로 고칼슘혈증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번 사례는 사르코이드증이라는 면역병을 가진 특이 체질적 상황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Q2. 목에 멍울이 생겼는데 아프지 않으면 안심해도 되나요?
A2.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통증이 있는 멍울은 일시적인 염증일 가능성이 높지만, 통증 없이 2주 이상 지속되는 멍울은 사르코이드증이나 종양 같은 심각한 병의 적신호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전문의를 찾아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Q3. 사르코이드증 환자는 평생 햇빛을 피해야 하나요?
A3. 병의 활성도에 따라 다르지만, 자외선이 강한 환경은 고칼슘혈증을 일으키는 강력한 유발 인자(트리거)가 됩니다. 야외 활동 때는 자외선 차단제를 꼼꼼히 바르고, 챙이 넓은 모자를 착용하는 등 자외선 노출을 최소화하는 생활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