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동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환자 분의 작은 변화가 눈에 들어오듯, ‘환자가 보내온 칭찬 메시지’라는 작지만 기분 좋은 소식이 e메일로 들어오곤 합니다. 그 분들이 입원 치료 과정에서 느낀 감사의 마음을 병원에 남기면, 병원장께서 그 내용을 저에게 전달해 주시죠.
부끄럽지만 저는 꽤 많은 칭찬 메시지를 받았고, 병원 전체의 칭찬 직원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내가 잘해왔구나’하는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앞으로 더 잘하라는 격려의 또 다른 표현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의미를 곱씹어 생각해보게 됩니다.
얼마전의 일입니다. 고령의 폐렴 환자가 계셨는데 입원 초기에는 호흡 곤란이 심해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보호자는 의료진의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너무 어려워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회진하며 병의 상태와 검사 결과를 일반인이 알기쉬운 평범한 말로 풀어서 설명했고, 치료 방향이 바뀔 때마다 그 이유를 여러 번 알려드렸습니다. 저의 목표는 환자와 보호자가 온전히 이해했다고 생각될 때까지 그분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상태가 호전되면서 환자는 퇴원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엔 숨이 너무 차서 이러다가 큰일 나는 것 아닌가 두려웠는데, 뭐가 문제였는지, 어떻게 나았는지 알게 되니 마음이 놓여요.”
퇴원 후 보호자가 남겨주신 칭찬 메시지에도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치료도 잘해주셨지만, 무엇보다 환자가 이해할 수 있게 해주신 점이 가장 감사했습니다.’
‘친절’이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환자의 불안을 줄여주는 의료 행위의 일부라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불만이나 컴플레인은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심지어 욕설까지 쉽게 쏟아내죠. 반면 칭찬은 반대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문화에서 칭찬은 꽤 인색한 편입니다. 칭찬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어렵게 마음을 먹어야 표현할 수 있는 일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환자분의 칭찬은 더욱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이라고 믿습니다.
“권민관 교수님 덕분에 빨리 좋아졌어요.”
“쉽게 말씀해주셔서 안심이 됐습니다. 치료가 더 잘 되었어요.”
“퇴원 시점이 되어 돌이켜보니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 무게를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칭찬 직원이 되는 것은 ‘친절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친절의 기반은 결국 실력입니다. 실력 없는 의사가 아무리 친절해도 환자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설명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치료 결과가 탁월하면 환자는 그 의사를 ‘좋은 의사’로 기억합니다. 결국 실력 위에 친절이 더해질 때, 비로소 진짜 칭찬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제가 칭찬 직원이 된 이유를 저 개인의 능력으로만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병원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보다 훨씬 따뜻하고 섬세한 동료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시스템’ 덕분입니다.
서울아산병원은 국내에서 입원전담전문의(Hospitalist) 제도가 가장 적극적으로 운영되는 곳 중 하나입니다. 입원전담전문의는 외래와 수술 일정에 분산되지 않고 병동 환자 진료에만 집중하는 전문의입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전문성’, ‘지속성’, ‘즉시성’입니다. 이 세 가지가 진료의 속도와 의료의 질을 바꿉니다. 환자 상태 변화에 대해 전문의가 즉각 대응할 수 있고, 매일 일관된 의사가 치료를 이어가면서 의사결정의 연속성이 유지됩니다. 또한 전공의 중심 구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설명의 단절이나 정보 전달의 누락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저는 환자 한 분 한 분에게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었고, 검사 결과를 직접 확인하고 치료 방향을 빠르게 조정할 수 있었습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항상 같은 의사가 내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큰 안정감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제가 받은 칭찬은 개인의 친절함이 아니라, 전문의가 환자 곁에 머무를 수 있도록 설계된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는 여러 연구에서 사망률 감소, 입원기간 단축, 의료비 절감 등의 효과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환자 경험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납니다. 환자단체연합회 및 보건의료 관련 조사에서도 “충분한 설명”과 “의료진과의 소통”이 환자 만족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꼽히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요소들은 수치로 완전히 환산하기 어렵습니다. 설명의 따뜻함, 불안을 덜어주는 한마디, 눈을 맞추는 태도 같은 것들은 지표로는 측정되지 않지만 환자에게는 가장 크게 남습니다.
경영학에서는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숫자와 수치로 측정되는 세계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의료에서는 숫자로 담을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존재합니다. 병원 운영자나 정책 입안자 입장에서는 지표와 통계가 중요하겠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환자와 의사의 교감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런 시스템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널리 확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필요성과 만족감이 이렇게 높은데도 말이죠.
병동 복도를 걸으며 환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고객이 보내온 칭찬 메시지’를 떠올리면, 피곤함이 조금 가벼워집니다. 곁에 있는 훌륭한 동료, 최신의 장비와 정확한 검사, 만족스러운 병원 환경 등이 직업 만족도를 높여주지만, 그 무엇보다 환자의 정성 어린 따뜻한 한마디가 저에게 자랑스러움을 줍니다. 정성스럽게 남겨주신 감동 어린 따뜻한 말 한 줄이, 어떤 보상보다 크게 남습니다.
오늘도 그 한마디를 떠올리며, 다시 병실 문을 엽니다.

<편집자주>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