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10일 (금)

[기자수첩] ‘주특기’보다 ‘간판 갈이’…종합병원 승격의 역설

[기자수첩] ‘주특기’보다 ‘간판 갈이’…종합병원 승격의 역설
W병원 전경.

일반 병원의 종합병원 승격은 지역 의료환경 개선 측면에서 박수받아 마땅하다.

다만 전문 ’주특기‘가 있는 병원이 정체성을 내려놓고 종합병원 승격을 위해 외형을 바꾸는 것을 지켜보면 언제까지 이런 ‘간판 갈이’에 매달려야 하는지 안타까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미세수술의 아시안게임’이라 불리는 ‘아태재건미세수술학회(APFSRM)’ 2030 한국 유치 성공 주역인 대구 W병원의 약진을 보면서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설립 20년도 되지 않아 지역 의료계를 넘어선 초전문성을 확보하고, 대구권 6대 병원의 위상을 갖춘 W병원은 현재 지역민의 든든한 의료 버팀목이 됐다.

단순히 ‘대형’ 종합병원이라는 외형뿐 아니라 24시간 미세수술 집도 능력에 최근 중환자실과 정신건강 진료 기능까지 대폭 확대하면서 실질적인 내실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바로 올 수 있는 길을 돌아오게 만든 장벽이 있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구색 갖추기’에 밀려난 전문성...지독한 역설의 의료법

왜 독보적이고 시각을 다투는 수술을 해야하는 초전문성을 자랑하는 병원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몸에 딱 맞지 않는 종합병원의 옷을 입을 수밖에 없을까?

답은 간단하다. 지금과 같은 법체계 아래서는 이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국가 지원을 받는 응급의료센터급 지위를 얻고, 이송 체계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종합병원’ 인허가 기준을 통과해야만 한다.

현행 의료법과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100~3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이 되려면 내과·외과·산부인과 등 필수 7개, 300병상이 넘으면 필수 9개의 진료과목과 전속 전문의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이는 지독한 역설이다. 손가락이 절단된 응급환자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24시간 즉시 수술이 가능한 ‘쟁쟁한’ 미세수술팀이지 병원 한 편을 차지하고 있는 산부인과나 소아과 진료실이 아니다.

산부인과나 소아과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이들도 협진이 필요한 관련 진료과목만 둔 전문 응급의료센터로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전문성을 살리고, 더욱 확대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선택과 집중이야말로 ‘응급실 뺑뺑이’를 줄이는 지름길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의료 자원의 낭비, 법이 가로막은 ‘실질적 전문성’

그럼에도 초전문성을 가진 병원들이 ‘응급’이라는 공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주특기와는 무관한 진료과목들로 ‘구색 갖추기’를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의료 현장과는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러한 구조는 의료 자원의 심각한 비효율로 이어진다. 종합병원 간판을 달기 위해 투입하는 막대한 인건비와 시설비는 정작 더 많은 전문의를 확충하고 수술 장비를 현대화하는 데 쓰여야 할 소중한 자원이다. 법이 정한 ‘형식’을 맞추느라 ‘내실’을 기할 기회를 잃고 있는 셈이다.

이웃 나라 일본과 미국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지자체 권한으로 전문병원을 응급의료망에 유연하게 편입시키고 있다. 미국은 병원 규모보다 ‘특정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실질적 자원’을 기준으로 센터 레벨을 결정한다.

‘산부인과가 있느냐’가 아니라 ‘지금 당장 수술할 의사가 있느냐’를 묻는 실용주의적 접근이다.

의료개혁 위한 전향적 법 개정으로 ‘환자 살리기’ 집중 환경 조성해야

이제는 우리도 변해야 한다.

초전문성을 가진 병원 숫자가 아직은 많지 않아 적극적 공론화가 쉽지 않을 수는 있다고 말하는 건 근시안적 분석이다. 이런 병원들의 약진은 시간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료개혁을 위한 관련법의 전향적 개정으로 이제라도 초전문 병원들이 불필요한 과목 운영의 짐을 벗고 오직 ‘환자 살리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제도 개편과 함께 기술적 기반 마련도 병행돼야 한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응급 전원 네트워크를 구축해 물리적인 병상 수보다 전문의 사이의 실시간 소통과 이송 체계를 지원하는 ‘가상 응급실’ 형태의 협력 모델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전문 응급의료센터’ 지정을 통해 종합병원 수준의 재정 지원과 공공정책수가를 적용함으로써 규모가 아닌 실력으로 보상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초전문 병원들이 ‘간판’을 위해 ‘전문성’을 희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름뿐인 종합병원 수백 개보다 단 하나의 전문 응급센터가 환자의 잘린 손가락을 제때 붙여주는 것이 진정한 의료 정의다.

김승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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